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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y 16. 2024

노화는 뉴노멀

'원래'가 사라진다


'이게 왜 이러지?'라는 물음에 나오는 대답에는

'이거 원래 이랬어' 혹은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같은 말이 있다.


나는 며칠 전 기차를 타고 지방에 다녀오며 심한 무릎 통증을 느꼈다. 앉아 있었는데도 느껴지는 무릎 통증이라니. 그리고 오늘 아침 쭈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는데 무릎이 아파왔다.

‘와,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최근 나의 스트레스 중 하나는 거친 머릿결이다. 머릿결이 나쁘면 어떤 헤어스타일도 예쁠 수가 없다. 일부러 폭탄 머리를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헤어에센스를 매일 쓰는데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그래서 헤어팩을 주문해 두었다.


그러니까 나의 '원래'는 앉아 있으면서도 무릎이 아프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일이었고,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원래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처음 흰머리가 조금씩 날 때는 엄살을 부리듯 늙음을 한탄했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잇몸의 탄력이 떨어져 치아 사이에 끼는 음식물을 튕겨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탄력은 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노화의 징후와 결과는 더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무릎 통증과 거친 머릿결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에 대해 생각했다.


'원래 그랬어'라는 것이 과연 맞는 말일까?

원래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우리는 좋은 것, 편한 것, 이로운 것을 나의 원래라고 여긴다. 떼쓰듯이 좋을 걸 자기 것으로 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는 거였다. 더구나 내게만 이로운 것이라면 그건 더더욱 원래라고 할 수 없었다.


원래 그랬던 걸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무릎이 아프고 나서야 내 무릎이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일은 아마 아주 많을 것이다. 잃고 나서, 떠나고 나서 후회하기보다, 잘 살펴서 아끼고, 고마워해야겠다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원래’라는 말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속에 담긴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희생이나 노력, 배려를 생각지 않았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아침이면 발바닥을 땅에 짚기 힘들게 뻐근하고 아파온다. 밤새 누워있어서 걷는 것에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 정도로 이제 몸은 민첩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그 속도에 맞춰 천천히 살면 된다.


난 다시 생각한다.

원래 그런 건 없고,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도 없다고. 모두 손대 만들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라고.

아주 쉬운 예가 머리스타일이다. 머리칼은 자연 그대로 원하는 모습이 될 때가 많지 않다. 일일이 만져주고 체크해야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된다.

자고 일어나면 원하는 스타일을 위해 머리부터 감는다. 머리를 감으면 원하는 머리모양을 만지기 쉬울 뿐 아니라, 머리가 차가워져 상쾌해진다. 이제부터는 아침에 머리를 만지는 것처럼 천천히 걸어보며 몸을 회복할 것이다. 나를 그렇게 만들면 된다.




달콤했던 '원래'를 떨치고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우울감도 느껴지고, 자괴감도 느껴진다. 하지만 좌절만 할 수 있나.  어느 순간, 나는 나를 태양을 품은 위대한 여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산책을 할 때면 태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푸른 나뭇잎과 풀은 모두 태양이 키우고 있다. 밤 산책을 하며 하늘에 달이든 별이든 인공위성이든 반짝이는 것을 보면, 모두 태양이 만들어내는 빛인 걸 알고 새삼 놀란다. 그런데 그런 태양을 나도 품게 되었다.


새벽녘이면 후끈한 느낌에 이불을 걷어버리곤 한다. 그러다가 추위가 느껴져 급하게 이불을 끌어당겨 덮다가 다시 걷어내기를 반복한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가벼운 잠옷을 입고 잔다.  답답증이 나서 대충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 반드시 잠옷을 찾아 입는다.

어떤 날은 등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불감에 침대에서 내려와 급하게 차가운 방바닥에 눕는다. 이렇게 된 지가 꽤 되었다. 이러니 내가 태양을 품게 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겨울이 되어도 내복 입는 법이 없어졌다. 추위를 너무 타서 집에서 패딩을 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운 적이 있다. 추위가 싫어서 울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상상 속 일이 되었다. 나는 태양을 품어 추위에 당당해졌다. 그래서 얼굴도 갑자기 태양처럼 붉은빛을 띨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보고 놀라는 사람도 종종 있어서 부끄럽지만, 그게 나다. 어쩔 수 없다. 약도 먹어봤는데 소용이 없다.


태양은 우주의 중심이라 쉽게 나를 찾아올 리 없듯이 경망스레 떠나지도 않았다. 벌써 수년째 이런 상태로 있다. 보통은 이걸 갱년기라고 하는데 나는 태양을 품은 것으로 여기기로 한다. 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의 노력이 첫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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