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이제라도 비로소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
태양이 쨍쨍 내리쬐었지만 나의 내면은 우울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지내기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해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일어나 밖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모든 것이 금방 달라졌다.
'움직임=기분'이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의자에 앉아 지내면 지낼수록 우울해졌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차올랐다.
오늘부터 딱 1년,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샘 혼 지음, 비즈니스북스, 175쪽
중학교 3학년 때 리듬 체조의 손 연재 선수처럼 당당한 걸음걸이로 혜성같이 등장한 선생님이 수학은 어렵고 골치 아픈 것이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다. 지금도 성함이 잊히지 않는 ‘정 경’ 수학 선생님은 어깨를 한껏 부풀린 꽃무늬 프린트 원피스를 즐겨 입으셨는데, 그분의 도발적인 질문은 더더욱 잊히지 않는다.
“수학은 정의가 기본입니다. 정의로부터 출발해요.
그렇다면 정의(定義)란 무엇일까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만큼이나 심오한 질문에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선생님은 새끼손가락을 귀엽게 내밀며 말씀하셨다.
“정의는 바로 약속이죠. 우리 앞으로 이건 이렇게 하기로 하자고 다 같이 정해 놓은.”
90년대 원조 요정 핑클의 누구보다 먼저 약지 퍼포먼스를 펼치셨으니, 우리 선생님이 원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듯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질문에 명쾌한 해설로 ‘수포자’나 다름없었던 나는 덕분에 점차 수학에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수학 무능력자였던 봄을 지나 가을에는 수학 경시대회라는 생소한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이란 걸 해봤으니 말이다.
물론 전교 1등 녀석이 딱 한 번 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운 좋게 얻어걸렸다. 하필 그때 나는 수학에서 인생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의 다소 못마땅한, 아이들의 의아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행을 모른 채 ‘교과서에 충실했던’ 애송이 실력이라 ‘아, 수학 경시대회란 이런 거구나. 몰래 과외까지 받는 그 녀석이었다면 더 많이 맞혔을 텐데.’라고 탄식하며 참가에 의의를 두어야 했지만 말이다.
몰랐던 신세계를 알게 해 준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직도 뇌리에 또렷한 수학의 정의로운 공식 하나를 소개한다.
‘제곱, 제곱 이 짠, 짠.’
버튼도 안 눌렀는데 가끔가다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이 공식을 원래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
(a+b)2=a2+b2+2ab
보이는 글자와 숫자 그대로 외웠다면 내가 여태 기억하는 수학 공식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다시 수학을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었던 주범이 바로 수많은 공식들이었으니까. 달달 외우느라 머리가 터졌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 고마운 정의가 바로 그 공식들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단 머릿속에만 집어넣으면 일 대 응 대응에 자질구레한 예외도 없으니 그다음부터는 가래떡 뽑듯 답을 뽑기만 하면 된다. 물론 지금은 사고력 수학으로 바뀌어 이마저도 녹록지 않겠다만.
따지고 보면 누구나 학창 시절뿐 아니라 살면서 귀납적으로 정의된 나름의 공식들이 다 있다. 각자 데고 베이고 다치고 파이면서 경험치로 쌓인 인생의 공식들이다.
<오늘부터 딱 1년,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 샘 혼은 ‘움직임 = 기분’이라는 공식을 제시했다. 움직임은 우울함을 날린다. 이로 인해 찬란한 햇빛 아래 봄꽃이 만발한 캠퍼스 교정 한 귀퉁이에서 ‘봄이 이토록 눈부신데 나는 왜 이리 칙칙할까.’ 자문했던 이유가 27년 만에 밝혀졌다. 진달래꽃 보면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지 말고 내리쬐는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활보하고 다녔어야 했다.
샘 혼의 친구이자 심리학자인 다이앤은 ‘좋은 시간, 좋은 삶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에 꼭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줘라. 귀를 열고 시선을 줘라. 그것이면 충분하다(198쪽).’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아이들의 말을 빌려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 = 시간’
코로나19 때문에 집콕 긴 휴가로 집안에서 온 식구가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에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쳐가던 무렵, 오히려 아이와 마음껏 뒹굴고 노는 시간, 사랑을 쏟아붓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움직임= 기분, 사랑=시간이네.’
‘제곱, 제곱 이 짠, 짠.’만큼이나 명료하고 쉬운 인생의 공식 두 가지가 내 것이 되었다. 기분은 움직임, 사랑은 시간. ‘삶은 계란’처럼 쉽고 간단해서 애써 중얼중얼 외울 필요도 없다.
이내 이를 삶의 공식으로 모아 글을 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피어올랐다. 공식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석 삼자로 딱 좋겠다 싶은 순간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엄마, 내 능력은 무한해! 무한하다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이야.”
가끔 아이의 뜬금없는 말이 그 어떤 진리보다 무릎을 탁! 치게 할 때가 있어 평소에도 그냥 흘리지 않는 편이었다.
“와우, 그래.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훌륭한 명언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분홍색 색연필을 바삐 움직여 읽고 있던 책 첫 장에 적어 놓았다. 그리고 공식처럼 만들어보았다.
‘내 능력=limit ∝(무한대)’
음... 그런데 어른인 나는 ‘뭐든지’라는 말이 왠지 자신이 없다. 어설픈 경험 덕에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수학 공식에는 없다는 예외 조항, 아니 조건을 달아보았다.
‘7살에 빙의된 자신감과 유아독존식의 믿음을 전제로.’
이로써 삶의 공식은 3가지로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⓵ 기분= 움직임
⓶ 사랑= 시간
⓷ 내 능력= 무한대(단, 믿어야 함)
수학에서 정의가 약속이라면, 삶도 다수의 경험 데이터에 의한 인정을 바탕으로 공식처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수학의 식처럼 억지로 외울 필요는 없지만 ⓷의 전제조건을 따라 일단 그렇게 믿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고, 그렇게 믿는다고 해서 공식대로 저절로 된다는 보장 또한 없다. 직접 움직여야 기분이 좋아지고, 시간을 내야 사랑을 표현할 수 있듯, 실제로 행해야 공식의 왼편이 오른편과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정의가 약속이라면 삶의 공식은 믿음이고, 그 믿음은 실천으로 이루어지니, 공식은 곧 실천인 셈이 아닐까?
삶의 공식=믿음, 믿음=실천, 그러니까 삶의 공식 즉, 삶은 실천!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매우 자신 없으나 어쨌든 나와의 약속에 의한 나만의 정의대로라면, 내 삶의 공식은 곧 실천이다. ‘식’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뭐한, 허점투성이 공식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면 그렇게 정의된다고 우겨볼 수 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글을 급하게 마무리해야겠다. 부디 가능한 많은 이들이 내가 내린 정의에 동의했으면 좋겠다. 자랑스러운 우리 영화 ‘기생충’의 대사, ‘믿음의 벨트’처럼 나와 엇건 새끼손가락을 연결, 연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번 속는 셈 치고, 손해날 것 없으니, ‘아님 말고’의 정신으로.
삶은 곧 실천이다. 한번 믿어... 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