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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Aug 04. 2023

인생의 법칙

눈꽃 에세이 5

인생의 법칙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살았던 삶이 억울하고 불행했다고 항변하기 때문에 신은 인간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아주 커다란 나무의 가지마다 타인들의 인생이 적힌 책들이 걸려 있다. 그리고 신은 말한다. “가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고 원하는 삶을 가져오면 그 삶으로 다음 생에는 살게 해 주겠다.”고. 사람들은 기대에 차서 나무에 기어 올라가 책에 적힌 사람들의 삶을 읽는다. 부자의 삶, 명예로웠던 삶, 권력을 누렸던 삶 등 최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지새운다. 그러나 결국엔 신에게로 가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제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세요.”


  어려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왜?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분명 나보다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지 않겠어? 하면서 수긍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니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지 지금은 이해가 된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자라고 할지라도 두 개의 인생을 동시에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이 겪는 이 삶이 가장 힘겹고, 슬프고, 억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문밖에서 훔쳐보는 타인의 삶은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만들어낸 세상처럼 아름답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따뜻해 보이는 풍경 안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나 느끼는 감정 역시 항상 그러하다고 우리가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말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우리 엄마에겐 함께 한 지 40년도 넘은 일곱 명의 절친들이 있다. 교회에서 동갑내기 친구들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지켜오고 있다. 철마다 승합차를 빌려 국내 여행을 다니고, 3년에 한 번씩은 곗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가며, 서로의 경조사엔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서로 늙어가는 모습을 위안하며, 안쓰러워하면서 보낸 시간 속에서 벌써 그녀들은 일흔의 나이를 함께 맞이하게 되었다. 참으로 부러운 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학교 동창들도 아니고, 결혼을 한 후 사회에서 만난 관계를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듯도 했다.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결과, 저울에 올려진 각자 인생의 무게가 총량은 다 비슷하단 걸 세월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돈복이 많아서 사는 곳마다 재개발 호재에 가만히 있어도 돈이 굴러들어 오는 친구는 평생을 아픈 몸 때문에 병원 들락거리기를 제 집 드나들듯이 했고, 세상에 없는 자상한 남편을 둬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친구는 10년 넘게 누워계신 시어머님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병수발을 들었는데,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자 남편이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군인인 남편을 둔 덕에 늙어서도 연금으로 노후 걱정 없던 친구는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 사고를 쳐서 당시 아파트 한 채에 해당하는 합의금을 지불하고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분은 그 이후 만나는 남자마다 의처증 환자거나, 놈팽이, 혹은 구두쇠였다. 우리 엄마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 나온 아들이 고시를 패스해서 엄마 어깨의 뽕을 높여 주었지만, 평생을 사업하다 말아먹는 것이 취미인 우리 아버지와, 이혼해서 혼자 사는 딸인 내가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요즘엔 등산 가면 자기만 무릎이 젤 성성하다는 것이 최고의 자부심이 되었지만)


 그녀들도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들을 헤아려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던 그 시간들을 지나 세월의 허방다리를 건너면서 완벽한 인생은 세상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리라.

 “엄마, 아줌마들 중에 누가 젤 부러워?”

 “부럽긴 누가 부러워. 이것 있으면 저것 없고, 저것 있으면 이것 없지. 모르겄네. 나중엔 요양원 안 가고 덜 아프다 죽는 년이 젤루 부러울지도.”


 엄마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건, 이제는 나도 철이 들었거나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린 시절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없고, 어른이 되어 일을 하며 돈을 벌 땐 시간이 없다. 돈과 시간이 있을 때에는 건강이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돈은 빌릴 수 있고 시간도 어찌어찌 만들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리거나 조율할 수도 없으니 지금 건강할 때 행복하게 놀자고.

 예전엔 노인들이 수레를 밀며 폐지를 주우러 굽은 허리로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젊은 시절에 열심히 안 살았나?', '저 나이까지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안 됐고 고달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들은 그 연세에도 건강해서, 스스로 움직여 살아가고 계신 거니 축복받은 것이었다. 진짜 힘든 사람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들 요양원이나 산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내가 스스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인생의 법칙을 조금씩 알아갔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면, 나의 절망이 나에게만 오는 형벌이라고 느껴졌다면, 이 긴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하지만 지금은 알게 되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면, 사랑 총량의 법칙도, 행복 총량의 법칙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한 번의 인생만 살 수 있는 삶에서 가보지 못한 길이 언제나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쪽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그 길의 돌부리에도 우리는 넘어질 것이고 아파했을 것이다. 지금 걸어가는 이 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과 만족만이 진정한 나의 것이라고... 그것이 변치 않는 인생의 법칙이 아닐까.




(다섯 번째 에세이 끝)




- 웹진 <숨 빗소리>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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