단상의 아포리즘 6
공감
공감은 감동을 준다.
함께 감정을 공유할 때 물결이 일어난다.
감동의 물결이 일어난다.
공감의 넒은 폭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고독 가운데 일을 해도
공감을 유지하면 연결 끈을 강화해야 한다.
고아, 과부, 난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
늘 세상과 공감하고, 이웃과 공감하라.
늘 감사하며 행운아마인드로 살라.
지나면 바꿀 수 없는 게 인생
생각이 안 나면 칸을 바꿔 쓴다. 그러다 또 안 나면 또 바꾼다.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칸이라도 마음대로 바꿔야지.
세상을 내 맘대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쾌락 기계’는 행복할까?
좌절이 있기에 인생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것이 아닐까?
예전에 리모컨으로 인생을 바꾸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인생 말로가 불행했다.
그래도 한두 번 정도는 그런 리모컨이 있으면 좋겠다.
잃은 것과 얻은 것
인생에는 잃은 것과 얻은 것 모두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을 먼저 보는가, 어느 쪽을 주로 보는가에 따라
인생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나는 어느 쪽을 보는가?
인생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을 되는 대로 살기도 한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 사람 고유의 영역이다.
그저 그런 작가면 어때!
쓰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쓰는 것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면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 문장을 쓰고 또 생각을 해서 연결하면 그게 글이다.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면 그게 글이다.
대단한 글은 물론 아니다.
내 목표치를 낮추어 그저 그런 작가로 생각하고 많이 쓰자.
그냥 아무 쓸모없는 글이라도 쓰자.
그냥 쓰자.
아무도 읽지 않아도 쓰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쓰자.
나에게는 쓸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쓸 자유가 있다.
내 권리와 자유를 항상 즐기자.
늘 쓰는 행위로 살아가자.
나는 쓰는 행위로 살아간다.
이것이 ‘필일오’의 존재 이유다.
‘필일오’가 곧 내 삶이다.
메모와 편지
떠오르는 생각을 사라지지 않고 잡아두는 것,
메모의 유용함은 여기서 발휘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메모 노트를 보라!
다빈치는 생각나는 것을 바로 메모하고,
이 메모를 기초로 작업일지를 썼다.
메모는 큰 작업으로 이어졌다.
다윈은 편지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주고 받는 생각의 교환, 토론이 그곳에서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자기 생각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메모와 편지,
이 양자는 지적 생활의 중요한 도구이다.
가슴 뛰는 경험
한 번 해 본 경험이 있으면 다시 하기가 쉽다.
물론 좋은 경험이어야 한다.
가슴이 뛰면 다시 하게 된다.
책 한 권을 낸 사람이 또 다른 책 한 권을 낸다.
논문 한 편을 투고한 사람이 또 다른 논문을 투고한다.
여행을 한 사람이 여행지를 찾아다닌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어서 한 번 꼭 해 보자.
그 경험을 바탕으로 2번째, 3번째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인생 그리 길지 않다.
지체하지 말고 해보자.
모든 것을 준비했을 때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물론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어서 이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일단 시작해 보자.
감고사 세 마디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노심초사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살고,
삶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잖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를 늘 입에 달고 살기를 ...
인생의 아픔에 약이 되는 말들이네.
인생의 흐름을 잘 타게나. 친구여!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고사’ 세 마디로 인생을 살자.
가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
가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만,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현재 내 입장이 가는 사람의 입장이어서,
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보내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좋은 추억을 간직한 사람도 있지만,
후회되는 경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보낸 사람에게 살갑게 대했는지 되묻게 된다.
이후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다.
떠나는 입장이지만,
보내는 사람의 마음도 가끔은 헤아려봐야겠다.
글 부담과 논문 빚
역시 오전, 오후에 글을 써두지 않으면
글 부담이 늘어난다.
글 빚이 반갑지 않다.
글을 먼저 써두면 마음이 편하다.
물론 글에 좇기는 삶이 싫지는 않다.
어떻게든 글을 쓸 동력을 구하게 된다.
늦게 쓴 만큼 늦게까지 작업하게 된다.
글 부담이 싫지 않다.
글을 미리 쓰면 기쁠 뿐이다.
반면에 논문 빚은 싫다.
연구비를 받고 언제까지 써야 하는 논문이다.
다행히 이런 논문이 거의 없다.
그래도 이번 연구년(안식년) 미국 연수에 이런 빚이 하나 생겼다.
연구비를 많이 받는 교수나 연구자가 부럽기도 하지만,
논문 빚을 생각하면 그리 부럽지 않다.
인생 반반
모든 게 잘 될 순 없다.
잘 되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것도 있다.
인생을 이렇게 생각해야 편하다.
모든 것을 잘 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2-3개가 잘 되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
2-3개가 잘 안 된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다.
잘 되는 2-3개가 있지 않는가?
이런 내 모습은 혁신가의 모습은 아니다.
