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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보석이 있을 거야

문을 열고 나오는 용기

by 조우주

지인은 무척이나 활발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과에서 일등을 해서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조금 들뜨면 말이 많아졌고, 특히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과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땐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몇 번의 시험 실패를 한 뒤, 취업을 위해 노력하던

그 아이는 모든 이와 연락을 끊고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



몇 달 뒤, 소식을 들었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 폐쇄병동에 다녀왔다고 했다.
약을 먹으며 지낸다지만, 그 약은 마음을 눌러 안정시키는 동시에
그녀의 표정과 몸까지 무겁게 가라앉히고 수전증이 생기게 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그냥… 하루가 너무 길어.
아무것도 안 해.


그녀의 방 안에는 닫힌 커튼, 세탁되지 못한 옷더미, 식어버린 밥그릇,
그리고 여전히 멈춘 시계 같은 시간이 있었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그 공간에서
그녀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회복 기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그녀가 ‘은둔’이라는 단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 웃음이 그리웠다.


일본에는 이런 고립의 끝에서 ‘히키코모리’가 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지원하는 체계가 있다고 들었다.


1990년대에 등장한 단어는 이제 40·50대까지 번져 있다. 2018년 조사에서 그 수는 61만 명.
문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취미는 이어가지만 사람과의 연결은 끊어버린 이들이었다. 일본 정부는 셰어하우스, 멘토링, 방문 상담, 자존감 수업 등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 자립했다고 말하는 이는 고작 2%뿐이다.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엔 단순히 청년의 문제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4050대까지 60만 명이 넘는 인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밖으로 나가지 않지만 취미활동은 하는 ‘조용한 은둔자’들도 많다. 문제는 완전히 자립했다고 답한 사람이 단 2%뿐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사회적 인식이 아직 따라오지 않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신 실태조사에 따르면, 19세부터 34세 사이 청년 중 사회적 관계가 현저히 줄어들고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이 무려 54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중 완전히 방이나 집에 스스로를 가둔 은둔형 청년만 24만 명이다.



친구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밖에 나가면… 나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아.
SNS 보면,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잖아.
즐겁게 웃고, 사랑하고, 바쁘게 일하고… 나는 실패한 것 같아.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사용을 줄이면 외로움과 우울이 완화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결코 충분한 해결책은 아니다. 방 안에 머무는 건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과 비교가 일상인 사회,
실패를 낙인찍는 문화,
공백기간 등 쉬어가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공기 속에서 아마도 숨이 막혔을 것이다.



나로 사는 것이 버겁고 힘겨운 상태.
일본에서는 이런 마음을 ‘이키즈라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감정은 서서히 스며들어 우울과 무기력, 자존감 결여가 된다.

마음이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을 구하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바쇼’—있는 그대로 머물 수 있는 자리,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에서라면 그녀는 서서히 힘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도라에몽 이야기를 떠올린다. 만화가 후지코 F. 후지오는 어린 시절, 왕따였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노진구 옆에 도라에몽을 그려 넣었다고 했다.


어딘가에 너의 보석이 있을 거야.




그 말은, 그 시절의 후지오 자신에게 건넨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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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녀도, 자신의 보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씩 힘을 모아서

조금씩 사회가 변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노크하지 않아도,

누가 열어주지 않아도

언제든 스스로 열 수 있는


일어설 수 있도록

응원해 주고

환영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문이라는 걸 알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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