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일찍 깨달았다면 훨씬 괜찮았을 말들
매일 열심히는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기름에 튀겨지는 기분이었다.
둥둥 떠다니는 불순물을 걸러 내거나 온도를 체크할 여력도 없이
그저 발 담그기 급급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분.
덕분에 노릇하게 구워지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고 새까맣게 타버리는 날이 잦아졌다.
기름에 절어 눅눅해진 몸을 겨우 침대 위로 건져내고 나면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슬픔을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46~47쪽
이럴 때는 무조건 ‘단짠단짠’이다.
단 짠 단 짠 단 짠 짠 단 짠~
기분이 침잠할 땐 단 걸 찾는다.
몸이 축 늘어질 땐 짠 걸 먹는다.
온몸으로 느낀 건데, 다정도 병이라 조심스레 쏟은 애정이, 섣부른 기대 탓에 상처로 남은 날, 왼뺨, 오른뺨도 모자라 꿀밤까지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날엔 누군가가 축 처진 어깨 토닥토닥해주길 기대하기보다는 알록달록 조각 케이크로 쓰린 속, 내가 살살 달래는 게 나았다.
경험상 알게 된 건데, 퓨즈가 끊어진 듯 앉았다 일어설 때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하얘져 허리가 폴더처럼 자꾸 접혀 벽에 손을 짚어야 할 정도라면, 포도당이 아니라 염화칼슘 부족 때문이었다.
다디단 믹스커피, 냉동실에 쟁여놓은 곶감이 1차 출격하고, 이틀 동안 졸인 김치찌개, 소금 눈 내린 감자 칩이 그 뒤를 따른다. 후식으로 꿀 잔뜩 바른 토스트에 짜디짠 햄을 곁들인다.
단 것 다음에는 짠 것. 짠 것 다음에는 단 것.
단, 짠, 단, 짠
또
단, 짠, 단, 짠...
냉정하게 끊어내지 못하고 쿨하게 정리하지 못해 자책하고 무기력해질 때, 억지로 구겨 넣어두었던 설움이 참다 참다 마우스 코일처럼 끝도 없이 뿜어져 나올 때, 오랜 기간 잠잠하다 갑자기 폭발한 활화산처럼 줄줄이 터져 나와 “줄을 서시오!” 외쳐야 할 때,
힘없이 웃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싶지 않아서. 가식적인 조커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왜 사냐 건 웃는 피에로가 되고 싶지 않아서. 두고두고 가슴 한구석에 남을 어떤 이의 말처럼 마지못해 해치워야 할 숙제가 아니라,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 클로징 코멘트에서처럼 함께 발 구르며 리듬 타는 축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기분이 울적할 때는 단 걸 먹는다. 몸이 땅으로 꺼질 것 같을 땐 짠 걸 찾는다. 단짠단짠의 무한반복으로 지친 나를 어르고 달래서 끄-엉-차 일으킨다.
그래서 안 빠진다. 이놈의 살. 그래도 옆에 있어 든든하다. ‘단짠단짠 표 만병통치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