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존재를 즐기자!

15) 조화의 달성 - 16세기 초 : 토스카나와 로마

by 아이얼

16세기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탈리아 미술. 원동력은 바로 당시의 위대한 천재 미술가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시대에 지역에서 수많은 거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양산될 있었을까?

곰브리치는 질문에 이렇게 대변하였다.

"이런 질문은 하기는 쉬워도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천재의 존재를 설명할 없는 것과 같다."


이번 장은 특히나 많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분량도 많다. 따라서 발췌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간추려 이탈리아의 16세기 미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리한 교회 건축 - 도나토 브라만테(1444-1514)


도나토 브라만테,<르네상스 전성기의 예배당: 템피에토), 1502년. 로마 몬토리오의 성 베드로 대성당 내


1506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바실리카를 헐어내고 새로운 방식으로 교회를 짓기로 결정하고 도나토 브라만테에게 건축을 맡기었다. 천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서유럽의 전통 고딕 양식을 무시하고 새로운 건축방법을 모색하고 연구하였던 것이다. 그는 고대로마의 최대 건물인 콜로세움과 판테온 신전을 결합시킨 전대미문의 건축물을 세우겠다는 야심을 품고 대공사를 시작했다.

이러한 원대한 뜻을 이루려니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게 되었다. 이 성전건축기금 모금이 그 유명한 면죄부 판매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시발점이 된 무리한 건축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 1452-1519)


이탈리아의 유명한 거장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토스카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렌체에서 화가이며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 1435-88)가 경영하는 유수한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바르톨로메오 콜레오니 기념상). 청동, 높이 395 cm, 베네치아1479년.산조반니에 파올로 광장


베로키오가 만든 이 기마상은 그가 도나텔로의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말의 해부학을 연구했으며 또 얼마나 명확하게 콜레오니의 얼굴과 목의 근육을 관찰했는가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도 놀랄만한 점은 투지만만하게 부대의 선봉장으로 달리는 것같이 보이는 말 탄 사람의 자세이다.


위 동상의 세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런 세밀한 관찰을 배경으로 역동적인 걸작품을 만들어냈던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동물을 관찰하는 법, 원근법, 안료의 사용법 등등 철저한 기초를 베로키아의 수하에서 습득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해부학 연구(후두부와 다리), 1510년. 종이에 펜과 갈색 잉크 및 검정 분필과 담채,26×19.6 cm,윈저 성 왕립 도서관

"우리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보면서 그의 정신의 활동 범위와 그 엄청난 생산성에 놀라게 된다. 그 속에는 그가 쓴 글과 소묘, 그가 읽은 책에서 발췌한 글들, 쓰려고 했던 초고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미술가의 임무는 더 철저하게,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더 정확하게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레오나르도는 자기가 읽은 것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권위자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실험으로 해결하였다... 그는 자연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느꼈고 창의적 정신으로 이 모든 것에 도전했다...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해서 인체의 비밀을 탐구했으며 자궁 속에서 태아가 성장하는 신비를 조사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또한 파도와 조류의 법칙을 연구했으며, 곤충들과 새들이 나는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언젠가는 현실화되리라고 확신한 비행 기구를 고안하기도 했다." - 293쪽


이러한 치열한 연구와 학습이 바탕이 되어 거장의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다음의 대표적인 몇 작품을 통해서 그 경이로운 결과를 주목하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98년. 회반죽에 템페라, 460x880 cm,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화


이 벽화는 안타깝게도 보존상태가 매우 나빠 실제로는 이렇게 희미하다.

이러한 만찬을 다룬 그림은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드라마가 있고 흥분이 있다."라고 곰브리치는 확실한 차별성을 이야기한다.


하루 뒤에 닥칠 모든 일들을 다 아시는 예수님의 비장함, 안타까움, 간절함과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의 무심한 행동거지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당시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다 아는 수도사들에게 이 그림이 어떻게 다가왔을지를 상상해본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주의 만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성찰의 드라마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받침대 위에 올라가 그가 그려놓은 것을 유심히 바라보며 붓 한번 대지 않고 팔짱을 끼고 하루 종일 서 있곤 했었다."

