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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소리

어린이의 낭독 소리

by 낭랑한 마들렌 Feb 25. 2025

강사로서는 겨울은 비수기입니다. 통상 공공도서관의 의뢰를 받아 강의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습니다. 연말에는 예산도 바닥나고 연초까지는 새해에 시행할 사업들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다 한 어린이도서관에서 방학 특강을 의뢰하여, 오랫동안 기획하고 준비한 내용을 드디어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회차별 수업 준비가 완료되었고 강의 자료도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모임을 마친 뒤에도 다시 침대에 누워 ‘15분만…’, ‘10분만 더…’ 하며 관성을 깨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복 받은 일입니다. 당연히, 강의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원래 안 하던 일을 다시 하려면 멈춰있던 기계를 돌릴 때처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게 뭉그적거렸어도 강의할 도서관에는 언제나처럼 1시간 전에 도착했습니다. 프로젝터에 자료를 연결하고 리모컨 테스트도 해보고 교재를 꺼내놓은 뒤, 도서관 시설에 감탄하며 사진도 찍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해 웃는 얼굴로 맞이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기도 했습니다. 아직 몸이 덜 풀린 것이지요. 수업 소개와 이론 강의 후 잠시 휴식 시간을 주고 2부에서 드디어 교재를 낭독했습니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 이거지!



잠시 잊었던 것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가 늘 사랑해 왔던 것은 바로 이 소리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낭독하는 소리 말입니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입술을 열어 소리 내어 말할 때 그 사람의 개성과 성격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낭독은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흰 도화지 같은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어떨까요? 투명함 그 자체가 아닐까요?     


아직은 어린이여서 소리만 듣고서는 성별을 알 수 없는, 약간 수줍거나 조금은 칭찬 듣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그 목소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합니다. 그 어떤 꾸밈이나 가림이 없습니다. 존재 자체로 훌륭히 빛나는 아이들의 낭독을 듣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입니다. 낭독이 서툴러도, 아직 문해력이 좀 부족한 듯해도 그들의 낭독은 나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어른들에게는 항상 설명이 필요하니까요.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아니 아니 아니! 나는 보아뱀 속에 있는 코끼리를 원하지 않아요….




이런 문장들을 담는 자그마한 입술, 투명한 소리.    


아이들의 낭독을 듣는 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져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괜찮습니다. 두 밤만 지나면 다시 들을 수 있거든요. 그때까지, 아이들에게 약속한 대로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 임파서블한 미션을 수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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