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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저씨들이 서울 노래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내가 마치 대북 외교관이라도 된 듯한 이상한 책임감이 들었다.

by 밍영잉 Apr 02. 2025

기차 안,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작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다.


크지도, 그렇다고 불편할 만큼

 작지도 않은 그 테이블 위에는

대개 1층 침대에 머무는 

두 사람의 짐이 놓이곤 했다.


2층 침대를 사용하는 아저씨들은

이따금 간식을 올려두는 것

이외에는 책상을 쓰진 않으셨지만

나는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와

한국에서부터 이고 지고 온 책,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을 주로 올려두곤 했다.



방금 있었던 이 재미난 이야기를

일기에 담기 위해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쳤다.


탁—

타닥타닥


그때 명식 아저씨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이것은 컴퓨터 건반 아니니?"


"맞아요! 손전화 하고 무선으로 연결해서

컴퓨터처럼 쓸 수 있어요!"


아저씨는 눈에 띄게 놀라는 기색은 없었지만

처음 보는 물건인 듯,

손으로 만져보고 열어보고 뒤집어보며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셨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용화 아저씨는 

이층 침대에 누워계시다가

일기를 쓰고 있는 내게 말을 거셨다.


"거 남에서 가져온 책이니?"


"네, 소설이에요.
 일본 작가가 쓴 책인데,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용화 아저씨는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을 

한참 동안 넘겨보셨다.


두 분은 늘 우리나라의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셨다.

하지만 신기해하는 말투나 감탄은 없었다.

담담한 태도로

그저 끊임없이 궁금해하실 뿐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쩐지 내가 대북 외교관이라도

되는 듯한 이상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가끔 멈칫할 때가 있었는데,


우리 칸에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씻기 위해 차례로 흩어졌을 때

한 아저씨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서울 음악 좀 들려줄 수 있겠니?”


작게 묻는 말투였다.

그 말속엔 호기심과 동시에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또 책임감이 발동하여
꼭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음악은

'015B의 슬픈 인연'이었다.


휴대폰 스피커에서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귀에다가 꽂는 거로 듣자!!"


아저씨와 내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중에  

복도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아저씨는 놀란 듯 

이어폰을 재빨리 빼셨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선생이 있어~.."


선생.

그건 단순한 직함이 아니었다.


사상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으며,

이런 해외 방문 중에는 반드시

그 ‘선생’이 동행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아니 그럼 선생에게 나는

눈엣가시가 아닌가..!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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