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기적 속으로

16) 빛과 색채 - 16세기 초 :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by 아이얼

지난 장에 이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엔 베네치아와 북부 이탈리아 지방이다.

무역으로 동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베네치아는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보다 브루넬리스키로부터 시작된 신고전 건축양식을 더디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단 받아들이고난 후부터는 베네치아인들 특유의 유쾌함과 따뜻함이 더해져 옛 헬레니즘 시대를 연상케하는 건축물이 세워졌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이 산마르코 성당의 도서관이다.



야코포 산소비노 (Jacopo Sansovino : 1486-1570)


야코포 산소비노,〈산 마르코 대성당의 도서관>,1536년, 전성기 르네상스의 건물, 베네치아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는 피렌체 출신의 야코포 산소비노 (Jacopo Sansovino : 1486-1570)인데 그는 자신의 양식과 작품을 그 도시 특유의 분위기, 즉 환초로 둘러싸인 해변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화려한 베네치아의 밝은 빛에 어울리도록 완벽하게 적응시켰다. 산소비노는 콜로세움 건축 기법을 많이 따르고 있다.

활기 넘치는 도리아식 원주(圓柱)를 가지고 있는 건물 아래층은 가장 정통적인 고전 양식을 채용하고 있다. 위층은 이오니아식으로 만들어 난간을 얹고 그 위에 조각상들을 배열한 소위 아티카 (attica :건축에서 조각상들을 놓는 대좌 구실을 함)를 갖추어 놓았다.

산소비노는 기둥 양식들 사이의 아치 형태가 콜로세움의 경우에서처럼 기둥 위로 놓이지 않고 또 다른 한 쌍의 가늘고 작은 이오니아식 원주로 받치게 함으로써 상이한 기둥 양식 들이 서로 엉켜 풍요로운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건물에 난간, 꽃 장식과 조각상들을 이용하여 고딕 시대의 베네치아 건축의 정면(1309년 착공한 베네치아의 도제궁 참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트레이서리를 연상시키는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건물과 빛의 어우러짐!

수년 전 여행 시 느꼈던 그 낭만적 이미지를 기억하며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 1431?-1516)


조반니 벨리니, <성모와 성인들>, 1505년. 제단화, 목판에 유채, 캔버스에 모사, 402x273 cm, 베네치아, 산 차카리아 성당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 1431?-1516)가 1505년에 산 차카리아의 작은 교회의 제단에 그린 이 그림을 보면 색채에 대한 그의 접근법이 매우 달랐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우선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실린 도판으로도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는 옥좌가 놓인 황금색의 빛나는 벽감에서 넘쳐흐르는 따뜻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조반니 벨리니는 베로키오,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과 같은 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 이 세대들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유명한 친퀘첸토(1500년대에 활동한 주도적 이탈리아 미술가들)의 거장들이었다. 그 또한 대단히 바쁜 공방의 우두머리였는데 그의 공방에서는 친퀘첸토의 유명한 베네치아 거장인 조르조네티치아노를 배출했다. 중부 이탈리아의 고전기 화가들이 완전한 화면 구성과 균형 잡힌 구도로써 그들의 그림 속에 새롭고 완전한 조화를 이룩했다고 한다면,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색채와 빛을 행복하게 사용하여 화면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 조반니가 보여준 모범을 따르고 있다."


화가 조르조네(Giorgione : 1478?-1510)는 바로 이런 영역에서 가장 혁명적인 업적을 이룩했던 사람이다.



조르조네(Giorgione : 1478-1510)


조르조네, 〈폭풍우>,1508년경. 캔버스에 유채, 82 ×73 cm,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당시의 베네치아 미술가들은 고대 그리스 시인들이 추구했던 것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원의 사랑을 다룬 목가적인 이야기나 비너스와 요정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를 좋아했다.

