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과장 Mar 16. 2024

비비가 쏘아 올린 밤양갱

핫이슈 상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그 상품은 이제 안 나오나요? 한 번쯤 궁금해봤을 내가 좋아하던 상품의 중단.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에서 만드는 상품은 한 번에 수만 개씩 제조사에서 생산하여 센터에 보관하다가, 각 유통사 센터로 입고된 후, 각 점포로 출고된다. 


저회전 상품은 이 과정 어딘가에서 쳐지게 되고, 결국 제조사, 유통사, 점포 중 누군가가 폐기 손실을 떠안게 된다. 대용량 소면, 올리브유, 마른미역, 다진 생강... 매출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치의 숫자를 보고, 중단을 시켜놓으면 어김없이 재개 문의가 들어온다.


늘 그 자리에 수십 년째 운영되고 있어도 존재감이 없다. 아주 안 팔리진 않아서, 없으면 없다고 클레임이 들어온다. 우리는 이런 상품을 구색상품이라고 부른다. 담당자 입장에서 저회전 상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랜 세월 '구색'에서 '요즘 필수'가 되어버린 화제의 상품, 밤양갱이다.

밤양갱 있나요?


어쩌다 한번 먹어본 적은 있어도 내 돈을 주고 사 먹어 본 기억은 별로 없는 신기한 상품. 양갱은 팥 같은 재료에 설탕, 물엿, 한천을 섞고 졸여 만든 일본 화과자이다. MZ세대들이 약과로 대표되는 할매니얼 콘셉트의 옛 과자에 관심을 줄 때에도 양갱은 뒷전이었다. 제조사, 유통사 관계자, 고객 이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이 되었다. 장기하가 만들고 비비가 부른 신곡, 밤양갱이 차트 1위를 찍는 순간부터.


떠나는 길에 네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 비비, 밤양갱 가사 중에서 -


양갱의 대표주자는 H사의 연양갱이다. 구색이다보니 각 사마다 양갱을 만들고는 있지만 대표 상품 1종만 취급하는 곳이 많았다. 노래의 주인공인 밤양갱은 C사의 상품. 콕 짚어 밤양갱을 노래한 덕에 계획에도 없는 많은 채널에서 입점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저희 좀 더 배정해주세요. 생산수량을 돌리고 또 돌리며 회장님께서 흐뭇해하셨다는 후문이다. 구색상품도 필수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콘텐츠힘이다. 

품절대란의 소비심리


유통회사 다니니 하나만 구해달라는 요청을 무수히 받았던 허니버터칩, 뜬금 없이 품절 대란이 났던 꼬북칩 초코츄러스맛, 아빠 차에 엄마랑 같이 타고 배송차량을 따라잡아 확보했던 포켓몬빵, 23과자 업계를 씹어먹었던 먹태깡, 대박 난 집에서 얼른 숟가락을 얹어 대박이 터진 노가리칩까지. 정신을 차리고 하나씩 먹어보면, 화제의 상품도 다른 신상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달디달고 짭짤한 맛이다.


어떤 화제의 상품이어도 늘 해당 MD 책상에서 한 두 조각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어서였을까? 바깥에서 매번 비슷하게 벌어지는 진귀한 품귀현상들을 바라볼 때면, 인간은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소비하는가 궁금해진다. 소비의 결정에 이성이 큰 역할을 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저 내가 이 진귀한 상품을 구했고, 먹었고, 인증했노라. 어쩌면 상품의 맛이나 효용가치에 대한 차원이 아닌 일종의 현대판 어른들의 놀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생사 큰 재미가 없는데 소비자에게 작은 즐거움을 준 거라면 그 어떤 영양소 섭취보다 좋은 일일수도 있다. 요즘 상품담당자는 맛, 품질과 같은 상품의 본질보다 힙해질 그 요소를 찾고 바이럴 시키는 게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더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골라보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발행 중인데, 약간 현타가 오는 재미있는 사건이. 물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좀 더 나은 상품이 많아지길 바라며 아랑곳하지 않고 뒤집어보고, 알아보고, 쓰겠노라. 거품은 곧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달디단 밤양갱의 성분은 팥앙금, 갈색설탕, 물엿, 결정포도당, 올리고당 등등입니다. 조금만 드세요.


by. M과장


ps. 주변에 어디 밤양갱 같은 사람 없나 잘 살펴보기.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면서 꾸준한 그가 누구인가? 등잔 밑이 어둡다! 어르신들의 속담은 늘 진리를 담고 있다. 연애도 할매니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