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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30. 2024

50에 판 호적

청춘 예찬만 있으랴

  

누군가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

나는 잠깐 생각하는 척을 하고는 이내 답한다.

어느 때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살아오며 아쉽고, 후회되는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 어디에 원서를 썼으면 붙었을 텐데.

그때 그 집을 샀으면 많이 올랐을 텐데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나를 되돌릴 정도로 아쉽지는 않다.

나는 뚜벅뚜벅 지금까지 걸어왔고, 여기에 있다.


퇴물 취급을 받는 나이와 겉모습은 누가 보기에는 흉할지 모르지만, 난 어느새 삶의 많은 숙제를 해놓은 느낌이 들어 좋다. 살 날 보다, 산 날이 많아졌다는 건 아쉬움보다는 뿌듯함이며 안심이다.

나이 들며 건강과 젊음은 희미해지지만 경험이 쌓이며 놔야 할 것이 있다는 것, 잡아도 소용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자유로워진 김에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내 멋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피로 이어진 가족이라는 범위를 내 멋대로 늘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기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걸어오는 전화는 가끔 예의 없게 무시하는 일도 있다.

난 그게 뿌듯하다. 그렇게 자유로워진 내가 기특하다.    

  

그리고 50대에 호적을 팠다.

이 호적은 국가 기관에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다.

내 멋대로 판 호적이다. 내가 가족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가족에게는 나만의 원칙을 적용하여 대하고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작은 차이지만 그건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나는 ‘아 다르고 어 다르고’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작가라는 직업 때문에 표현에 민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 그래서 ‘왜 저렇게 말을 할까?’하는 생각을 꽤 했었고, 나도 그렇게 작은 차이를 두어가며 표현했던 거 같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툭툭 마음속에 걸리는 일이 자주 생겼다. 상대가 내 표현을, 마음을 오해한 것 같기도 했고, 어딘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나를 대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일이 꽤 되었다. 상대가 나처럼 ‘아 다르고, 어 다르다’에 집착하는 사람만 있었던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옹졸하고, 짧은 혜안이 답답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만의 원칙을 정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만날 때 의례 조심하게 마련이다.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살피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사람은 친해지고, 친구가 된다. 그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의미다. 친구라고까지 할 수 없더라도 오래도록 보아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판단하게 된다. 내가 뭐 신이라도 된 거처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그 사람을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한해서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겐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세 가족이 있다. 203호, 305호 그리고 나 1805호. 이웃으로 살며 함께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온 가족이 진짜 가족처럼 친해졌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리다 보니 사람마다 사정이 달라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생긴다. 내가, 상대가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알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그들을 향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를 버렸다.


언젠가 세 가족 중 가장 나이 어린 305호 동생이 자기가 203호 언니에게 실수한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을 내게 털어놓았다.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널 알 듯이 걔도 널 알아. 네가 다른 마음으로 한 말 아닌 거 아는데 뭘 걱정해. 너도 마찬가지로 우리 중 누가 그렇게 행동해도 나쁘게 오해하지 않을 거잖아. 안 그래?”

“언니,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래, 괜한 거에 맘 쓰지 마.”


나는 평소와 다르게 좀 단호하게 말했다. 난 그들을 좋아한다. 아주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좋다. 그건 그들도 마찬가지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가진 오랜 시간이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순간 나쁜 맘으로 말을 했다고 해도 그건 온전한 진심은 아닌 것이다. 그저 지나가게 두어도 되는 감정인 것이다. 그것이 내 마음을 툭 친다고 해도 끄떡없어야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다. 지나가는 작은 흔들림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주고 나면 오랫동안 내가 가졌던 행복이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에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쓸데없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 세월이 쌓이니 그들 말고도 내게는 서로의 쓰레기통이 되기로 하며 맘을 튼 가족이 몇 더 있다.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싶은 내 맘속 것들을 그들과 함께 소닥이며 털어놓는다. 나쁜 생각은 그렇게 털어버리면 끝이 나곤 한다. 다른 것은 없다. 서로의 맘을 들여다봐주고, 다독여주고 그거면 되는 거다. 

  



자유로움은 익숙한 것에서 온다.

익숙한 음식을 먹을 때, 

익숙한 거리를 걸을 때, 

익숙한 사람을 만날 때...

익숙할 때 우리는 긴장하지 않는다. 

한껏 자유로워 여유를 부린다.

일부러 돌아서 걸어가도 보고, 

(이미 맛을 아니까) 다양한 방법을 취해 먹어도 보고, 

무장해제 상태로 나를 드러낸다.      


익숙한 것은 한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유를 얻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 시간과 공을 들여 자유를 얻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그랬고,

여성의 자유가 그랬고

어린이의 자유가 그랬고

장애인의 자유가 그랬고

경제적 자유가 그랬고

마음의 자유가 그랬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래서 자유로움이 추가되는 것이다.

나이 듦을 상실로 여기곤 하지만

난 나이가 들어 자유를 느낀다.

내 몸에 붙었던 여러 가지 끈이 끊어지고 느슨해진다.

상실은 크나큰 슬픔이지만

나에게로 돌아오는 기회이며 그래서 자유일 수 있다.

마음 한구석에 노년에 생겨날 나약함을 두려워하는 맘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큰 자유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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