위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추측컨대 '장래에 영웅이 될 아기의 어머니가 아기와 함께 도시에서 쫓겨나 황야에 버려졌는데, 마침 친절한 젊은 목동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이 미술가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그의 진작(眞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겨우 다섯 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이 그림은 화면 전체에 스며있는 빛과 공기에 의해 하나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뇌우의 섬뜩한 빛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 또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배우가 되고, 무대가 되어준 풍경이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사물과 인물을 나중에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땅, 나무, 빛, 공기, 구름 등의 자연과 인간을 그들의 도시나 다리들과 더불어 모두 하나로 생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한 세대 전의 원근법 창안과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이었다.

이제부터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회화는 그 자체의 비밀스러운 법칙과 방안을 갖는 하나의 예술이 되었던 것이다.


조르조네는 이 위대한 발견에 대한 결실을 얻지 못하고 너무도 젊은 나이(32세)에 죽었다. 그의 성과는 모든 베네치아 화가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티치아노(Tiziano : 1485?-1576)를 통해 얻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만일 미켈란젤로처럼 오래 살았더라면 티치아노의 명성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이 틀림없을텐데 말이다...



티치아노(Tiziano : 1485?-1576)


티치아노, 〈성모와 성인들과 폐사로 일가>. 1519-26년. 제단화, 캔버스에 유채. 478 ×266 cm,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데이 프라리 성당


티치아노는 알프스 남부의 카도레에서 출생하였고, 흑사병으로 죽을 때 99세였다고 한다. 긴 생애 동안 그는 미켈란젤로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하게 되었다. 당시 황제 카를 5세조차도 그가 떨어트린 붓을 집어줄 정도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 궁정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해볼 때 세속적인 권세의 가장 위에 있는 왕이 천재 미술가 앞에서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미술가들의 권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발로인 것이다. 더욱이 티치아노는 레오나르도와 같은 박식한 학자도 아니었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으며, 라파엘로와 같은 다재다능의 매력적인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한 사람의 화가였을 따름이었다.


그가 물감을 다루는 솜씨는 미켈란젤로의 거침없는 소묘 솜씨에 필적할만한 것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구도의 규칙을 과감히 깨뜨리고, 색채를 통해 통일성을 회복시켰다. 위 그림을 보면 그의 미술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와 성인들>보다 불과 약 15년 뒤에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과는 달리 성모를 그림의 중심에서 옆으로 이동시켰으며 부차적인 두 성인을 이 장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주요 인물로 묘사하였다.

전체 장면은 노천 중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 구름을 뚫고 치솟아 있고 구름 위에서 작은 두 천사들이 장난치듯 십자가를 세우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매우 파격적 구성이었다. 티치아노 시대의 사람들은 오래된 구도 규칙들을 과감히 뒤엎은 그 대담성에 놀랐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러한 그림이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였다.


이 예기치 않은 구도는 전체적인 조화를 깨트림 없이 오히려 그림을 생기 있고 활기차게 만들어주었다. 그것은 티치아노가 빛과 공기와 색채로써 이 장면을 통일시켰기에 가능하였다. 단순한 깃발(그림의 왼쪽, 기수가 손에 든 깃발) 하나를 가지고 성모의 모습과 대칭을 이루게 했던 것이다. 깃발의 풍요롭고 따뜻한 색채! 이것은 그의 모험을 완전한 성공으로 이끈 놀랄만한 한 끗이 되었던 것이다!!


티치아노, <한 남자의 초상, 일명 젊은 영국인>, 1540-5년경. 캔버스에 유채, 111 ×93 cm, 피렌체 피티 궁


또한 티치아노가 당대에 그처럼 큰 명성을 얻은 다른 이유는 초상화 때문이었다.

그의 초상화의 매력을 이해하자면 다음 <젊은 영국인> 초상화의 머리 부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티치아노, <한 남자의 초상, 일명 젊은 영국인>, 세부


이 그림에는 레오나르도의 <모나 리자>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세밀한 입체감의 묘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무명의 젊은 영국인은 모나리자처럼 신비하게 살아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 꿈에 잠긴 듯한 눈동자는 거친 캔버스 위에 물감을 한 점 발라놓은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혼이 담긴 강렬한 표정으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 같다.