당시 목격자가 전하는 이 일화에서 우리는 이 위대한 작품이 그의 깊은 사색의 결과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 리자>, 1520년경. 목판에 유채, 77×53 cm, 파리 루브르


<최후의 만찬>보다 훨씬 더 유명한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들자면 그것은 리자 (Lisa)라는 이름을 가진 피렌체의 한 부인의 초상인 <모나 리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 관해서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먼저 감탄하게 하는 것은 리자라는 인물이 놀라울 정도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화가는 보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가령 윤곽을 확실하게 그리지 않고 형태를 마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것같이 약간 희미하게 남겨두면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인상을 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레오나르도가 창안한 '스푸마토(sfumato)'기법이다. 이것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 속으로 뒤섞여 들어가게 만들어 무엇인가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는 희미한 윤곽선과 부드러운 색채를 가리킨다."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스푸마토 기법을 아주 세심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본다. 얼굴을 그리거나 낙서를 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표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주로 두 가지 요소, 즉 입 가장자리와 눈 가장자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즉 레오나르도는 리사의 눈과 입 가장자리를 모호하게 남겨둠으로써 관람자들에게 저마다의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눈과 입. 그 희미한 날것의 이미지에 매료당하게 되는 것 아닐까 나름 생각해본다.


<모나 리자> 세부 사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 1475-1564)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빛나게 한 두 번째 피렌체 미술가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였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보다 스물세 살 아래였지만 그가 죽은 뒤로 45년을 더 살았다. 그의 긴 생애 덕분에 그는 미술가의 지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정도 그 자신이 이룩해놓은 것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 미켈란젤로도 다른 장인들과 같은 훈련 기간을 지냈다. 그는 13살의 소년으로 피렌체의 지도적인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 1449 94)의 분주한 공방에 들어가 3년 간 도제 생활을 했다. 기를란다요는 당시의 화려한 생활을 흥미 있게 반영해주는 작품들을 남겨준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성경 이야기를 마치 당시 시민들 사이에서 방금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재미있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였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성모의 탄생>, 1491년, 프레스코,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이 그림은 성모 마리아의 탄생을 묘사한 것으로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의 친척들이 찾아와서 그녀에게 축하하는 장면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15세기 말의 한 화려한 저택의 내부와 상류 사회 숙녀들의 의례적인 방문 장면을 보게 된다. 기를란다요는 인물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방법과 눈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소년 미켈란젤로는 그의 공방에서 작업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인 수법과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확고한 기법 및 소묘의 철저한 기초를 모두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미켈란젤로는 이 성공적인 화가의 공방에 안주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미술에 관한 그의 이념은 전혀 달랐다. 그는 기를란다요의 안이한 방법을 배 우는 대신 조토, 마사초, 도나텔로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과 메디치 가의 소장품에서 본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 작품들을 연구하기 위해 공방을 나왔다.”


“그는 근육과 힘줄을 가지고 움직이는 아름다운 인체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고대 조각가들의 비법을 깨닫고자 하였다. 레오나르도와 마찬가지로 해부학의 법칙을 고대 조각만을 통해서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체를 해부하고 모델을 보고 직접 소묘하며 인체의 비밀을 모두 알 때까지 인체 해부학에 관한 나름대로의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집중력과 기억력은 대단히 탁월했으므로 얼 마 안 가서 그리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자세나 동작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사실상 어려움은 단지 그의 관심을 자극할 뿐이었다... 곧 이 젊은 미술가가 고대의 유명한 거장들에 필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능가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30살이 될 무렵 그는 천재 레오나르도와 필적할 수 있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거장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당시 교황 유리우스 2세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시킬 작업을 의뢰하게 된다. 그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였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이 아닌 조각과 건축을 하기 원했고, 그를 위해 준비하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러한 주문은 썩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예배당 안에 혼자 틀어박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는 전 세계가 깜짝 놀라게 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4년간의 고독한 작업 끝에 완성한 이 대작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보는 자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예배당〉 복원 전 내부의 전경


미켈란젤로,〈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1508-12년. 프레스코, 13.7×39 m, 바티칸


궁륭 천장의 바로 밑부분에 다양한 남녀의 모습을 끝없이 이어놓았는데, 성경 속에 열거된 예수의 조상(祖上)들을 그린 것이다.

“사진을 통해서 이처럼 많은 인물상들을 보면 천장 전체가 혼란스럽고 균형이 잡 히지 않았으리라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스티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서 그 천장화를 단순히 하나의 훌륭한 장식으로만 생각하고 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조화로운지 그리고 전체의 짜임새가 얼마나 명료한지를 발견하고는 대단히 놀라게 될 것이다. 1980년대에 거기에 쌓인 그을음과 먼지의 두터운 층을 제거한 이래로 그 강렬하고 밝은 색채가 드러났는데, 그토록 좁고도 적은 수의 창문을 지닌 이러한 예배당에서 그 천장화가 보일 수 있게 하려면 당연히 밝게 채색해야 했을 것이다(이 점은 오늘날 그 천장화에 비추어지는 강력한 전기 불빛 속에서 그 그 림을 바라보며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힘찬 몸짓으로 초목들과, 해와 달과 같은 천체들과 동물들과 인간들을 불러내는 조물주의 모습을 본다.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수십 세대를 통해서 각인되어 떠오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은 미켈란젤로가 그의 천지 창조에서 그려 보인 그 위대한 비전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만들어졌다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니다. “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일부

