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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치 않은 추억 한 조각이
소중한 거였다

part 3. 일찍 깨달았다면 훨씬 괜찮았을 말들

가끔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좋았던 기억들은 의외로 대단할 것 없는 것들이다.      

함께 목욕탕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제주도로 놀러 갔던 그런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우리의 기억들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겨두는 걸 보면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삶에서 진짜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친구와 다시 하고픈 일들이 바로 그런 일일 정도로.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정덕현 지음, 가나출판사, 39쪽     




“현경아, 사랑이 뭐야?”


엄마의 앉은키가 내 키만 한 정도였을 작은 나에게 엄마가 물었다.     


“사랑? 이렇게 끌어안고 뽀뽀하는 거.”


질문을 듣자마자 엄마 목덜미를 조막손으로 껴안고는 쪽 하고 엄마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반달눈이 되면서 함박웃음을 터뜨렸던 젊은 날의 엄마가 떠오른다.     


“웅, 웅. 냠냠.”     


누워서 두 팔 들어 무협지를 읽고 있던 아빠 입 안에 먹고 있던 새우 스낵 하나를 쏙 밀어 넣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과자가 맛났던지 아빠는 우물거리다가 작게 꿀떡 삼키고는 다시 입술을 쑤욱 내밀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봉지가 다 비워질 때까지 제 손가락 모양의 무슨 깡을 차례차례 넣어드렸다. 책 속 영웅들의 활약에 신바람 나서였는지 아니면, 엎드려 바짝 붙은 어린 딸이 하나씩 집어 먹여주는 주는 간식에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흐뭇하게 눈웃음 짓던 젊은 날의 아빠가 떠오른다.      


고왔던 엄마는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면 당신도 모르게 체머리를 흔든다. 아니, 머리가 흔들린다. 젊었던 아빠는 이제 제사상, 차례상 한가운데 영정사진으로 남았다.


‘그래 현경아, 고생 많았어. 공부 열심히 하고 항상 건강하게...’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인지 기말고사였는지 성적표가 나온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진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편지글로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편지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끝에 감사하다는 글귀를 덧붙여 반으로 접고 또 접었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가 다음날 깜빡하고 학교에 가져가지 못했는데, 내 방을 정리하던 엄마가 펴보시고는 당신에게 쓴 글인 줄 아셨는지 따뜻한 말과 함께 답장을 살포시 놓아주셨다. 차마 가슴에서 우러나 쓴 게 아니라 숙제였다고, 엄마에게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께 쓴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출장 잘 다녀오너라. 사랑한다. 내 딸.’     


아이를 가지고, 낳기 직전 해였던가. 런던 올림픽 중계 캐스터로 출장을 가기 전, 잘 다녀오겠다고 보낸 ‘카톡’ 대화에 아빠가 난데없이 사랑한다고 답을 해왔다. 처음 들어본 아빠의 고백에 적잖이 당황하고 쑥스러웠던 30대 끝자락의 나는 묵묵부답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아빠가 내 가슴으로 들어와 별이 된 지금은 그때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한 게 두고두고 후회와 한으로 남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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