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원 Oct 24. 2021

도다리쑥국으로 봄을 먹다

통영=굴? 통영의 찐 맛 _ 1. 계절을 담은 한 그릇

“여기까지 오셨는데, 내일 저희 집에 한 번 오이소.”


상견례가 끝나고 시아버지께서 친정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친정 부모님께서 괜찮다고 하셨지만, 시아버지께서는 점심 한 끼 먹고 가라고 하셨다. 챙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했지만 한편으론 상당히 불편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어색한 식사 자리를 가졌는데, 또다시 불편하게 식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시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한두 명도 아니고 친정 엄마, 친정 아빠, 여동생, 남동생 모두 초대하기란 부담스러웠을 테다. 일단 친정 부모님은 거절의 의사를 전하고는 하루 묵을 숙소로 향했다. 상견례 때문에 통영을 들르긴 했지만, 친정 식구들 모두 통영이 처음이었기에 1박 2일 여행을 계획하였다. 남동생의 군대 제대를 축하할 겸 나의 결혼도 축하할 겸 오랜만에 다섯 식구가 모여 하루 동안 통영을 즐겼다. 통영을 떠나기 전 남편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시아버지께서 전화가 오셨다.


“얼른 모시고 오래이. 음식 다 차려 놨다.”


음식까지 차려 놨다는데 어찌할 수 있나. 부랴부랴 근처 마트에서 과일 한 상자를 사서 시댁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던지 지금도 아찔하다. 예비 시댁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다 혹(?)을 네 개나 달고 가니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어색한 인사가 또 시작되었다. 시아버지께서는 호탕하게 친정 식구들을 맞아주시고는 점심이 차려진 상으로 안내하셨다.


“통영에 왔으면 도다리쑥국 한 그릇 해야지요. 한번 잡숴 보이소.”


내륙 지역에서만 살던 친정 식구들에게 도다리쑥국은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다. 여태껏 맛보았던 쑥 요리라 함은 쑥떡과 쑥 튀김 정도가 전부였다. 친정 엄마는 매년 봄이 올 때쯤이면 쑥을 뜯어 쑥떡을 하고 쑥 튀김을 해 주었다. 어렸을 때는 그 맛이 쌉싸래해서 싫었는데 어른이 되니 쑥향과 쑥 맛이 어찌나 좋은지, 쑥떡을 할 때면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나의 집으로 꼭 택배를 부쳐주셨다.


쑥떡과 쑥 튀김 정도에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도다리쑥국은 신세계였다. 국물 한 술을 뜨니 쑥향이 입 안 가득 퍼졌고, 도다리 살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씹지 않아도 저절로 목구멍을 넘어갔다. 평소 국물 요리를 즐기던 친정 아빠는 말할 것도 없었고, 여동생과 남동생도 국물 맛에 금세 취했다. 국물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친정 엄마가 다소 걱정되었지만, 의외로 잘 먹었다. 친정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가자미인데, 알고 보니 도다리가 가자미과 생선이어서 그나마 드셨던 것 같다.


나를 비롯한 친정 식구들은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시어머니께서 끓여 주신 도다리쑥국을 한 그릇 싹 비웠다. 그런 모습을 본 시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하셨다. 시아버지는 평소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하셨다. 그래서 통영에서 하루 놀고 간다는 친정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봄의 제철 음식인 도다리쑥국을 먹이고 싶으셨던 것 같다. 또 시아버지 말씀으로는 친정 식구들이 남 같지 않아서 더욱 챙겨 주고 싶다고 하셨다. 사실 나와 남편은 동성동본이었고, 이 때문에 약간의 결혼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엔 결혼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시아버지께서 친정 아빠를 동생처럼 대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시아버지의 남동생들 중에 친정 아빠와 비슷한 나이와 직업, 외모를 가진 분이 계셨고, 닮아서 그런지 몰라도 더욱더 챙겨주시려는 듯했다.


전날 식사 자리를   가져서인지, 생각했던 것보다 어색하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만나니 한결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있었다. 지금도 친정 식구들은 그때 먹은 도다리쑥국이  맛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술을 좋아하시는 친정 아빠와 여동생, 남동생은  번씩 생각난다고 한다.  시댁이 통영인 덕분에, 요리를 잘하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매년 봄이 시작될 때쯤이면 도다리쑥국을  먹는다. 도다리쑥국을 먹으면   해를 힘차게 시작할  있을  같다는 기운이 마구 솟아난다. 도다리쑥국은 나에게  해를 시작하게 하는 봄철 음식이면서, 시부모님께서 친정 식구들을 위해 처음으로 끓여 주신 따뜻한  그릇이다.   


봄내음을 가득 담은 도다리쑥국
이전 01화 예비 며느리, 상견례로 통영을 들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