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밍키
박완서 선생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추천을 받아 얼마 전 다시 펼쳐 들었다. 한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교과서에 실린 상태로 읽었던 때와는 달랐다. 싱아의 풋풋한 맛, 거기 실려 있는 유년의 감정들. 그 생생한 기억들이 어쩌면 그렇게 단어마다 선명할 수 있을까. 부러움이 앞섰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을 되짚는다면, 나는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그 많던 초코볼은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니면 ‘그 많던 떡볶이는 누가 다 먹었을까’ 정도려나.
싱아에 비하면 인스턴트 같은 느낌이지만, 어쩌면 그게 내 유년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제 많이 흐릿해졌다. 그땐 나름대로 가지각색의 친구들과 한 반에서 울고 웃었고,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부풀던 시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가끔 생각나 웃음 지어지는 희미한 조각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렷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바로 ‘햄스터 밍키’다.
밍키는 내가 기른 애완동물 중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있었던 친구였다.
그 이름은, 애니메이션 <요술공주 밍키>에서 따온 건 아닌 것 같다. 밍키는 수컷이었고, 그저 포동포동한 몸집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해서 붙인 듯하다.
사실 그전에도 동물을 키운 적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땐 마당이 있는 할머니 댁에서 백구와 함께 지냈다고 들었다. 내가 올라탈 수 있을 만큼 크고 듬직한 개였는데, 어느 날 팔려가고 말았다.
초등학교 땐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사다 키우기도 했다. 며칠을 못 넘기고 비실비실 하다 죽어버렸고, 그게 꽤 충격이었다. 이후로는 꼬마 거북이, 열대어 같은 동물들로 위안을 삼았지만, 거북이와 열대어를 한 수조에 넣었다가 열대어가 하나둘 사라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그런 시행착오 끝에, 밍키를 만난 건 조금은 특별한 사건이었다.
어느 날 동네의 작은 수족관을 구경하고 나와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길. 공중전화 부스 앞에서 전화할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같은 반 장난꾸러기 친구 하나가 내 앞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두고 달아났다.
안에는 햄스터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너 키워!” 하고는 사라진 그 친구. 아마 집에서 키우지 말라고 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우리 집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케이지도, 사료도 없던 터라 밍키는 작은 상자 안에서 이리저리 갉으며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겨우 어머니를 졸라 케이지와 사료를 사왔다. 해바라기씨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다른 건 입에도 대지 않는 편식쟁이였다.
하루하루 몸집이 불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쳇바퀴를 마련해주었고, 밤이면 달그락달그락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듣는 것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내가 어떤 생명에게 무언가를 선물했고, 그것이 잘 쓰이고 있다는 감각.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다른 햄스터를 들여온 적도 있었지만, 밍키는 질투가 많았다. 함께 두면 싸우고 물어뜯기 일쑤였다. 결국 다른 햄스터는 친구에게 보내고, 밍키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어쩌면 외동이었던 내가 밍키에게 나 자신을 투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밍키는 나를 잘 따랐다. 내가 과자나 과일을 먹기만 하면, 케이지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두 손으로 간식을 꼭 쥐고 사각사각 먹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어린 나는 그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밍키는 점점 살이 쪘고, 결국 비만이 되어 어느 겨울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겨울방학 캠프에서 돌아온 날, 케이지는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는 놀이터 어딘가에 잘 묻어주었다고 했지만,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는 며칠 동안 놀이터를 헤매며 밍키를 찾았다.
그 후로는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밍키가 떠난 뒤 마음 한구석에 텅 빈 자리가 생겼다. 한 생명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이, 그리고 그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너무 아팠던 것이다.
지금은 그 귀여운 햄스터의 모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때때로 생각난다.
그 많던 해바라기씨를 누구보다 맛있게 먹던 밍키.
달달한 걸 좋아하던 우리 밍키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부디, 그곳에서는 마음껏 달리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으며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