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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Oct 29. 2022

(13화) 아이 키우려다 내가 컸다.

육아의 본질을 깨달은 1년

# 다 남의 것

     

1학년도 이제 거의 끝나간다.

하은이가 입학하고 몇 달은 나도 신입생처럼 떨리고 걱정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옆집 7살 유치원생을 둔 엄마가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걱정을 한 아름 안고 묻는다. 한글은 다 떼고 보냈는지, 하교를 일찍 해서 힘들진 않은지, 학원 차량은 아이가 알아서 잘 타고 가는지 등등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도 올해 초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걱정하고 불안한 건 엄마일 뿐 정작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아이도 나도 1년 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자랐다.   

  

하은이도 이제 책과 조금씩 친해지고 학교 끝나 도서관에 들르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이만하면 되었지 나도 하지 못한 걸 아이가 하길 바라면 안 될 것 같다. 이것도 미주 엄마를 만나서 육아 얘기를 하면서 내 생각이 조금씩 바뀐 것이다.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명품을 들고 수입차를 타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35층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는 나이 먹고 내 집 하나쯤 있어야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삶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았다. 여기에 아이까지 잘 자라준다면 내 인생은 성공이라고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진짜 내 것은 하나도 없다. 집도 은행 꺼, 차도 카드 회사 꺼, 명품도 결국은 내가 번 게 아닌 남편 꺼, 아이도 내 생각대로 자라 줄지 어떨지 모르는 열어보지 않은 선물상자 같은 것.     



생각이 잘못되었다.

한없이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겉모습을 포장하는 데 집중했다.

내가 못한 것들을 아이가 이루어내면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던 과거의 내가 사라지고 아이가 이룬 결과들이 내 노력의 결과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더욱더 아이에게 강요하고 기대하고 억압했었던 것 같다.  

   

이제는 하은이를 보면 그냥 행복하다. 어릴 때의 나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칭찬해주고 조금 더 안아주고 싶다. 변해가는 내 마음은 아이들이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엄마.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왜 나만 보면 웃어? 공부하라고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좀 이상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값

    

개똥이네에서 구매한 전집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싸고 좋은 책들이 많아서 다 사고 싶어 졌지만, 미주 엄마의 말대로 한 달에 한 질씩 꾸준히 읽히면서 늘려나가야겠다.

하은이도 책이 재미있어졌다며 국어책에 있던 지문들이 길고 지겨웠는데 이제는 뒷부분이 궁금해서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고 싶다고 했다.


‘개똥 값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값이었구나….’     





미주 엄마에게 빌렸던 돈도 이제 거의 다 갚아간다. 한 번에 갚아야 했다면 남편한테 다 털어놓고 안 그래도 없는 내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혔을 텐데 다행히 매달 조금씩 갚는 거로 편의를 봐줬다. 그리고 이제 알았다. 내가 보이는 데 급급해서 쓰는 돈만 조금 아껴도 상당한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도.   

  

미주 엄마 말처럼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서 매달 10%만 먼저 저축해 놓아도 몇 년이면 주부들도 목돈을 가질 수 있다. 아이랑 남편과 함께 행복한 경험을 위해 돈을 쓰고 추억을 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나도 책을 읽고 공부할 거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책을 읽히는 게 아니라 올바른 선택과 따뜻한 인성을 길러주기 위함이 책 읽기의 본질임을 깨달았다. 하은이는 하은이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남편이 사준 의미 있는 백 하나만 남기고 당근 마켓에 올려야겠다. 이제 나를 보여주는 것은 명품 가방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어제보다 성장한 나 자신이니까. 이상하게 없던 자신감이 생긴다. 기분 좋게 정리하고 미주 엄마랑 커피나 한잔해야겠다. 달라진 내 각오도 말하고 이번엔 미주 엄마의 흔들리지 않는 교육 가치관과 자신감은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들어봐야겠다.  

  

당근! <다 살 거야 님>과 당근 마켓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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