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창가에서
새벽 네시,
늦여름와 입추의 한자락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 눈을 떴다.
창가에서 들려오는 빗방울의 리듬은
경쾌하고도 소박했다.
세상은 모두가 잠들었는데,
빗소리만은 나와 함께 깨어 있었다.
새벽의 고요함이 좋다.
특히 비 오는 날의 새벽은
찬란하게 빛나는 낮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낮에는 미처 맞닥뜨리지 못했던 고민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이
빗방울을 따라 조용히 흘러내린다.
괜찮아, 이렇게 멈춰 있어도.
빗소리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창문 너머 거리를 바라보다 문득,
배우로서의 삶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그늘에 서 있는 순간은 외롭다.
하지만 그 속에서 쌓아놓은 감정은,
언젠가 눈빛과 목소리의 단단한 결로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비는 늘 기다림의 시간도 의미가 있다고 알려준다.
오늘 새벽의 빗소리처럼,
마음에 닿는 울림이 되길 바라며.
새벽 네시의 빗방울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