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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25. 2024

꽃병 장례식

-시든 꽃에는 감사가 어울린다. 노인도

내 눈앞 화병에 장미꽃이 시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꽃병 장례식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곱디곱던 꽃들이 시들어가고 있다.

이 과정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예쁜 꽃을 화병에 꽂곤 한다.

어제는 시들어가는 꽃잎 몇 장씩을 떼어 꽃들의 시듬을 감춰주는 짓을 했다.


하지만 내 노력은 시간 앞에서 무색하기 마련이다.

오늘 내 앞의 꽃은 손댈 수 없이 시들어 있다.

중력에 따라 시든 꽃잎이 그대로 축 늘어져 있다.

우리 피부가 주름져 늘어지듯이.


나는 한참 그 꽃을 봤다.

어느 시구처럼 오래 보면 어딘가 예쁜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오래 보면서 되뇌인 것은

'색이 예쁜 것이 정말 예쁜 꽃이었겠다' 같은 말이었다.

모두 과거에 예뻤을 거라는 칭찬일 뿐 현재가 예쁠 수는 없었다. 내 노력은 역시 헛되었다.


그럼 이제 예쁜 걸 찾는 건 포기해야 한다.

꽃은 예뻐야 의미 있는 존재지만

이제 그 존재 의미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 예쁜 한때로 기쁨과 소망을 주었으니 감사하다.

그리고 이제 다른 꽃의 거름이 될 테니 소명을 다한 거다.

시든 꽃에는 '감사'가 어울린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디를 봐도 예쁜 구석을 찾기 힘들다.

짙어지는 주름에 착색되는 피부색으로 조금만 인상을 써도 험악해진다.

웃어도 주책맞아 보일 때가 많다.

이제 내게 예쁨을 찾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나보다 더 늙은 노인에게는 더더욱.

난 계속 되도 않는 헛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에게도 어울리는 것은 시든 꽃처럼 ‘감사’일것이다.




<꽃병 장례식>

꽃병 속 가득했던 장미 다발이

어느새 휑해졌다.      

당당하게 피어나 꼿꼿이 서서

향기까지 화려하게 내뿜던 장미는

점차 꽃잎 끝을 누렇게 만들었다.

어쩌지 못하고 그리 되었다.

나는 시든 꽃잎을 떼어내주었다.

시들어 가장자리를 누렇게 만든 꽃잎은

이미 각오가 된 듯이 힘없이 떨어졌다.

시든 꽃잎 몇 장 떼어내니

장미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꽃망울의 크기가 줄었을 뿐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도움이 될까 싶어 부지런히

물을 갈아주고, 더해 주었다.

하지만 며칠 후 꽃잎은 다시 누렇게 변했고,

몇몇은 고개를 숙였다.

누가 푹 꺾어놓은 듯 90도 가까이 내려앉았다.

어찌 된 일인가 손을 갖다 댔는데

그대로 꽃망울이 줄기에서 떨어져 버렸다.

속으로 이미 다 상해 있었던 거다.

시들었지만 여전히 꽃모양이었는데

이미 생명을 다해 줄기에 겨우 얹혀있었던.

난 그런 꽃을 몇 개 골라 꽃병에서 치웠다.

시들면 시든 꽃잎만 떼어주고

그리고 며칠 후엔 아예 꽃병에서 꺼내 버리고.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꽃들의 장례를 치른 거 같다.

이제 가득했던 꽃병은 휑하니 변해

쓸쓸하게, 어쩌면 한가로이 몇 송이가 남아 있다.

꽃이 가득했던 꽃병을 보던

황홀한 기분은 사라지고

꽃병을 보는 내 맘은 쓸쓸하다.

그리고 애써 담담해지려 마음을 다독인다.

‘그런 거야,

그게 순리니 거스를 수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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