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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Jul 03. 2023

요즘 젊은 공무원들이 현타를 느끼는 순간

임용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 조직편

요즘 매체에서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에 대해서 많이 다루곤 한다. 그런 영상들을 둘러보다가 한 영상의 제목에 멈칫했다.


'요즘 초임 공무원들이 가장 현타를 느낀 순간'


아마 나도 현타가 쌓이고 쌓여서 퇴사까지 이르게 된 것 같은데, 그 현타의 순간을 조금 세분화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현타의 순간은 매일 그리고 꽤 자주 찾아왔다. 야간근무로 점점 나빠지는 건강, 강도 높은 업무에 비해 그렇지 못한 월급, 이간질에 신이 난 인간들, 제대로 한 업무에 민원 먹는 사태 등.. 그리고 경찰 조직의 특이성. 






첫 번째, 계급 제도


경찰 조직에는 계급이 있다.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11개로 세분화되어 나눠져 있는데 메신저에도, 조직도에도, 보고서에도 늘 계급 뒤에 이름이 오는 순서다. 수직적인 구조로 계급을 세분화시켜 놓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꽤나 효율적이다. 팀을 구성할 때도, 난이도에 따른 업무를 분장할 때도. 


하지만, 내가 경찰조직에서 느낀 계급 문화는 그저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인성 불문, 능력 불문 계급이 높다면 언제든 수류탄을 던질 수 있었다. 칼과 창을 가진 하위 계급들은 수류탄 한 방에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무력화된 것에 대한 뒷감당은 수많은 업무, 남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떠안는 것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문제가 없었다. A4용지 한 장에 같은 높이와 넓이로 업무 분장이 되어 있었으니까. 칸을 채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없는 업무는 늘려서 쓰면 되는 일이었고 많은 업무는 두세 글자로 줄여서 쓰면 되는 일이었다. 과중한 업무까지는 괜찮았다. 양이 질로 전환되는 지점이 분명 있을 테니까.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업무 외에도 감당해야 할 것들이 문제였다. 계급이 전부인 것 마냥 돌아가는 시스템. 


*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정한 픽션일 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김순경은 팀장, 과장의 결재를 받아 계획서를 하나 기안했다. 타 팀에게도 모두 공람을 걸고 조금 숨을 돌리려던 찰나.. 문을 퍽 열고 경위 수류탄이 들어온다. 그는 수사팀의 팀장이다. 


수경위 : 어 김순경, 이거 계획서 왜 이렇게 짰어? 일정 확인 했어?

김순경 : 네, 팀장님! 기존에 나와있던 당직근무표대로 했습니다. 아까 과장님께서 회의하실 때 각 팀장님들 이상 없으시다고 이대로 진행하라고 하셨어요. 

수경위 : 아니, 과장 탓 말고. 김순경이 나한테 직접 확인했어?

김순경 : (…?)

수경위 : 아니이 ~ 과장은 과장이고!! 그건 오전이었고!! 지금은 오후잖아!! 수사관들 매번 조사 일정 바뀌는 거 몰라? 기안 올리기 전에 나한테 직. 접. 와. 서. 확인했어야지. 과장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 하면 다야? 일을 왜 그따위로 해 ~~!! 요즘 젊은 공무원들은 남 탓이 특기인가?


그때, 문을 열고 과장이 들어온다. 과장의 계급은 경정이다. 경위보다 두 계급 높다. 갑자기 말이 없어지는 수류탄.


김순경 : 과장님! 뭐 필요하세요?

과장 : 어어, 물티슈 한 박스만 좀 부탁해요. 아, 수팀장. 당장 내일부터 T/F 돌아가는 거 알지? 내일이 수팀장이던데..

수경위 : 아 과장님, 근데 이거 일정이.. 내일 안 되겠는데요. 김순경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짜버리는 바람에..

과장 : 아침에 회의할 때 다 확인하고 오케이 했는데 무슨 소리야? 그럼 다른 팀장하고 알아서 바꿔.

수경위 : 아아.. 이거 다시 짜면 안 될까요? 안 되는 일정이 많습니다.

과장 : 그럼 아침에 말을 했어야지. 수팀장 하나 바꾸면 다른 팀까지 싹 다 바꿔야 돼. 아침에 딴생각하는 것 같더니만.. 다른 팀 하고 잘 조율해 보게. 


