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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야  후회가 적다

part 4. 이제라도 비로소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

회사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교체해 준다. 사무실용 전화기가 사라지면서 개인에게 지급되는 휴대전화에는 사무용 번호와 개인번호 두 개가 생겼다. 법인폰이기 때문에 통신비와 데이터 사용료를 어느 정도 지원받을 수 있다. 물론 지급되는 업무용 이동전화기가 무조건 공짜는 아니다. 기종에 따라서 추가 요금이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 구 모델의 경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지만 고가의 신제품인 경우에는 다음 달 급여에서 제하는 비용이 제법 많다. 따라서 교체 시기가 되면 전 사원들은 어떤 회사의 어떤 제품으로 바꿀지 꽤 심사숙고하는 편이다.      


나는 기계와 친하지 않을뿐더러 아이와 같이 사용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일단 화면 크기가 큰 것 위주로 후보들을 살펴보았다. 구체적인 기능과 장단점은 자타 공인 기계 천재인 공대 출신의 선배에게 브리핑을 받아 12가지의 선택지 중 2개로 추리는 데 성공했다. 함께 유튜브를 시청해야 할 9살 아이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녀석은 모양이 예쁜 걸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엄마인 나에게 액정이 튼튼한 걸 선택하라는 주문을 했다. 자신이 실수로 떨어뜨려도 엔간해서는 망가지지 않아 보고 싶은 내용을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계속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생각보다 실속 있는 꿍꿍이에 살짝 놀랐다.     


구내식당 한구석에 모델이 전시된 곳도 둘러보았다. 인터넷으로 들여다보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었고 같은 일견이어도 화면과 실물은 차이가 있었다. 다른 사우들은 어떤 걸 골랐을까 궁금한 마음에 오고 가며 인사를 나누는 이들에게 물어보며 잠시 이야기꽃을 피우고는 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며칠 동안 뭘 선택할까 ‘즐거운 고민’ 중이었고, 기능과 추가 비용 면에서 대체로 무난한 걸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각 휴대전화의 디스플레이, cpu, 메모리, 카메라, 네트워크, 크기, 무게, 배터리 성능, 가격에 특징을 비교해보고 전문가의 고견, 공동소유자가 될 아이의 의견, 주변인들 여론조사, 실물 영접까지 한 결과 최종 후보를 마침내 선정했다.


고심 끝에 내가 힘겹게 고른, 앞으로 2년 동안 내 수족 같은 비서가 되어줄 휴대전화는 고성능, 최첨단 기술의 사양이 아니었다. 가장 색깔과 모양이 예쁜 것이었다. 여성들의 화장 수정용 콤팩트같이 생긴,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로즈 골드 빛의 플립 형태였다. 아이에게 미안하게도 상대적으로 화면이 크거나 아이 입장에서 다루기 편한 모양도 아니었다.      


‘현경아, 다른 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어. 그런데 요 녀석은 아니야. 2년 후에는 차마 용기가 안 날걸. 40대의 끝자락을 이 녀석과 함께 하자.’     


여러 가지 쓸모를 고려하고 비교하느라 쥐가 날 것 같은 머리에 대고 가슴이 슬쩍 찌른 한마디에 덜컥 결정을 내리고 해당 사양에 동그라미를 쳐버리고 말았다. 제품을 받고 보니 특유의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 필름을 부착할 수 없어서 충격에 취약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8만 번까지 여닫을 수 있다는데 결국에는 가운데 화면에 살짝 금이 간다고 한다.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니 비서를 곁에 두는 게 아니라 상전을 옆에 모시게 생겼다.


그래도 가끔 이런 실속 없는 일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에 두고두고 뿌듯할 때가 있다. 30대 막바지의 나는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스포츠카를 타보겠어?’라며 과감히 2인승 스포츠카를 사버렸다. 구하기 어렵다는 한정판이었다.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2000만 원대 후반 가격에 꿰맞춘 리미티드 에디션이었기에 구입을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였는지 승용차보다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초기에는 차체가 덜덜거리는 느낌이 심해서 페달을 밟는 오른쪽 허벅지가 저릴 지경이었다. 주행 시 소음이 너무 커서 혹시 고장이 난 줄 알고 꽤 자주 수리 센터를 들락거렸다. 귀여운 사이즈 탓에 나란히 달리던 옆 차선의 큰 차가 무례하게 끼어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 나의 작은 은색 애마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주인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쯤 멋진 스포츠카를 타보았다는 추억은 ‘에이, 그때 한번 타볼 걸, 그때 그냥 살걸.’하는 미련과 후회를 남기지 않아 그것으로 만족이다. 달리면서 지붕 한번 제대로 열어보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이번에도 머릿속에 풀어놓은 수많은 선택지와 행복한 고민과 배부른 갈등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었나 보다.      


그래,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야 후회가 적다. 30대 막바지의 나는 스포츠카를 샀고, 40대 끝자락에서는 휴대전화를 고를 때 실리보다는 멋을 택했다. 이때가 아니면 영영 기회를 못 잡을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잘 알기에 오히려 작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50대 후반의 나는 또 어떤 과감한 결정을 내릴까? 언젠가는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나 한 달에 한 번쯤 돌아가면서 하는 휴일 TV 뉴스 앵커를 관두고, 앞서 정년퇴직한 선배들처럼 화면에 나오지 않는 시기가 올 테지. 최선을 다한 후의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치 많은 검은 머리카락을 아주 붉게 물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0년 후 새빨간 머리의 내 모습이 살짝 기대된다.      


____________________


대부분의 사람이 ‘조직의 일원이라면 이렇게 해야 해.’,

‘여기서 이겨내려면 이렇게 해야겠지?’,

‘우리 가족이 행복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라고 판단하며 상식에 맞춰 살아왔을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 역시 의미 있는 선택이었겠으나

앞으로는 ‘진짜 자신’으로, ‘진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자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짊어지고 온 짐을 하나씩 내려놓고 홀가분해지자.

그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대로 살아가자.   

  

인생의 절반은 나답게, 사이토 다카시 지음, 심플 라이프, 213~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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