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빵순이였다.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에도 어김없이 빵집에 들러 빵을 샀다. 보송보송한 베어커리식 쿠키는 사 먹는 게 만족스럽지 않아 직접 만들기도 했다. 빵을 만들어보면 재료에 놀라 잘 안 먹게 된다는 말이 있다. 밀가루와 설탕을 수북이 들이 부우면서도 느끼는 바가 없었던 나를 돌아보면, 모든 건 케바케이다.
꼴에 다이어트 중이라 스벅에서 휘핑크림은 빼 달라고 했지만, 특정 빵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빵집에 갔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왜 살이 빠지지 않는가,살짝 의문을 가졌던 그때. 지나고 보니 그때는 나의 전 생애를 통 틀어 가장 무거운 시절이었다.
빵이 곧 힙함의 척도
오프라인. 이른 오전, 오픈도 안 한 베이글 집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있다. 한번 주문하고 나서 추가 주문을 하려면 다시 이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모두들 한 번 주문에 기본 10개씩, 진열대에 있는 걸 종류별로 주문한다. 뒷사람은 초조하다. 이러다 플레인 다 빠지겠네.
백화점도 열심이다. 이 줄 뭐예요?이런 힙한 것도 모르면넌 먹지 마눈빛으로 대충 대답해 준다. 정확히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남들이 다 기다리니 같이 기다려서 구매했던 미지의 빵. 당신이 알지 못하지만 힙하고 고급진 그 빵은 여기에만 있습니다! 요즘 힙플레이스의 조건은 얼마나 멋진 빵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가이다.
한 온라인 플랫폼은 최근 몇 달째 빵만 담당하는 자를 뽑고 있다. 그의미션은 더 고급지고, 더 힙한 빵 브랜드를 단독 론칭하는 것. 고급 빵집이나 백화점에서 기다릴 시간과 여유가 없는 고객의 니즈까지 흡수하는 전략이다.유기농 야채를 편하게 제공하기위해 시작했다단 사업.한 때는 상품에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돈 되는 건 아묻따 다 하고 있는 것같아 씁쓸하다.
빵의 미친 매력 & 아쉬운 재료
빵은 힙한 만큼 비싸진다. 하지만 재료도 그럴까? 빵의 재료는 밀가루, 우유, 가공유지, 설탕, 버터, 유화제, 쇼트닝이다. 밀가루도 피해야 할 정제곡물이고,달지 않아도 상당한 양의 설탕이 함유되어 있다. 촉촉할수록 더 많은 쇼트닝, 마가린, 버터 같은 고형유지가 들어간다. 특히 고형유지는 빵의 가소성과 경도를 결정하기에 꼭 필요한 요소이며, 건강에 가장 안 좋은 기름형태이다.인생에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어르신들의 아이돌, 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요즘 3040대가 우리 부모세대보다 가속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여러 가지 노화의 원인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는 단순당과 정제곡물이다. 곱게 간 하얀 밀가루와 설탕은 혈당스파이크를 만들고 인슐린 분비를 유발한다. 먹으면 더 먹고 싶어지는 마법까지 부린다.
정 교수는 “노화와 질병은 한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습관에 의해 만들어지며, 요행에 기댈수록 여러 급성, 만성 질환이 발생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계기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잠깐 만져도 기름기가 쭉 묻어나는 케이크나 크로와상, 도넛뿐만 아니라, 담백하고 건강하다고 알려진 무던한 맛의 빵들도 건강에 나쁘긴 매 한 가지이다.통밀과 호밀로 만들어 건강하다고 홍보하는 많은 빵들도 뒷면을 보면 밀가루, 설탕부터 시작한다. 핑계 같지만, 촉촉한 빵에 익숙한 우리나라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기획이다.
진짜 통밀빵과 과자는 스웨덴에 가면 먹어볼 수 있는데, 마치 사료 같은 퍽퍽한 식감에 상상을 초월하게 맛이 없다. 오늘 먹은 그 호밀빵이 입맛에 꽤 맞았다면 그건그냥 맛있는 보통 빵 호밀 맛 버전이다.
빵의 대안은 무엇인가?
미안하지만 빵의 대안은 없다. 떡 역시 정제곡물과 설탕의 집합체라 권장사항은 아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면 최대한 안 먹는 것이 답이다.
빵순이였음을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지금은 좀 더 멀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빵을 멀리할수록 체중이 정상범주로 돌아왔고, 운동해도 빠지지 않던 살은 찾아 먹던 것들을 걸러내며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외형이 좀 더 가벼워진 후, 연애도 더 잘 풀렸던 것 같다. 약간의 비약을 더해 빵순이에서 벗어난 후, 여러모로 인생이 나아졌다.
"어차피 내가 아는 맛이잖아요." 튼실한 스타일에서 수년 째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의 말이다. 가끔이면 모를까, 굳이 기다려서, 입고 알람 걸어서까지 찾아 먹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아는 맛, 어차피잘 모르는 가게는 지나가도 된다. 입에 달고 촉촉한빵은 백해무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