“이 그림은 천장을 가로지르는 궁륭에 그려진 그림의 일부로 미켈란젤로가 천지 창조 장면의 양쪽에 있는 인물들을 어떻게 배치해 놓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쪽에는 어린아이가 받쳐주고 있는 커다란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방금 읽은 것을 기록하려고 몸을 돌리는 예언자 다니엘이 있다. 그의 옆으로는 책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쿠마이의 무녀가 있다. 반대편에는 오리엔트 풍의 의상을 입은 늙은 여자인 '페르시아' 무녀가 성경을 눈 가까이 갖다 대고 성경의 구절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논쟁을 벌이는 듯 격렬하게 몸을 홱 돌리고 있는 구약의 예언자 에제키엘(에스겔)이 그려져 있다. 그들이 앉아 있는 대리석 의자에는 장난치는 아이들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 양쪽에는 커다란 메달을 천장에 화려하게 달아매려고 하는 나체 인물상들이 둘씩 짝지어져 있다. 또 삼각 소간(小間)에는 성경에서 전해지는 예수의 조상들이 구부린 자세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 놀라운 인물상들은 미켈란젤로가 어떤 자세든지, 어떤 각도에서든지 인체를 능수능란하게 그리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준다.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이 젊은 운동선수들은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 몸을 틀어 돌리고 있으나 언제나 우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 천장에는 자그마치 20여 명의 이런 인물상이 있는데 하나하나가 그 이전 것보다 더 훌륭해 보인다.”

이렇게 방향을 전환해서 보면 위 설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천장화 중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 1510년경. 황갈색 종이에 빨강 분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28.9x21.4 cm,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부분

“그가 그린 창세기의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것은 바로 이〈아담의 창조>이다. 미켈란젤로 이전의 미술가들도 땅 위에 누워 있는 아담을 하느님이 손을 대기만 함으로써 그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그림들을 이미 오래전부터 그린 바 있지만 아무도 이처럼 간단하고 힘차게 위대한 창조의 신비를 표현하지는 못했다... 아담은 최초의 인간답게 힘차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땅 위에 누워 있다. 반대편에서는 아버지 하느님이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오고 있다. 돛과 같이 바람에 나부끼는 넓고 장엄한 망토를 입고 있는 모습은 허공을 빠르고 쉽게 날아다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느님이 손을 뻗치자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이 최초의 사람은 마치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그의 창조주인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하느님의 손길을 이 그림의 중심에 두어 초점으로 만들고 의연하고 힘찬 창조의 모습을 통해서 신의 전지전능함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방법은 미술의 가장 위대한 기적 중의 하나이다.”


곰브리치의 설명대로 이 천장화는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수년 전 이 곳에 들어섰을 때의 경이로움을 기억한다. 당시 이런 바램이 일어났었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관람객 모두가 바닥에 발라당 누워서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나오도록 했으면 정말 좋겠다.”

등 떠미는 수많은 관람객들의 무리에 줄지어 밀려가면서 말이다...


미켈란젤로, <죽어가는 노예〉1513년경. 대리석, 높이 229cm, 파리 루브르


시스티나 천장화에서의 엄청난 작업 끝에 미켈란젤로의 상상력이 고갈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미켈란젤로는 1512년 시스티나 예배당의 위대한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곧 율리우스 2세의 영묘 건립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대리석 조각에 착수했다.

그는 그 영묘를 로마의 유적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수많은 포로들의 조각상으로 장식하고자 하였다. 그들 군상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죽어가는 노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로 작업할 수 있게 되자 그의 능력은 더욱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아담'에서 힘찬 젊은이의 아름다운 육체 속으로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순간을 묘사한 반면에 <죽어가는 노예〉에서는 생명력이 막 꺼지려 하고 육체가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는 순간을 선택했다.


살려고 발버둥 치는 데서 해방되는 이 마지막 체념의 몸짓 속에 설명할 수 없는 지극한 아름다움이 드러나진 것이다.



라파엘로 산티(Raffaello Santi : 1483-1520)


1504년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가 피렌체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을 때 한 젊은 화가가 움브리아 지방의 우르비노(Urbino)라는 작은 도시에서 피렌체로 왔다. 그는 바로 라파엘로 산티였다. 그는 '움브리아 파'의 지도자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 1446-1523)의 공방에서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페루지노,<성 베르나르두스에게나타난 성모>, 1490-4년경. 제단화, 목판에 유채,173x170 cm,뮌헨 알테 피나코텍


라파엘로의 스승 페루지노는 감미롭고 경건한 화풍의 제단화를 그려 일반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화가였다. 위 그림에서 보듯 인물들이 좌우 대칭 구도로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다. 반면 아치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의 묘사는 많이 생략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스승 페루지노는 제자 라파엘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관심 있게 들여다보지만.. 과연 스승을 뛰어넘는 라파엘로였음을 재삼 확인할 뿐이다. 무엇 때문일까?