권력자들이 이 거장에게 초상화를 그려 받는 영광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티치아노가 실물보다 특별히 더 아름답게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예술을 통해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티치아노, <교황 바오로 3세와 알렉산드로 파르네세, 그의 동생 오타비오 파르네세〉, 1546년, 캔버스에 유채, 200 × 173 cm, 나폴리 카포디몬테 박물관


위 그림 나폴리에 있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상>은 교회의 늙은 통치자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젊은 친척, 알렉산드로 파르네세를 돌아다보고 있고 알렉 산드로의 동생 오타비오는 조용히 앞을 쳐다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티치아노는 이 그림보다 약 28년 전에 라파엘로가 추기경들과 함께 있는 교황 레오 10세를 그린 초상화(전 장 참조)를 분명 알고 있었고 또 감탄했을 테지만 그는 보다 더 생생한 특성을 강조하여 라파엘로의 그림을 능가하려고 하였던 것 같다. 이 세 사람의 만남이 너무나 설득력 있고 또 극적이므로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추측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 추기경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황이 그들의 음모를 꿰뚫어 보고 있지는 않을까?"

당시의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이러한 의문이 일어나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티치아노는 황제 카를 5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를 떠나 독일로 그의 초상을 그리러 갔기 때문에 이 그림은 아쉽게도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코레조(Correggio) =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 : 1489?-1534)


또 한 명의 위대한 화가로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 : 1489?-1534)가 있다.

북부 이탈리아의 소읍인 파르마 출신인 그는 16세기 초기의 이탈리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과감한' 혁신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일명 코레조(Correggio)라 불리었다.


코레조가 그의 대표작들을 그렸을 때 이미 레오나르도와 라파엘로는 사망했고, 티치아노는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새로운 혁신은 바로 '명암법'이었다.


코레조, <거룩한 밤〉, 1530년경, 목판에 유채, 256x188 cm, 드레스덴 고미술 갤러리


이 그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거룩한 밤>이다.


천사들은 기분 좋게 구름을 타고 다니며 긴 지팡이를 든 목동이 급히 들어오는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목동은 허물어진 마굿간의 어둠 속에서 기적을 본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사방에 빛을 발하고 있으며 행복한 어머 니의 아름다운 얼굴을 밝게 비추고 있다. 목동은 동작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경배하기 위해서 그의 모자를 만지고 있다. 그 옆에는 하녀가 두 사람 있는데 한 사람은 구유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눈이 부신 듯하며, 다른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목동을 쳐다보고 있다. 성 요셉은 오른쪽 어둑어둑한 바깥에서 나귀를 돌보는 데 열중하고 있다.


처음에 이 그림을 보면 왼쪽의 복잡한 장면에 대응하는 군상(群像)들이 오른쪽에는 없으므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성모와 아기 예수에게 빛을 던져 강조함으로써 전체 그림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코레조는 색과 빛을 사용하여 형태에 균형을 주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티치아노보다 더욱 잘 활용하였다.


이 그림을 보는 우리는 아기 예수가 탄생한 장면으로 목동과 함께 달려가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어둠 속을 비추는 '빛'의 기적을 보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들게 된다.


코레조, <성모의 승천>, 프레스코, 파르마 대성당의 둥근 천장


그의 이후 세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수세기 동안 반복해서 모방한 코레조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천장과 둥근 지붕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는 교회 안에 있는 신도들에게 천장이 열려 있으며,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빛의 효과를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그의 능숙한 기술로, 그는 햇빛을 가득 받은 구름으로 천장을 채우고 그 구름들 사이로 천사들의 무리가 다리를 아래로 늘어트린 채 빙빙 떠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찬란한 효과를 지금 재현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둡고 침침한 중세 성당에서 궁륭형 천장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이 환상적 광경이 저들을 얼마나 압도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벅찬 가슴으로 하늘나라 - 천국의 찬란한 이미지를 끌어안으며 어두운 현실을 감내하고 영원한 안식의 그곳을 향한 뜨거운 기도를 올렸을 교회 안 성도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ps: 요절한 조르조네가 안타까와 검색을 해보았다. 마침 2개의 동영상이 있어 첨부해본다.


https://youtu.be/pyvLNlqDpKc

https://youtu.be/RD_Mh_SDz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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