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굴? 통영의 찐 맛_ 2. 통영식, 아니 최가네 집밥
시댁의 식문화 중에서 여전히 낯선 것이 있는데, 바로 나물을 먹는 방식이다. 시댁에선 나물을 밥과 함께 비벼 먹는 게 아니라 밥을 넣어 말아먹는다. 나물을 말아서 먹는다는 게 선뜻 떠오르지 않겠지만, 시댁이 국물을 즐기는 집안이라는 걸 감안하면, 말아서 먹는다는 게 어느 정도 그려질 것이다. 보통 나물이라 하면, 그러니까 제사나 명절 때 차리는 나물은 콩나물, 시금치, 무, 고사리 등 서너 가지가 가지런히 담긴 모습이다. 여기에 소고기나 두부로 등으로 만든 탕국이 더해진다. 친정에선 주로 콩나물과 무, 시금치, 고사리로 나물을 차렸고, 여기에 소고기를 넣어 맑은 탕국을 곁들였다. 개인적으로 나물 그 자체의 맛을 좋아하는 터라 밥에 각종 나물을 넣고 탕국 국물을 한 숟갈 넣어 비벼 먹었다. 밥을 먹는 것인지 나물을 먹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나물의 향과 맛을 즐겼다.
그런데 시댁에서 맞이한 첫 제사 때, 나물 요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께서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물을 준비하시는데, 그 종류가 무려 10가지가 넘었기 때문이다. 콩나물, 무나물(여름에는 무나물 대신 박나물), 고사리나물, 호박나물, 시금치나물, 가지나물, 미역나물, 도라지나물, 여기에 두부탕국과 조개탕국까지. 나물 종류도 종류였지만 양도 어마어마했다. 콩나물 한 다라이(?), 무나물 한 다라이(?). 반찬통이 아닌 다라이(대야)에 가득 채울 만큼 나물을 마련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 이거 누가 다 먹어요?”
“이따 봐 봐라. 이 집 사람들 나물 억수로 좋아한데이.”
시어머니 말씀이 맞았다. 시댁 식구들은 10가지나 되는 나물과 탕국을 한 그릇에 자작하게 담은 뒤, 밥을 말아먹었다. 어떤 분들은 나물만 두세 그릇 먹기도 하셨다.
“대구는 이렇게 안 먹제? 통영 사람들은 나물을 국처럼 말아먹는다.
나물을 말아먹으면 이 집 사람 다 된 기라.”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나물과 밥을 비벼 먹고 있다. 대신 생선찜은 5년 전에 비하면 꽤 익숙해졌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 보니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생선찜이 올라간 건 보지 못했다. 생선은 조기와 동태전 정도였고, 주로 소고기 같은 육류가 차려졌다. 그런데 바닷가를 끼고 있는 시댁에선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릴 때에 생선찜을 올리는 걸 가장 중요시했다. 주로 말린 옥돔과 참돔을 쪄서 올렸는데,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전복까지 차려지면 바다 비린내가 풀풀 풍기는 제사상이 완성(?)된다.
친정과 시댁의 제사상과 차례상을 보면서 그 지역의 먹거리와 식문화에 따라 그 차림새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같은 경상도 지역인데도 내륙 지역인 대구의 상차림과 해안 지역인 통영의 상차림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경험하였다. 그러면서 옛 조상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혼 전에는 제사상과 차례상 문화가 무조건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허례허식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면 함께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값비싼 고기나 생선을 산다거나 어느 누군가의 희생으로 음식이 마련된다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면 제사나 차례 문화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듯하다.
앞으로 우리는 제사나 차례 문화를 어떻게 이어나갈까? 한 번은 남편이랑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각자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기일이 되면, 부모님께서 좋아하신 음식들을 먹으면서 아이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면서 우리네 부모님이 좋아하신 음식들을 생각해 보았다. 시아버지는 돈가스, 시어머니는 빵, 친정 아빠는 자장면, 친정 엄마는 새우튀김. 생각해 보니 음식들이 아주 소박했다. 약간 마음이 먹먹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