 물티슈를 들고나가는 과장. 수경위의 미간 사이 주름이 깊어진다. 김순경을 못마땅한 눈으로 흘끗 보더니 한마디 던지고 사라진다.


수경위 : 김순경. 우팀장한테 한 번 전화해 봐. 김순경이 기안자니까 책임지고 바꿔야지 뭐. 



A라는 업무에 대한 논란거리가 생기면, 그 업무를 처리한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했다. 본인보다 상위 계급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 화살은 늘 다른 하위계급에게 던져졌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배들도 분명 존재한다. 운 좋게도 나는 그런 선배들을 많이 만난 편이지만 정말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일이었다. 


계급이 높아질수록 거머쥘 수 있는 것이 누군가에 대한 수류탄이라면, 그 수류탄이 누군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면 계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두 번째, 성과제도


공무원 조직에도 성과제도가 있다. 그 성과에 따라 1년에 한 번 주어지는 성과금의 액수가 차등되어 결정된다. 


성과 : 이루어낸 결실


그런데 내가 겪은 성과제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과인지 구별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누가 따 먹을 수 있는 열매인지는 모르겠으나 열매만 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현장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내려지는 성과 지표들, 숫자로 평가되는 업무 능력들, 보고서를 위해 찍어야만 하는 사진과 직조되는 문장들. 


*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설정한 픽션일 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열심히 계획서를 만든 김순경.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낸 것 같아 신난 표정이다. 기대에 가득 차 옆에 앉아있던 주선배에게 말을 건다. 주선배의 계급은 경사로, 김순경보다 두 계급 높은 팀원이다.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는 주선배 덕분에 업무가 조금씩 적응되던 차였다. 


김순경 : 선배님, 이번 계획서는 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주경사 : ㅋㅋ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김순경 : 실제로 학교 방문해서 홍보하고 직접 알려주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학생들 엄청 많을 것 같은데.. 와 이 학교들 방문하려면 빡빡하겠는데요? 그래도 의미 있다!! 

주경사 : 그 학교들 다 방문할 것 같아? 

김순경 : 안 해요?

주경사 : 그냥 옛날 사진 한 두 장 넣고 결과 보고 쓰면 돼.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 학교들을 어떻게 다 돌아 이 사람아ㅋㅋ 

김순경 : 잉?? 서장님 결재도 다 받았잖아요. 그럼 다 안 가요?

주경사 : 그 전단지 있지? 홍보물 나온 거. 그거 잘 담아서 전달해 주면 돼. 그게 홍보지 뭐.

김순경 : 이거 홍보물만 봐서는 잘 모를 것 같은데.. 한 번쯤은 직접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이거 왜 여기 이렇게 학교를 많이 쓰라고 하신 거예요?

주경사 : 그게 다 성과야. 이런이런 것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했다. 이것만 보여주면 돼. 공무원 업무에 많은 힘을 들이려고 하지 마. 우리 다른 해야 할 것들 많은데 언제 직접 이 학교들 다 돌고 근거자료 남기겠어. 그냥 우리는 보고서 잘 쓰고 최소한의 전달만 하면 끝나는 거야. 


공적인 업무를 한다면 어떤 타인에게는 도움이 닿아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닿는 도움보다는 각 지역별 랭킹이 중요했다. 아무리 각자의 경찰관이 타인의 삶에 도움이 닿았다고 한들 그것보다는 얼마나 사건을 많이 처리했느냐, 성과지표에 다 도달했느냐, 그럴싸한 계획서를 만들었느냐가 훨씬 더 중요했다. 


"빈껍경찰서, 청소년을 위한 데기제도 홍보 적극 시행"


이 한 줄을 위한 보고서였다.




현타를 느끼는 순간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면



경찰이라는 직업만을 놓고 보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보람 있는 직업이었다. 심지어는 주취자를 귀가조치 하는 것조차도 소소하게나마 의미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감당해야 할 것들의 무게가 훨씬 더 무거웠다. 결국 그 무게가 기울어질 때, 모든 것들이 다 쏟아져버리고 말 때,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게 된다. 그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계급의 무의미함에 아예 승진을 포기하던가, 의미 없는 성과에 최소한의 일만 하며 쉬운 일만 찾아다니던가, 아예 조직을 벗어나던가. 


젊은 공무원들이 자주 어긋나는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균형이 조금 더 합리적으로 맞춰줬다면 젊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떠났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_Mm5Nnash1Q&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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