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Nov 22. 2021

두번째 겨울, 그리고 1층

세찬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릴 듯한 추위가 찾아왔다.

그럴만한 시기이다. 매해 첫눈을 만났던 시기는 12월 초 즈음이었다. 올해는 눈이 얼마나 오려나.

며칠 전 남편은 이 정도로만 기온이 유지되고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퍼뜩 고개를 들며 그러면 눈이 오지 않는걸? 그건 안되지 하며 답했다.


작년에는 소위 눈폭탄이라 불릴 만큼 하얗게 뒤덮인 날들이 많았다. 유독 인상 깊었던 때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다. 저녁 무렵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아이들이 한껏 들떴다. 밥 한 숟갈 먹고 엉덩이 한번 들썩이고 창문 한번 내다보고 그랬다.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남편과 아이들은 옷장을 뒤져 장갑을 찾아 끼고는 밖으로 나갔다. 새하얀 눈 때문인지 밖은 꽤 환했다. 가로등 빛이 조연처럼 서 있는 적당히 밝은 풍경이 따스해 보였다.

식구들을 내보내고 나 혼자 남아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갑작스럽게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흠칫 놀랐다. 새로운 집이 아직 낯설기도 하던 터였다. 돌아보니 거실창 밖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눈 뭉치를 들고 한껏 웃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1층으로 이사했다. 그게 작년 12월, 이제는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사하기 몇 달 전 동네를 지나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 건물을 바라보며 저기 1층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나가듯 했다. 코로나가 기약없이 이어지던 시기였다. 한참 나가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집에만 붙잡고 있으면서 뛰지 마라 발소리가 너무 크다며 자꾸 아이들을 혼내게 되었다.

그전에는 학교와 학원 아니면 놀이터 등으로 나가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에서 크게 아이들을 단속할 일이 없었다.

물론 잠깐의 시간이라도 애들이 조용할 리는 없었지만, 아래층 사는 이웃분들이 많이 이해해주셔서 마음 편히 지내왔다. 그러나 24시간 집에만 있다 보니 상황이 급변했다. 우당탕 놀고 싸우고 떼쓰고 잔소리하고 혼내고.... 소란스러운 날이 이어지니 애들도 안쓰럽고, 항의받지 않고도 이웃집 아랫집 볼 낯이 없었다.


그렇다고 단박에 이사를 결심한 건 꽤 충동적이긴 했다.

네이버부동산을 열어보니 얼마전 관심가진 그 집이 마침 매물로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는 무조건 직진이었다. 주저없이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그때 이미 나는 결심이 섰던 것 같다. 주말에 남편을 데리고 그 집을 둘러보고 와서는 막무가내로 이사하자고 했다.


 집을 먼저 정하고 사는 집을 나중에 처분해서   정도 마음고생을 하며 이사준비를 했다.

계약일, 이사일  여러 일정을 협의해서 정하고 잔금 일에 맞춰서 은행대출도 알아봤다.

이사날짜에 맞춰 도배와  가지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인테리어 업체에 약속도 잡았다.

줄줄이 돈 쓰는 일이라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양가 부모님은 예상치 못한 이사소식에 놀라고 1층으로 간다는 말에 더 놀라셨다. 아이고 사고를 쳤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셨다.


사고는 맞았다. 일단 저지르고 뒷수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니. ‘이사’란 단어에 묶인 함의가 이렇게 많았던지. 결혼 후 다섯 번째 이사였는데도 여전히 긴장하며 고민하느라 여러 날 밤잠을 설쳤다.


몇 가지 우여곡절을 거치고 보금자리를 옮기고나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게 되었다.  

모든 게 가까워졌다. 나무의 푸르름이 손 뻗으면 닿을 듯하고 새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베란다 창을 열면 뒤편에 있는 공원에서 풀 내음이 진하게 풍긴다. 한 발은 아파트에 다른 편 발은 주택에 걸치고 있는 모양새랄까.

발걸음을 디디며 집안을 누비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분 탓인지 나무 바닥에 닿는 느낌이 탄탄하고 안정감이 든다. 더는 아이들에게 발뒤꿈치 들라는 잔소리를 안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집을 드나들 수 있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사한지 며칠지나지 않아 선물처럼 눈이 가득 내리던 , 창문을 뛰어넘으면  빠질  눈앞에 쌓인 하얀 눈송이에 절로 신이 났다.

현관을 열고 뛰어나갔다가 입김을 뿜으며 금세 돌아오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웃을 수 있는 우리 집이 좋다.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맞은 겨울, 올해는 눈이 얼마나 오려나 기대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설핏 희미한 눈발이 날린 듯하다. 공기가 유독 차가워진 건 저만치 위의 눈송이들이 힘차게 입김을 내쉰 탓은 아닐지.


우리 집에서 맞는  번째 겨울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첫번째 겨울, 눈오는 날 창밖 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열다섯을 목표로 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