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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Jul 24. 2023

공무원 퇴사하려고 미친 듯이 했던 2가지

앞으로의 삶에서도 계속될 것들입니다




퇴사를 하고 나면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진다.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들은 드물었지만 어떻게 퇴사할 수 있었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는 걸 눈치껏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오랜 시간 준비했다고만 둘러댔다. 오늘은 그 오랜 시간을 어떤 것들로 채워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경찰 생활할 때 내가 머물렀던 공간은 5평이 채 되지 않는 자취방이었다. 자취방을 구할 당시 단순히 경찰서와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했는데 그 거리는 100m가 채 되지 않았다. 걸어서 1분, 뛰어서 20초면 출근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근무지가 시골이었기 때문에 문화생활 따위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어중간한 번화가에 있을 바에야 아예 출퇴근 거리를 줄이고 그 시간을 활용하자는 심산이었다. 운동을 목적으로 뛰지 않는 날이면 내가 걸은 거리는 1km도 되지 않았다. 회사-집-회사-집의 무한 반복. 새로운 자극을 받을 일이 없었고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는 조바심마저 일기 시작했다. 


그 조바심은 늘 독서와 글쓰기로 갈아치웠다. 5평의 자취방, 3층짜리 경찰서가 전부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했다. 물론 이것들로 돈을 벌 수 있어서 퇴사를 한 건 아니다. 실질적인 퇴사 준비는 분명 따로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퇴사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단연 독서와 글쓰기였다. 




1. 활자의 세계에서 유영하기



경찰 필기시험 합격 후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장기화되는 수험기간 탓에 도피처로 자주 책을 찾았는데 그 활자의 세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했다. 책은 자신의 그 작은 물성은 별거 아니라는 듯 내 기대감 혹은 상상력을 점점 부풀렸다. 


"이봐! 내가 이렇게 작아 보여도 꽤 알차다고! 라면 받침대로 쓰일 만큼 하찮은 존재가 아니야!"


처음에는 책만 읽으면 무조건 삶이 바뀔 수 있을 거라 가볍게 생각했다. 가볍게 생각한 만큼 치열하게 흡수하지 않았던 탓일까. 


"이 책을 읽고 월 1,000만 원 벌었어요."

"이 책을 읽고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었죠."


이런 성과는 아직 없다. 때문에 독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지난 5년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자의 입장으로써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독서는 흩어져있는 마음을 한 군데로 모아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응집된 마음은 꽤 단단해서 조금은 쓸모가 있다고 말이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잦아졌을 때도 마구잡이로 이 책 저책 찾아가며 읽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 부동산 책, 주식 책, 경매 책 등 퇴사 이후의 삶을 꾸려나갈 만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출근 전에도, 점심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늘 책을 찾았다. 누군가와 크게 왕래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격적으로도, 근무지역 때문에 환경적으로도 책을 집어 들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몇십 억을 벌었다 한들 부동산 임장이나 주식 그래프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고, 아무리 월 1,000을 벌 수 있는 사업이라 한들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부유하다가 이따금씩 자석처럼 달라붙는 책이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써내는 사람들


무의식 중에 그런 책들에 마음이 갔고, 어느새 책장은 비슷한 느낌의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무의식이 쌓이고 쌓여 '넌 이런 걸 원하는구나?'라고 내 의식에 들어앉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견고히 쌓인 책탑은 그 꼭대기에서 어느 뱡향을 바라봐야 할지 알려줬다. 


하지만 가끔은 그 탑이 무너질 것만 같은 순간도 있었다. 늘 준비는 반복됐고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어렵게 쌓은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작은 무의식의 방어벽을 쌓아주어야만 했다. "너는 할 수 있어. 분명 잘 될 거야. 지금은 이게 잘못된 것 같은데?" 그 방어벽은 때로는 자기 계발서였고, "오늘은 좀 힘들지? 때로는 아예 다른 세계를 경험할 필요도 있어." 때로는 소설이었다. 


 내 마음에 쌓인 탑들은 다행스럽게도(?) 조직에 물들지 않게 하는데 유용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모르겠는 승진제도, 근평제도, 위계질서 등. 이런 것들은 늘 화살이 되어 힘이 없는 자들을 공격했는데 견고히 쌓인 탑 덕분인지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촘촘해지고 높아졌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활자의 세계에서 유영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2. 활자로 나만의 세계 건축하기



경찰 조직에서 유용하게 배운 것이 있다면 기록 혹은 증거 남겨놓기. 누군가가 억울함을 호소할 때면 사건처리할 때 필요하니 증거를 꼭 모아두라고 신신당부했다. 업무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서류든, 다른 직원과의 다툼이 생겼을 때 들이밀 증거든, 막무가내로 업무를 떠넘기려는 누군가에게 내밀 근거든 활자화되어 있는 기록이 필요했다. 이 기록들은 불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쏠쏠한 탈출구가 되었다. 그 탈출구를 빠져나온 자는 승리했고, 빠져나오지 못한 자에게는 책임이 전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내 삶의 증거들도 모아놔야 했다.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록한 나에 대한 증거들. 


왜 저 사람은 늘 시비를 거는지 

왜 이 사람은 함께 하고 싶은지 

내가 이 상황을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지

과연 타서, 타청을 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지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글자로 옮겨놓으면 그것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때로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꽤 유용한 장치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퇴사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의 기록들. 


오늘 읽은 책에서는 어떤 구절이 좋았는지

그 구절을 읽고 바뀐 생각은 무엇인지

바뀐 생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확장된 생각들이 하염없이 떠다니지 않도록 활자로 고정시켜 놓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활자들은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인지, 어느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줬다. 독서로 쌓은 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글쓰기로 지반을 더 튼튼하게 해줘야만 했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가 건축될 수 있었다.




탑 쌓기는 계속된다



퇴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당장 유튜브만 찾아봐도 세상에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다양성 속에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있어야 했고 나를 중심에 두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해 준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누군가 펼쳐놓은 활자의 세계는 내가 머무는 공간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줬고, 내가 펼쳐낸 활자의 세계는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https://youtu.be/9an183da6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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