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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원 Oct 24. 2021

김장김치, 100포기는 기본이지

통영=굴? 통영의 찐 맛_ 2. 통영식, 아니 최가네 집밥

“12월 10일에 김장김치 담근다. 김치통 들고 오너라.”


시어머니께서 김장김치를 담그는 날짜를 알려 주시며 김치통을 들고 오라고 하셨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시댁의 김장철. 김치통을 챙기는 것부터 긴장되었다. 한 통 들고 갈까? 두 통? 너무 많은가? 많이 들고 가면 욕심쟁이라고 흉보실까? 수육 고기는 내가 사가야 하나? 얼마나 사가야 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사소한 모든 것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결혼 전까지 나는 친정 엄마의 김장철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친정 엄마랑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김장김치는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가 담가서 택배로 보내 준 김치를 맛있게 먹으면 될 뿐, 김장철이라 해서 내가 특별히 하거나 신경 쓸 게 없었다. 친정 엄마 역시 김장철이라고 딱히 내게 뭐라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난 김장 담그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가 보내온 김치가 떡 하니 있었으니까. 그래서 시댁에서 김장김치를 담근다고 오라는 말에 덜컥 긴장부터 했다. 친정 엄마한테 전화해서 시댁에서 김장김치를 담근다고 오라 하신다는 둥 내가 해야 할 일은 뭐냐는 둥 고기는 얼마만큼 사가야 한다는 둥 이것저것 물었다. 친정 엄마는 그저 옆에서 잘 도와드리면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뭘 어떻게 ‘잘’ 해야 하는데? 김장김치를 담그는 날,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들만 가득 안고 시댁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남편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김치통 달랑 하나 가져가게?”
“하나면 되지 않아? 우리 둘이 먹을 건데.”
“집에 있는 거 다 가져가자. 하나가 뭐고.”


그러더니 김치통 네 개를 챙겨 집 밖을 나섰다. 시댁으로 향하는 길 내도록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김장김치라고는 태어나서 담가본 경험이 없기에 행여 실수는 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며느리로서 그게 쉬운가.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시댁. 이미 김장김치를 치댈(?)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부모님께서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물기를 빼놓으셨기에 우리는 절인 배추에 양념을 치대는 일만 하면 된다. 시어머니께서도 다른 건 할 필요 없고 치대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셨다. 


“어머니, 저 김장김치 처음 담가 봐요. 알려 주세요.”
“별거 없다. 그냥 이파리 하나하나에 양념을 문때.
 양념을 너무 많이 넣으면 텁텁해서 맛 없데이. 그렇다고 너무 적게 넣으면 안 돼.
 그냥 니 알아서 적당히 넣어라.”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김장날.

'적당히'. 시어머니께서 내게 건네는 가장 어려운 말이다. 서툰 솜씨로 양념을 치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잘한다면서, 젊어서 그런지 손이 빠르다고 칭찬하셨다. 하지만 난 시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이 그냥 건네는 칭찬(?)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손은 양념을 치대시면서 눈은 줄곧 내가 치대는 배추에 향해 있으셨다. 약 3시간가량 김장김치 담그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서너 명이 양념을 치댈 동안 남편과 시아버지는 절인 배추의 꼭지를 따서 날랐고, 아주버님은 양념을 바른 배추들을 김치통에 하나씩 넣으셨다. 어른의 무릎 높이만큼 쌓여 있던 절인 배추들이 서서히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어서야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김장김치 100포기 클리어(clear). 김치통만 20통이다. 왜 남편이 김치통 4개를 챙겼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김장김치 담그는 날의 하이라이트는 갓 담근 김치와 함께 먹는 수육 한 상. 시아버지표 수육과 시어머니표 김장김치는 그야말로 환상의 맛이었다. 야들야들하게 썰린 수육 한 점을 젓갈향 가득 나는 김치에 돌돌 싸서 먹는 그 맛은 1년에 딱 한 번, 김장철에만 맛볼 수 있다.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그날만큼은 누구보다 김치를 맛있게 즐긴다. 


첫 김장김치를 담그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정 엄마에게 자랑했다. 김치를 100포기 담갔다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친정 엄마는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본인이 담근 김장김치를 한 통 꽉꽉 담아 주었다. 그제야 친정 엄마가 담가준 김장김치가 별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마음이 짠하면서도 뭉클해졌다. 김장김치 담그는 문화가 많이 없어진 요즘이지만, 다행히 양가 부모님 모두 김장김치를 담그셔서 우리 부부는 김치 걱정 없이 김치 반찬과 김치 요리를 즐기고 있다. 아, 네 살이 된 우리 아들도 백김치를 아주 잘 먹으며, 김장김치를 물에 씻어서 참기름을 조금 더해 주면 기가 막히게 잘 먹는다. 남편 말로는 장모님이 해 주신 김장김치는 라면이랑 먹으면 맛있는 김치이고, 자기 부모님이 하신 김장김치는 김치찌개나 김치찜으로 해 먹으면 맛있는 김치라고 한다.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닌 게 젓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친정엄마표 김치는 깔끔한 맛이 특징이고, 상대적으로 젓갈이 많이 들어간 시어머니표 김치는 깊은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묵은지로 익혔을 때 찌개나 찜을 해 먹으면 젓갈의 감칠맛이 확 올라온다. 


한 달 뒤면 김장철이 시작된다. 사시사철 빠질 수 없는 반찬이자 요리 재료인 김치를 치대러 가야 한다. 김장김치를 맘껏 맛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다. 하지만 100포기는 솔직히 말해서 너무 힘들다. 매년 시어머니께서는 줄여야지 하면서도 포기 수를 줄이지 않으신다. 작년엔 심지어 120포기나 준비하셨으니 말이다. 올해는 과연 몇 포기를 담을까? 100포기는 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잘 자라고 있는 시댁 텃밭의 배추들. 곧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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