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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Oct 12. 2023

경찰 누나, 이건 제 마음이에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낸 순간 - 계산 없는 건넴 

"안녕하세요~!"


오후 5시. 스터디카페에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어떤 아이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꽤 오래 알아온 사이인 것처럼. 하지만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지역이기에 아는 아이도 아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던 아이도 아니었고, 옆집에 사는 아이도 아니었다. 너는 나를 아니.라는 질문을 던졌다가는 아이의 순수함에 해가 될까 봐 나도 있는 힘껏 아는 체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 안녕!


세상에서 가장 때 묻지 않은 인사를 듬뿍 받았던 때가 있다. 경찰생활 할 때 아이들 등교시간에 맞춰 30분가량 초등학교 안전활동(?)을 했었다. 벌써 퇴사를 한 지 4개월이 넘어가고 있는지라,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도록 이동 차량을 주시하고, 간단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제복을 입고 뻘쭘하게 학교 앞에 서있을 때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인사를 건네왔다. 엄마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수줍어하며 인사를 건네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약간의 거리감을 두며 인사를 건네고, 허리춤에 찬 건 진짜 총이냐며 신기해하며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교문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 앞 슈퍼에서 각종 군것질, 놀잇감 구매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도 상당했다. 늘 그 슈퍼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수많은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백팩을 메고, 오른쪽 팔꿈치에는 아슬아슬하게 실내화 가방을 걸쳐놓고, 그것도 모자라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의 5배는 되어 보이는 크로스백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과자를 하나 구매하고 나오며, 슈퍼 앞에 있던 평상에 크로스백을 내려놓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조심스레 훔쳐봤다. 아이가 지퍼를 연 크로스백 속에는 정성스레 정리한 간식들이 가득했다. 새로 산 과자가 잘 들어가지 않았는지, 안에 들어있던 과자를 모두 털어내고 다시 정성스레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새로 산 과자가 크기는 조금 컸기에 정리에 실패할 것 같았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스킬로 각 과자들에게 자리를 지정해주고 있었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백팩에 과자를 넣고 등교하든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먹어 치우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간식 가방이 따로 있는 아이는 처음 보았다. 아이는 왜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방을 하나 더 마련했을까. 혹여나 친구들에게 간식 심부름을 강요당한 것은 아닐까. 아니다. 아이만의 보물창고에 내가 괜한 의심을 보태는 것이 아닐까. 경찰의 때 묻은 의심과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오가며 갈등하다, 아이의 과자 정리가 다 끝나갈 때쯤 말을 걸었다. 


"그 가방은 무슨 가방이야..?"


다르게 질문을 건넸어야 했나. 나름의 다정한 물음을 건넸음에도, 아이는 무심히도 나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지퍼를 닫았다. 그래, 어쩌면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느끼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바삐 등교하는 아이들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던 중 내 앞으로 훅 작은 물체가 들어왔다. 간식을 정리하던 그 아이가 나에게 내민 것은 막대사탕이었다. 제복을 입고 무언가를 받는 것은 왠지 거부감이 드는 일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스치는 생각은.. 괜찮아, 나 대신 네가 맛있게 먹어. 동시에 피어난 생각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거였다. 질문에 답도 하지 않던 아이가 자신의 무언가를 내어 준다는 것은 꽤나 큰 결단일 수도 있었다. 말대신 행동이라니. 심쿵한 마음을 추스르고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우와, 고마워, 잘 먹을게.^^ 아이는 아까와 같은 태도로, 무심하게 사라졌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건네는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늘 타인과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경찰생활을 하면서 나는 대부분 지저분한 것들을 받았고, 이에 질세라 너덜너덜한 것들을 타인에게 던져댔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심지어는 인사에도 이유가 붙었다. 인사 잘하고 다녀. 그래야 선배들이 좋게 봐. 그렇게 각자가 두드린 계산기에 의해 나는 여러 번 두들겨 맞았다. 발길질에 맞아 멍이 들기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씨발' 욕설을 받기도, 절차대로 한 업무에 '직무유기' 고발을 받기도, 계급에 의해 떠넘겨지는 업무를 받기도. 계속 이런 것들을 받아내다가는 내 마음이 염증으로 가득 찰 것 같아서 나는 그것들을 내 방식대로 오염시킨 후 남에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내 몸에는 염증을 걸러낼 순환시스템이 없었다. 밖으로 배출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남에게 쏘아댔던 독기에 가득 찬 말, 눈빛, 태도는 결국 내 안의 염증을 더 크게 만들었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1차 오염,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2차 오염. 


그 염증을 녹여냈던 건 결국 아이들의 계산 없는 건넴이었다. 숱한 실망 속에서 건져낸 가느다란 희망은 생각보다 탱탱했다. 내 마음을 튼튼하게 동여매기에 충분했다. 퇴사 후에 만난 아이도, 경찰일 때 만났던 아이들도 모두 계산 없는 마음을 건넸다. 그것이 밝은 미소로 건네는 인사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내어주는 사탕이든, 자신의 꿈도 경찰이라며 보내는 반짝거리는 눈빛이든.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받았던 계산 없는 건넴을 다시 타인에게 건네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따뜻한 눈빛으로, 친구에게 잘 지내냐며 안부를 묻는 것으로,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날 때는 조그마한 선물을 건네기로. 그리고 순수한 인사를 건네기로. 


지나가는 아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좋은 하루 보내!"







아이가 무심하게 건넸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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