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말로 안 되면 따스한 손길로

part 4. 이제라도 비로소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

예전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남편의 사랑을 느꼈을 때를 담담히 이야기한 걸 본 적이 있다. 같이 타고 가던 비행기가 난기류에 극심하게 흔들리자, 말없이 자신의 손을 붙들어 주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새 배우자와 무척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전남편은 이제 누가 뭐래도 남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이혼이라는 힘든 결정을 내렸겠지만, 자신을 안심시켜 주려 했던 그 손길만은 여전히 따스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짧지만 잊지 못할 강렬한 순간이 있다. 여행지에서 시어머니와 남편, 이렇게 셋이서 케이블카로 야트막한 산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탑승 인원이 4명으로 정해져 있어 나머지 일행인 시아버지, 형님 그리고 시조카는 다음 케이블카로 뒤따르고 있었다.    

 

천천히 미끄러지던 케이블카가 불현듯 멈춰 섰다. 조금 있으면 다시 가겠지 싶던 케이블카는 움직임이 없었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일지라도, ‘상황을 알고 있다. 지금 전문가가 살펴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라는 취지로 짐작되는 방송이라도 나올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었다.  

    

안에 타고 있던 세 사람은 안전벨트 삼아 붙잡고 있던 가운데 기둥을 부여잡은 그 모습 그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게 일단은 최선이라는 본능적이고 암묵적인 동의였다. 케이블카가 제자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며 ‘끼익, 끼익’ 내는 금속성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유난히 크게 울렸다.  

    

고개를 살짝 돌려 저만치 일행이 뒤따라오던 케이블카를 보았다. 운행이 정지된 케이블카는 꽤 무거운 고철 덩어리임에도 산 중턱에서 맥없이 그네처럼 흔들거렸다. ‘우리 케이블카도 저렇게 흔들거리고 있겠구나.’ 싶었다.      


시선을 살짝 내리니 야트막한 모래 산에 듬성듬성, 키 작은 나무들이 보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5층 높이쯤 될까. 가까스로 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져도 전신 골절에 만신창이가 되겠구나.’ 가늠되니 더 아찔했다.     


집안에 숨어들은 도둑을 “거기 누구냐!” 호통 한마디로 물리치셨던 어머니는 위기 속에도 역시 꼿꼿하셨다. 별명이 ‘포커페이스’인 남편도 의연히 대처하고 있었다. 나 역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중학교 때 별명이 ‘놀란 토끼 눈’이었던 나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방황했을 것이 뻔하다. 어쩌면 속눈썹이 초당 386비트로 파르르 떨렸을지도 모른다. 


순간 스테인리스 기둥 가장 윗부분을 잡고 있던 남편의 두 손이 그 밑 부분을 그러쥐고 있던 어머니의 두 손을 지나 가장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던 내 손들을 감쌌다. 놀란 토끼 눈이 더 커졌다.   

   

신혼 초에 “난 너 없이는 살아도 엄마는 못 버려.”라며 합가를 요구하던 그 사람 맞나 싶었다. 사이가 좋은 적이 드물어서 그 당시 유행했던 ‘엄마와 아내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래?’라는 갑론을박에 생존수영이나 익혀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나에게는 정말 의외의 행동이었다. 우산처럼 겉을 싸고 있던 남편의 두 손은 마침내 케이블카가 움직임을 재개할 때까지 한동안 나의 불안감을 진득이 잠재워주었다.   

  

그 후로도 그 다정한 손길은 뒤늦게 아이를 낳고 발이 퉁퉁 부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만 귀하게 쓰였다.      


‘둘 사이는 영원한 평행선’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는 부부관계에서 은근한 온기가 그래도 남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에 대해 나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지 그 후에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다. 대화의 주제는 수년간 오직 아이였고 그동안 낯간지러운 속내를 들여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꼭 물어봐야겠다. 그때 왜 그랬는지, 혹시 기억은 하고 있는지.      


쓰지 못했지만 당신은 읽어주고, 말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들어주는 것. 

당신이 쓰거나 말하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당신의 말을 읽거나 듣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명확하게 들리는 것을 듣는 능력은 실은 능력이 아니다. 

볼 수 있는 것을 보는 것은 ‘확인’이나 ‘점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일에는 사랑의 능력이 필요 없다. 

만약 사랑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서 시작된다면, 

그것은 빛이 너무 많은 공간이 아니라 조금은 부족한 곳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푸른 숲, 안 바다 지음, 99쪽     




“아들아, 너 태어나기 훨씬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누나 이렇게 다 같이 놀러 가서 케이블카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만 고장이 났지 뭐야. 그래서 아빠가 어떻게 했게?”     


항상 일이 바쁜 아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공간은 주말 오후, 차 안에서 어딘가를 향해 달릴 때가 대부분이다. 서로가 밀린 이야기를 앞다퉈하느라 언제나 왁자지껄한데, 잠깐의 기회를 틈타 준비해 뒀던 질문을 훅-하고 던져볼 요량이다.


그러면 뒷자리에 나와 같이 타고 가던 아이는 위기 탈출 만화에서 본 어느 대목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고, 운전석의 아이 아빠는 가물가물한 기억 저편 어딘가를 재빨리 더듬을 것이다. 그리고는 천 번을 흔들린 처절한 시행착오 끝에 나름대로 구축한 ‘관심-주의-위기-심각’의 위기 대응 매뉴얼에 입각해서 머릿속엔 슬슬 노란불이 켜질 것이다.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뇌가 풀가동해야 하니 안전 운전을 위해 안 되겠다, 기습 질문은 주정차 이후에 엿보기로 한다.                              


                     

이전 17화 생각을 버리고 날자, 날아오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