각 인물들의 모습과 표정이 거의 비슷한 것이 별로 임팩트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관찰이 세심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미술의 감동은 한 끗 차이에서 오고 간다.

작가의 치열한 관찰로 이루어낸 작은 묘사의 차이!

그것으로 가슴이 뛰기도, 싸늘히 식거나 무덤덤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라파엘로,<대공의 성모>, 1505년경. 목판에 유채, 84×55 cm,피렌체 피티 궁


라파엘로의 이 그림을 보면 그 차이를 현격하게 느끼게 된다. 사실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모와 아기 예수의 표정, 손의 위치, 빛에 따른 명암, 어두운 배경에서 도드라지는 성모와 예수의 차분하면서 성스러운 모습은 그 앞에 한참을 머무르며 엎드려 기도하고 싶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것은 무어라 이유를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직관’이라 할 수밖에 없다.


라파엘로, <요정 갈라테아>, 1512-14년경. 프레스코, 295×225 cm, 로마 빌라 파르네지나의 벽화

이 그림도 역동적이면서도 매우 안정적이다. 각자 다르게 움직이면서도 쌍을 이루고 있고, 가운데 중심인물 갈라테아에게 초점을 맞추게 하는 이런 통일성이 느껴지는 그림.. 딱히 무슨 이유 때문이다 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직감으로 느끼게 되는 미술의 신비이다.

모든 조연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하나의 통일된 미를 완성시켰다는 느낌이 든다.

미술 관람을 통한 카타르시스는 바로 이런 통합적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얻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요정 갈라테아> 세부


"미술가 들은 고전 시대의 조각 작품들을 보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형성된 아름다움의 이념에 따라 자연을 수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모델을 ‘이상화(理想化)'한 것이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살펴보면 생명력과 성실성을 잃지 않고도 인물을 이상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갈라테아의 사랑스러움에는 도식적이거나 계산된 곳은 하나도 없다. 갈라테아는 사랑과 아름다움이 빛나는 찬란한 세계, 고전 시대를 찬미하던 16세기 이탈리아인들에게 홀연히 나타난 고전 세계의 요정이었던 것이다." (320쪽)


라파엘로의 명성이 수세기 동안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고귀한 업적 때문이다.


라파엘로,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 1518년. 목판에 유채, 154 119 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라파엘로의 이름을 단지 아름다운 성모상과 고전 세계에서 이상화시킨 인물상에만 연관 지우려 하는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후원자로 메디치 가 출신인 교황 레오 10세가 두 사람의 추기경을 거느리고 있는 이 초상을 보면 아마 놀라움을 금치 못 할 것이다.


"머리가 약간 부풀어 오른 근시안인 교황의 초상에는 이상화된 것이 하나도 없다. 빌로드와 비단의 다양하고 풍부한 색조들이 호사스러움과 권세의 분위기를 돋워주나 이 사람들이 그렇게 편안한 상태는 아니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당시의 세태는 어지러웠다. 왜냐하면 이 초상화가 그려진 때는 루터가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금 모금 방법에 대해 교황을 공격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320쪽)


브라만테가 1514 년 사망한 뒤 교황 레오 10세는 이 베드로 성당 건축 사업의 책임을 라파엘로에게 맡겼다. 이렇게 그는 또한 건축가가 되어 교회를 설계하고, 별장과 궁궐을 짓고 또 고대 로마의 유적들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의 최대의 경쟁자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그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분주한 공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사교적인 성품 덕분에 교황청의 학자들과 고관대작들은 그를 친구로 삼았다. 라파엘로는 모차르트만큼 젊은 나이인 서른일곱 번째 생일날에 사망했다. 그는 그의 짧은 인생 동안 놀랄 만큼 다양한 예술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렇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 미술가 3인을 중심으로 16세기 이탈리아의 미술을 들여다보았다.

특별히 각 미술가들의 스승과 짝을 맞추어 앞부분에 짤막하게 소개 비교하였다.

그 이유는 ‘청출어람’

스승을 뛰어넘는 천재 미술가로 세워진 그들의 노력과 수고, 헌신을 부각하고자 함이었다.


미술은 과학이다.

미술은 지난한 학습의 결과물이다.

천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수세기 동안 온 세계가 주목하며 감동하는 대작을 생산해내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영감으로!

신비로운 창작과 아름다운 미의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새삼 감격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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