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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Sep 07. 2023

퇴사하고서야 알게 된, 옆에 꼭 둬야 할 사람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점점 감각을 잃어갈 때쯤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심심할 때 집어드는 건 책이 되어버렸고,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펼쳐드는 건 일기장이 되어버렸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혼자 일 하지 않을 거야 확신하면서도 당분간은 이 삶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양면적인 감정이 든다. 사람과 단절될까 두려우면서도 누군가과의 마찰 없이 혼자 일하는 지금이 꽤나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시공간 제약 없이 책과 글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그곳이 우주가 됐든 지하세계가 됐든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세계가 됐든.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펼칠수록 그 끝에는 더더욱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한다 해도 내가 원하는 사람만 그려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도려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이따금씩 상상 속에서 빠져나올 때면,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자주 어려워진다.


'타인과 함께할 때 너는 어떤 사람이니?'




좋든 싫든 우리는 늘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좋은 에너지도, 나쁜 에너지도 모두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사람에 질려버린 누군가는 굳이 인간관계에 애쓸 필요 없다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요즘엔 굳이 관계에 애쓰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책이 됐든, 영상이 됐든. 방구석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고. 가끔은 그 정보들이 너무 많아 내가 잠식될 것만 같다고. 그러니 사람관계에 목숨 걸지 말라고. 타인에게 신경 쓸 시간에 실력을 키우라고. 물론, 여기서 인맥에 목숨 걸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인맥보다는 역시나 실력이 먼저니까. 하지만, 실력이 기본값으로 갖춰졌을 때 진짜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 기회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훔쳐오는 방식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오는데 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빼앗은 사람들은 자주 관찰했다. 그 결론은 


바로, 내 에너지를 보존시켜 주는 사람들이었다.




1. 애쓰지 않게 하는 사람



 본격적으로 조직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배려'라는 단어를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누굴 배려하며 사냐고,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내 몫은 하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게 주변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별문제 없이 편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타인을 겪고 나니 내 생각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편안했다는 건, 누군가가 애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걸 깨닫고, 이따금씩 편안하다고 느낄 때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군가는 늘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건 웃으면서 호의를 베푸는 방식일 수도,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혼자 감내해 내는 방식일 수도 있는데 가령 쉬운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A와 B가 있다. A는 늘 꼭 타인의 수저까지 놔주고, 물컵까지 채워주며, 오징어볶음이 나오면 타인의 접시에 오징어를 듬뿍 담아주느라 본인의 접시에는 콩나물밖에 남지 않는다. 내가 해도 되고 타인이 해도 되는 일들에 있어서는 늘 A는 이미 그것들을 다 해결해 놨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곤 한다. A는 늘 남들보다 부지런했고, 그 부지런함은 함께하는 타인을 편안하게 해 줬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행동들은 내가 에너지를 쓰는 것을 방지해 줬다. 반면, B는 본인의 목만 축이는데 급급하고 메인메뉴가 바닥이 날까 봐 속도를 올려 맛있는 부위만 골라 먹는 사람들이다. 일을 할 때에도 꼭 하나씩 챙겨줘야만 하는 사람들. 같이 있으면 어쩐지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것만 같은 사람들. 


나는 타인과 함께할 때 A였을까, B였을까. 어떨 때는 A였고, 어떨 때는 B였을 수도 있다. 내가 편할 때도 자주 있었으니까. A든, B든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는 중일 텐데 누가 좋다 나쁘다고 판단하는 건 어쩌면 섣부른 것 아닐까. 다만, 많은 마음이 갔던 건 A다. 내가 애쓰지 않게 배려해 줬던 사람들을 한 번 더 보고 싶고, 한 번 더 애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슬그머니 내 마음을 훔쳐가는 사람들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조금씩 빼앗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은 A는 자주 많은 기회를 붙잡고 있었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편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 더 불편해짐으로써 상대방을 애쓰지 않게 만든다면, 상대방의 에너지를 보존시켜 줄 수 있다면 타인과 함께할 때 무리가 없지 않을까. 




2.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



'이쯤이야 괜찮아요.'


나는 이런 말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불편하지 않게 해 주는구나. '나도 써먹어야지' 다짐하고는 의견을 나누는 중요한 상황이 닥치면,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준비해 둔 말이 앞서 튀어나왔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괜찮다' '~것 같아요' 모두 소극적인 어투다. 더 이상 일은 만들기 싫고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을 때 많이 쓴다. 만약,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 보편화 됐다고 쳐보자. 여행용 산소공급복은 지상에서 꼭 착용하고 가야 하지만, 산소 충전은 우주 정거장마다 할 수 있다. 때문에 정거장의 총책은 늘 산소 충전을 부지런히 해둬야 한다. 충전기기가 부식되지는 않았는지 늘 확인해야 하고, 혹시나 산소가 새지는 않는지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하며, 우주여행자들이 마음 놓고 산소를 살 수 있도록 여유분을 늘 구비해두어야 한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총책은 부하직원 관리에도, 시스템 관리에도 모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우주장 님, 요즘 산소 충전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자꾸만 충전하다가 꺼지는데요?"

"그거 교체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자네가 뭘 잘못 만졌겠지."

"아뇨. 제가 수십 번 테스트했습니다. 새 거는 맞는데 좀 불량으로 나온 것 같아요. 교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유, 꺼지면 다시 켜면 되는 걸 가지고. 자꾸 일 만들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대충 편하게 좀 해. 여태 문제 발생한 적 없었잖아. 그 정도는 괜찮아."


여태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충 하라며, 편하게 하라며 넘어가는 사람은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내 에너지를 유지시켜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사람은 예민하지 않다며,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 준다며 마음이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고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인식하지 못한 채 대충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그 힘을 지탱할 수 없을 때 폭파된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수백 배의 에너지를 감내해야만 한다. 




감각을 잃어버릴까 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타인을 대하는 감각이 점점 무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삶이 분명 만족스럽지만, 타인을 향한 감각을 잃으면 안 됐다. 사람과 함께하는 감각을 잃어버리다 보면, 정작 중요할 때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 


그르치지 않기 위해 내가 곤두세워야 할 것은 에너지였다. 상대방의 에너지를 고르게 유지시켜 줄 수 있도록 내가 편한 것을 경계해야만 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늘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일이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빼앗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자 훗날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으리라는 다짐이다. 





https://youtu.be/_gXLkKoEFow?si=KurEJtn17HeZmM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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