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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원 Oct 24. 2021

갈치를 국으로 먹는다고?

통영=굴? 통영의 찐 맛_ 1. 계절을 담은 한 그릇

시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을 먹다 보면 ‘이게 경상도 음식인가?’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전라도 음식 같기도 하고, 제주도 음식 같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시어머니께서는 가끔 갯장어(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닷장어)를 요리할 때 몸통 부위는 자식들 먹인답시고 장어구이를 해 주시고, 남은 머리와 뼈는 된장을 베이스로 하여 장어탕을 푹 끓여 본인들이 드시곤 한다. 전라도 여수와 목포에서 붕장어를 끓여 장어탕을 즐긴다는 걸 보면, 시어머니께서 끓인 장어탕에 전라도의 음식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듯했다. 아이가 백일이 지날 무렵, 시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3일째 여행하던 날에 점심 메뉴로 각재기 조림을 먹었다. 각재기는 전갱이 과에 속하는 생선으로, 제주도에서는 전갱이를 각재기라고 불렀다. 그날 각재기 조림을 먹으면서 시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 엄마가 한 전갱이 조림이 훨씬 맛있다.”


전갱이, 각재기를 처음 들어본 나로서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고, 그 맛이 고등어조림과 비슷했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먹어댔다. 이후 시댁에 가면 시아버지께서 고등어처럼 보이는 작은 생선을 종종 구워 주셨는데, 그게 바로 전갱이였다. 전갱이는 고등어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살은 훨씬 부드럽다. 그리고 고등어에서 나는 특유의 비린내도 덜하다. 전갱이 구이가 나오는 날이면, 전갱이 국도 함께 나왔다. 전갱이 한두 마리가 국물 안에 떡 하니 들어 있는 비주얼은 6년 동안 봐 왔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전갱이 구이만 즐길 뿐, 전갱이 국은 먹지 않는다. 이렇듯 시댁에서 전갱이 국이나 전갱이 조림을 해 먹는 걸 보면, 제주도의 음식 문화도 어느 정도 혼재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시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 중에서 갈치호박국은 제주도에서 맛보았던 갈칫국이랑 비슷했다. 갈치호박국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그러니까 텃밭에서 기른 둥근 호박이 달달한 맛을 낼 때 시어머니께서 끓여주시는 별미 중에 별미다. 처음에는 갈치호박국의 맛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갈치 비늘이 국물에 둥둥 떠다니는 게 약간 거북스러웠고, 맛도 밍밍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물을 한 술 떠먹는 순간, 예상과 훨씬 벗어난 맛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호박의 달짝지근한 맛과 고추의 칼칼함이 베인 국물이 입안을 가득 채우면서 갈치 살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시어머니표 갈치호박국의 핵심은 바로 직접 키운 둥근 호박이다. 시어머니께서도 갈치호박국을 만드실 때면 절대 애호박 같은 건 안 되고, 둥근 호박이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신다. 


한 날은 시어머니께 “갈치호박국도 그렇고,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은 전라도 음식 같기도 하고 제주도 음식 같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람들이 전라도 음식맹키로 맛있다 카더라. 몰라.
 그냥 어렸을 때부터 먹어 와서 전라도 음식인지, 통영 음식인지 모른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 통영의 음식문화와 역사, 지리 문화 등에 대해 알아봤더니, 시어머니의 음식에서 다른 지역의 음식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통영이 예부터 경상도에 위치한 지역이라 생각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1603년, 아주 작고 가난한 포구였던 경상도 고성현 두룡포에 군사도시 공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곳이 삼도수군 통제영, 곧 우리가 알고 있는 통영인 것이다. 경상도 땅에 지어졌지만 경상도 관찰사와 동급인 삼도수군통제사가 통영을 다스렸고, 통제영이 폐지된 1895년까지도 경상도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관리되었다고 한다. 경상, 전라, 충정 3도에서 온 군사들과 군수품 제작을 위해 전국 8도 각지에서 뽑혀 온 장인들,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통영으로 모이면서 통영에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유입된 것이다.


더불어 통영은 길이 불편한 내륙보다는 수로를 통해 경상, 전라, 충청 등 타 지역들과 문물교류를 하였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는 일본과 가까웠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일본 문화와 서양 문화가 어느 곳보다 먼저 유입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통영은 바다로 뒤덮인 지역답게 해산물이 풍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최대의 군사도시 통영의 물적 기반과 남해 바다의 풍부한 해산물, 해로 교통의 발달로 인한 활발한 문화 교류 등으로 인해 통영은 여러 지역의 음식 문화를 융합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에서 다양한 지역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배경 때문이었던 것이다. 


시댁이 통영인 덕분에 올해도 갈치호박국을 한 그릇 먹었다. 국물을 즐기지 않는 터라 국물을 많이 먹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갈치호박국의 핵심은 달큼한 호박이라 생각하기에 호박부터 건져 먹는다. 몇 번 먹어봤다고 갈치 먹는 스킬도 늘어나고 있다. 젓가락으로 갈치 양 옆의 뼈를 먼저 제거하고, 중간의 굵은 벼를 집어 올리면 살만 쏙 발라 먹을 수 있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은 칭찬 같은(?) 말을 건네곤 한다. 


“야무지게 살만 쏙 발라 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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