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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part 4. 이제라도 비로소 가슴에 새기고 싶은 말들

더구나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의 존재는 목숨 그 자체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아예 그런 것을 생각조차 못한다.

엄마가 학벌이 어떠한지, 미모가 돋보이는지,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심지어는 엄마의 성품이 어떻든지,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 면 된다.     


한 줄도 좋다 그 동요, 노경실 지음, 테오리아, 13쪽     




결혼 직후에 생각보다 행복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은 옆 지기와의 삶이 무척이나 버거웠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서 리셋 버튼을 누를 엄두는 내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만 끓이고 세월만 질질 끌며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말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앞을 보기보다는 땅을 보며 걷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남의 결혼식을 가기가 꺼려졌고, 동료의 임신 소식에 마음껏 축하할 수 없었고, 돌잔치에 가는 게 기껍지 않았다. 그런데 힘들어도 존귀하게 버티었더니 하늘도 인정해주신 건지 몸속 사리가 진주로 나왔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어렵게 만난 갓난아기는 엄마가 다가올 때마다 어떻게 미리 알고 엄마 냄새를 맡았는지 앙증맞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말도 못 하고 옹알이마저 불분명한 녀석이 엄마가 좋다는 표시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나의 기분이나 컨디션이 오락가락할 때도 그래서 아이에게 늘 친절하게 대하지 못할 때도 아이는 한결같은 눈빛으로 나에게 변함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여줬다.     


만 7살이 된 지금도 자면서 엄마의 손길을 느끼면 자면서도 코를 벌름거리며 통통한 볼을 떠받친다. 승천한 광대를 그대로 올려둔 채 다시 새근거린다. 표정은 말보다 훨씬 풍부한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진심을 분출한다. 의식보다 한발 먼저.      


그런 아이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내 모습을 내가 못 봐서 그렇지 만약 그 순간에 누군가 손거울을 내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면 내 표정도 아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피곤한 퇴근길을 지나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엄마!’를 외치며 한달음에 뛰어오는 아이를 보며 느낀다. 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니라고.      


물론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생각이 조금 달랐다. 조금만 있어 보라고. 눈빛이 돌변하면서 방문을 걸어 잠그면 그걸로 정답던 시절은 끝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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