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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이음 Jul 17. 2023

공무원 퇴사보다 더 후회되는 것

20대에 인생이 꼬이는 과정







현실도피



"넌 늘 열심히 사는 것 같아. 근데.. 뭐랄까 현실도피성 성장형 캐릭터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보여."

"그게 무슨 뜻이야? 현실도피성 성장형 캐릭터?"

"응,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긴 치는데 진짜로 너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랄까. 너가 20대 때 진득하게 해 본 거 있어?"


서른 살, 문득 인생이 살짝 꼬여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대는 물론이고 20대까지 크게 방황한 적이 없었다. 크게 방황한 적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방황이었던 걸까. 대책 없이 던져진 문장 때문에 내 과거를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20대의 전부는 늘 꽁꽁 숨기려고 애써왔던 것 같다. 내 못난 점을 숨기려고 선택한 것은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그 ‘열심’이라는 단어는 늘 무언가를 포장하는 것에 능했다. 편입하면 내 학벌 올라가니까 더 좋아질 거야, 남들 자격증 하나 딸 때 두 개 따면 더 취업 잘할 수 있겠지,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성공한다는데 새벽수영을 다녀야겠어, 경찰합격하면 조금 안정적이니까 삶이 더 나아지겠지, 책 쓰면 조금 차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포장하면 좀 괜찮은 내가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사는 그 과정에 자주 날 밀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은 꽤 봐줄 만했다. 허우적거리다가도 늘 뭍으로 빠져나왔으니까. 무엇이든 남보다 조금 느렸지만, 결국엔 대부분은 해냈으니까.


그런데 어쩐지, 도무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늘 어딘가 축축했고 다시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헤엄쳐 나올 힘을 자주 잃곤 했다. 빠져나올 수 있는 근육이 없었다. 그렇기에, 20대 때는 근육을 키워야 했다. 그 근육은 넓게 말하면 능력이고 좁게 말하면 개성. 헤엄쳐 나올 수 있는 강한 팔, 다리근육은 나만 가질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여태 해왔던 건 오늘의 날씨를 살피거나, 오리발을 끼고 헤엄을 치거나, 물안경을 쓰고 주위 동태를 살핀 것이었다. 늘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인생이 꼬이는 시작점



어쩌면 인생이 꼬이는 건, 남들이 하는 걸 모두 해내려 할 때 시작되는 것 같다. 자꾸만 나를 감추려고 하는 것. 이상하게도 이것저것 하려고 할 때 개성은 점점 사라진다. 왜 자꾸 이것저것 하냐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으니까. 나도 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으니까.


"요즘 웬디컷 이쁘지 않냐. 나 그렇게 잘라보려고."

"지금 집 안 사면 안 될 것 같아. 대출 좀 알아보려고."

"나 요즘 카카오 주식 50만 원씩 사잖아. 주식 모르는 애들은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고."

"요즘 나 짠테크 하잖아. 소시지로 일주일 버티는 중."


웬디컷으로 자르면 좀 트렌디해진 것 같고, 집을 사놓으면 조금 안정감이 들고, 카카오 주식까지 있으면 마음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짠테크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보기 드문 청년인가. 남들 눈에는 바르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종종 타인의 칭찬까지 듣고 나면 내 인생, 꽤 잘 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터지기 시작한다. 웬디컷으로 잘랐던 머리는 산발이 되기 시작하고, 금리가 자꾸 오르면서 벌어들인 돈은 모두 이자를 갚는데 들어가고, 그 이자 때문에 매달 사던 카카오 주식을 매도하려는데, 매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아끼지 않으면 살아날 수가 없으니 자발적 짠테크가 아닌 타발적 짠테크에 이르게 된다. 


'뭐랄까 현실도피성 성장형 캐릭터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보여.'


다름 아닌, 나에 대한 도망이었던 거다.

나한테 묻지 않고 이런저런 트렌드를 따라가려고만 하는 것.


남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에 끼워 맞춰 나를 포장할 때는 좋다. 하지만, 포장을 벗긴 알맹이를 마주했을 때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나를 보기 좋게 감쌌던 포장지들은 이제 모두 쓸모없다는 듯 저 구석에 처박혀버리기 마련이다. 대학교 때 따두었던 자격증들은 서랍에,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수험서들은 이미 버린 지 오래, 3년간 했던 경찰을 증명해 주는 제복은 정리함에 들어가 있다. 그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나에 대해 증명해주지 않고, 증명해 줄 수도 없다. 


"너 좀 열심히 살던데.. 그래서 뭘 잘해?"


"글쎄요.."




근육을 키우면서, 조금씩 주워보는 것



20대에 나랑 대화하는 시간만 많았어도 조금은 달랐을까. 선택에 더 신중할 수 있었을까. 일순간에 이는 마음으로 쫓기듯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 진득한 대화로 내리는 조금 무게 있는 선택.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에 능하지 못했다. 나랑 대화하는 방법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으니까. 늘 요즘 좋은 것은 무엇인지,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은 무엇인지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왔으니까. 


나랑 대화를 어떻게 하냐고?


혼자만의 시간을 혼자 많이 가져보면 된다. 그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보면 조금 선명해진다. 생각은 쉽게 흘러가기 때문에 순간의 생각에 의한 선택은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촘촘히 기록해 두면 된다. 그럼 그 기록이 말해준다. 네가 정말 원했던 건 이런 거라고. 과거의 너는 이랬고, 지금의 너는 이렇다고. 


비록 내세울 것 하나 없을지라도 내 10년의 시간이 아주 쓸모없었다고 단정 지어버리면 조금은 슬플 수도 있는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늘 후회하지 않고 살겠어' 가벼운 위안을 삼으면서 내게서 떨어졌던 부스러기들을 주우며 걸어가면 된다. 어떤 조각품이 되진 못했을 테니 결국 부스러기가 되고 만 것들.


그냥 눈대중으로 보면 볼 수 없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보면 내가 떨어뜨렸던 부스러기들이 조그맣게 보인다. 가령,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는 무슨 과목이든 무조건 기출문제집은 10번 이상은 봐야 했다. 3~4번 보는 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10번, 20번 문제집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던 힘은 다른 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10번 이상 고쳐본다거나, 닮고 싶은 작가가 있으면 10번 이상 필사를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까짓꺼, 하면 되지’

 

내가 떨어뜨렸던 부스러기는 무언가 끝까지 해낸 힘이었다. 그 작은 힘을 가지고 30대를 후회 없이 살아내면 그만이다. 오로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성장. 대신, 조금 더 신중하게. 내 생각과 기록을 근거로 순간을 선택하면 되는 거다. 그 선택이 20대 때 꼬였던 것들을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고. 




https://youtu.be/zGU2sE0Cj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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