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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즐거운 건
요리 때문이 아니다

part 3. 일찍 깨달았다면 훨씬 괜찮았을 말들

꽤 가격이 나가는 요릿집들에서 음식을 먹다 보면 

때론 라면이, 때론 국밥이 그리워진다.      

워낙 고단백의 음식이라 느끼하기도 하고 쉽게 물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런 자리가 형식적으로 딱딱해질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냉면이나 한 그릇 먹으면 더 진솔하게 얘기하고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더 편한 자리가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정덕현 지음, 가나출판사, 50쪽



     

연말은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는 기간이자 떠들썩하게 송년회를 치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천년의 쾌락을 하루에 보장한다는 ‘천쾌하보’. 회화를 전공한 막내 아나운서가 직접 그려 걸어놓은 송년회 고지 포스터를 보는 순간 신선했다. 보통 아나운서팀 송년회는 이제 막 아나운서 타이틀을 거머쥔 신입들이 준비하는 연례행사인데, 준비를 꽤 많이 했겠구나 싶었다.      


자그마한 술집을 겸한 식당에서 큰 나무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서로의 팔꿈치가 맞닿을 듯 치른 1부는 ‘올해의 아나운서상’과 ‘기본상’ 수상으로 시작됐다. ‘올해의 아나운서상’은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활약한 팀원에게 주는 상으로 약간의 상금이 수여된다. 기존의 스포츠 캐스터 상 대신 신설된 ‘기본상’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도 팀을 위해 헌신하고 아나운서의 기본인 라디오 뉴스를 가장 많이 도맡은 사람에게 쥐어졌다.    

 

수상자들의 소감 발표 직후 송년 모임 추진 위원회 회원인 막내들이 조명을 탁! 하고 끄더니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영상을 틀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 볼 수 있던 슬라이드를 회식에 응용한 아이디어가 놀라웠다. 영사기가 비춘 화면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은 후배들, 24년 차 연수를 떠난 선배들, 휴가 떠났다가 보내온 사진들, 새로 태어난 아가들. 기저귀 값 벌려고 왔다며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어머니의 장난스러운 모습까지... 지난 1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보는 내내 작은 웃음과 함께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2부에서는 팀을 나눠 헤드폰을 낀 채 예전 <가족오락관> 같은 게임도 하고, 익숙한 교양, 시사, 드라마 주제가가 나오면 앞다퉈 손들기도 하고, 4명이 한꺼번에 사자성어를 외치면 알아맞히기도 하면서 오후 5시에 일찌감치 시작한 ‘천쾌하보’의 밤이 저녁 9시에 끝이 났다.     


저녁 방송하는 이들, 야근자들이 많아 항상 회사 근처 호프집이나 치킨집에서 들락날락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아나운서팀 회식, 팬데믹 직전의 송년회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듯 심하게 쾌락적이었다. 천년의 쾌락을 하루에, 아니 4시간 만에 몰아쳤던 시간. 이러느니 올해부터는 아예 점심때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이마저도 기약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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