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고, 먼 길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들어가이십더.”
두 어른들의 어색한 인사가 끝난 뒤, 약속한 일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약자 이름을 대니, 종업원이 좌식으로 된 방으로 안내하였다. 방에는 두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총 여덟 개의 수저가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어디에 앉아야 할지 우왕좌왕되었다. 어른 네 분이서 먼저 테이블에 앉자, 눈치껏 나머지 테이블에 앉았다.
전날부터 긴장되었던, 그리고 여전히 긴장될 수밖에 없는 상견례 자리. 어떻게 인사를 건네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밥은 어떤 속도로 먹어야 할지 모든 게 정신없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친구(현 남편)의 얼굴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 보니, 꽤나 긴장한 것 같았다.
“처음이라 긴장되지예. 별거 없음니더. 편하게 드이소.”
상견례 경험이 두 번이나 있으셨던 예비 시부모님의 리드에 따라 점심 식사를 시작하였다. 남자친구는 2남 1녀 중 막내아들이었고, 나는 1남 2녀 중 장녀였다. 남자친구의 형과 누나는 오래전 결혼을 하였고, 나는 형제들 중에 첫 번째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독 우리 부모님이 긴장을 많이 하셨다. 이런 모습을 눈치채셨는지 예비 시부모님께서 나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동성동본이라 좀 걱정이 되네요. 처음엔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사실 남자친구와 나는 ‘경주 최 씨 광정공파’로 성(姓)과 본(本), 심지어 파(派)까지 같았다.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이 흠(?)이 될 것은 없었지만, 파까지 같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꽤나 걱정을 하며 반대하셨다. 시집을 보내는 입장에서 괜한 흠을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하도 반대해서 동성동본 폐지와 관련된 법 조항까지 들이밀기도 했었다.
“어쩌겠습니꺼. 본인들이 좋다고 하는데.”
예비 시부모님은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데도 생각보다 성과 본, 파가 같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으셨다. 오히려 가족 같이 느껴져서 좋다는 말씀까지 하시며 우리 부모님과 나를 안심시키셨다. 진심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상견례 내내 우리 아빠를 보시고는 ‘동생 같다’고 하셨고 상견례에 따라온 여동생과 남동생을 향해서는 ‘조카들 보는 것 같다’며 유독 정이 간다고 이야기하셨다. 약 2시간 정도 상견례와 점심 식사가 이어졌다. 나는 긴장한 채 어른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남자친구도 어른들의 식사와 우리 동생들의 식사를 신경 쓰느라 줄곧 정신이 없었다.
“통영 처음 오시지요? 오신 김에 케이블카도 한 번 타고 달아공원도 가보이소.”
“안 그래도 온 김에 1박 하고 가려했습니다.”
통영에서 1박 2일 머문다는 말에 예비 시부모님께서 통영의 관광코스들을 알려 주셨다. 통영에 왔으면 미륵산 케이블카 한 번 타 봐야 한다 하셨고, 한창 도다리가 맛있는 철이라 도다리쑥국 정도는 먹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럴 게 아니라 내일 우리 집에 와서 도다리쑥국 한 그릇 먹고 가이소.”
대뜸 예비 시아버지께서 초대를 하셨다. 우리 식구들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막무가내로 내일 도다리쑥국을 준비해 놓고 있겠다면서 훌쩍 남자친구의 차를 타고 떠나셨다. 남자친구와 예비 시부모님과 헤어지고 나서 미리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점심을 먹은 둥 마는 둥 해서 배가 고프면서도,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속이 더부룩했다. 그 옆에서 여동생과 남동생은 점심이 맛있었다며 감탄의 말을 하였다. 내 속도 모르는 이놈들을 왜 데리고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순간, 창밖으로 에메랄드 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산양일주도로 길목에 숙소가 위치하고 있어서 우연찮게 해안도로를 달리게 된 것이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보니, 숲 냄새와 바다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시원하고 청량했다.
우리 식구들은 1박 2일 동안 미륵산 케이블카도 타고, 달아공원과 이순신공원에도 들렀다. 처음 통영을 찾았던 터라 모든 게 낯설고 새로웠다. 그리고 그해 가을,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시부모님과 가족이 되었다. 결혼하고 2년 뒤 아이를 낳고, 60대이던 시부모님 모두 70대에 접어드셨다. 5년 동안 수없이 통영을 들렀고, 주로 시댁에 머물긴 했지만 틈이 나면 통영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통영의 여러 모습들을 마주하였고, 자연스레 통영이 품은 이야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통영 모습과 시댁 문화에 ‘왜?’라는 물음을 가졌는데, 지금은 그 물음에 대한 답들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며느리의 시선에서 통영과 시댁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여행가도, 토박이 주민도, 지역 연구자도 아니라서 통영의 모습들을 전문적으로 서술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냥 며느리로서 시댁을 드나들며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