완벽주의자의 모습도 아니다.
그냥 그저 그런 평균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모습이 있어
실패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너무 잘 되려고만 하지 말라.
새로운 ‘글감옥’을 찾아야
미국 연수는 나에게 훌륭한 ‘글감옥’이 되었다.
2014년 유럽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글감옥’이다.
글감옥에 갇혀야 글을 쓴다.
좋아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볼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
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어야 한다.
커피 한 잔이나 맥주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곳이어야 한다.
제주에 가서 글을 쓰는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제주로 들어가기 전에 ‘필일오’를 재개할 수 있어 너무 좋다.
‘필일오’를 할 수 있어 그나마 글을 쓰게 된다.
이제 제주로 돌아가면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이 정말 일어나기를 바란다.
글을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어떤 사건이든, 어떤 마음상태이든
모든 것을 글쓰기 주제로 삼고 내용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하루 5장을 채워야 한다.
그게 내 길이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을 할 때는 무엇을 쓰기가 참 편하다.
그날 여행한 곳에 대한 정보를 쓰고 그 감상을 쓰면 된다.
자연스럽게 글이 흘러나온다.
반면에 무슨 일이 없는 하루일 때는 글쓰기가 참 힘들다.
내면으로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끌어낸다.
앞일을 생각하면서 계획을 쓴다.
세운 목표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돌아본다.
글을 쓸 때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할까?
여행자의 마음이 되어 여행기를 쓰듯 쓰면 어떨까?
인생이 여행인 것을 ...
수시로 쓰기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하고 뒹굴면서 글을 쓰기도 한다.
TV를 보면서 생각나면 글쓰고,
창문 밖을 보다가다 글감이 떠오르면 노트북을 꺼낸다.
필일오를 제대로 하는 방법이다.
밤늦게 3-4장을 몰아 쓰는 것은 좋지 않다.
시간이 될 때 수시로 써서 ‘필일오’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초서 풀이
예전에 초서 풀이를 시도한 적이 있다.
초서 풀이를 하면서 법철학 목차를 정하고
이에 관련된 초서를 연결하고 내 견해를 펼치는 것은 어떨까?
교수 2분기 작업으로 이 작업을 주안점에 두면 어떨까?
점점 목차가 잡히고 글도 써지지 않을까?
한국에 들어가서 꼭 시작해보자!
‘교수 2분기’에 할 중요한 작업이다.
공부 환경
Stumulate, Reflect, Collaborate, Play ...
창의성을 자극하는 환경 ...
EBS 통찰에서 어떤 교수가 말하는 내용이다
(환경이 창의적인 인재를 만든다).
우리 교육 환경은 정반대라고 말한다.
둔감, 기억, 경쟁, 일하는 환경이라고 한다.
경쟁적 교육 구조에서는
공부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새로운 도전에 소극적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연구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가?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가?
어떤 여건과 환경, 구조에 있는가?
공부를 즐길 환경과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Geisel과 Audrey
Geisel 도서관에 마지막으로 왔다.
Geisel 도서관이 내 연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크다.
어디를 가도 이곳처럼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다.
이곳에서 사유했고 이곳에서 글을 썼다.
이곳에서 쉬었고 이곳에서 놀았다.
Geisel 도서관 내 Audrey’s 커피점 커피가 주는 기쁨도 컸다.
Geisel과 그의 아내 Audrey, 한국에서 올 때만 해도 그들을 몰랐다.
Dr. Seuss의 동화책은 잘 모르지만
이제 그들은 내 마음 속에 들어왔다.
Geisel 도서관을 바라보는 Geisel 박사와 The Cat in the Hat의 형상이
내가 바라는 바다.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
어떤 사람은 불행을 당해 그 불행을 이겨내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불행을 이겨내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
어떤 사람은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최선을 다해 괜찮은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사람은 성공했지만 사람은 잃는다.
어떤 사람은 성공해도 사람을 잃지 않는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인생도 있고 저런 인생도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어느 인생이 낫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 나는 행운아라는 마음을 품으면
어떤 어려움에도, 어떤 슬픔에도, 어떤 행운에도 나름 대처하지 않을까 싶다.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은 ‘감사와 행운아 마인드’이다.
작가와 학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떤 삶을 살아가야 가나?
어떻게 내 삶을 살고 어떻게 내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무슨 혁신을 이루면서 살아갈 것인가?
어떤 기초를 살면서 살아갈 것인가?
작가와 학자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인가?
책과 삶을 연결시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내 인생에 주어진 과제 한 가지라면 ‘작품’을 만드는 거다.
작가와 학자의 삶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삶이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그냥 무난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
뭐 대단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 나름의 방향성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연구물을 꾸준히 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샌디에고와 제주
한국 제주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오니
샌디에고에서의 생활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아내는 꿈에서 깨어나길 싫어하네요.
현실로 돌아오니
나도 꿈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현실로 들어갑니다.
제주에서의 꿈을 잘 영글어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