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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없는 세상 22화

결핍

by 이현성

가을이 왔다. 올해 여름은 더웠고 방 안에 있는 날이 많았다. 가을이 와서야 나는 밖으로 나갔다. 여름은 나에게 결핍의 연속이었다. 나는 온 여름을 혼자서 지냈다.


네가 사랑한 단어들을 쓴다. 편안, 안녕, 친애. 너의 단어는 내게 없는 낱말이다. 그런 단어로 글을 쓰자니 내 메모장은 이 세상에 없는 말로 가득하다. 너의 말은 쓰면 쓸수록 힘에 부친다. 낮게 스며서 아득해지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사는가. 나는 읽히지 않을 글을 쓴다. 내 언어는 가난하여 미련, 사랑, 슬픔 같은 것을 적는다. 너에게 닿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네 단어와 나의 단어 사이의 거리를 느꼈다. 네가 없을 때 나의 단어는 쓰인다. 그렇게 작동된다.


나는 빈곤한 말로 모든 너를 적는다. 내 말은 너의 부재와 동어다. 너는 어떤 가을을 보내고 있는가. 마침내 그렇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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