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자리와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공존할 수 없는 시간,
푸른 불 시그널이 꿈처럼 어리는
거기 조그마한 역(驛)이 있다.
또옥- 소리가 날리 없건만, 방울방울 떨어지는 하얀 액체들에 시선이 고정된다. 조금 질긴 점성일까, 혹은 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릴까. 여느 수액팩들보다 크기가 큰 팩으로부터 흰 액체들이 얇은 선을 따라 흘러 들어간다. 식사를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한 영양제다.
살풋 감긴 눈에 가끔 작은 떨림과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두 눈이 뜨이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팍은 가르릉 거리는 가래 끓는 소리가 더해져 있다. 몇 번째의 입원일까. 병실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마른세수를 하고, 할머니를 흔들어보지만 힘겹게 뜬 눈이 나를 바라보다 이내 다시 잠기고 만다.
통증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허리에 염증이 생겼다. 이전 수술부위에 생긴 염증을 긁어내야 한다. 시술 전 입원한 병실에서 할머니는 깊은 잠으로만 빠져든다. 식사를 위해 할머니를 깨워 앉혀 놓아도, 마치 어린아이가 된 양, 먹기 싫다는 거부만 돌아온다. 억지로 몇 입을 먹다가, 다시 눈을 감는다. 아픔을 잊기 위해서인 듯, 할머니는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계속 침전시킨다.
빈 대합실(待合室)에는
의지할 의자(椅子) 하나 없고
의자 하나 없는 병실 앞 복도에 홀로 어머니가 주저앉아 있다. 잠시 집에 다녀오는 시간 사이, 병실 안에서는 소란스러움이 흘러나온다. 얼굴을 감싸 안은 채,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억누르며 손틈새로 눈물방울들이 흘러나온다. 귓가에 울리는 할머니의 비명소리에 귀를 막지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을 흘리는 어머니였다.
여러 명의 남자 간호사들이 할머니의 사지를 붙잡은 채, 입 안으로 관 하나를 넣는다. 공기를 흡입하는 소리 사이로 이물질이 툭툭 걸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스스로 가래를 배출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가래를 빼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이어진다. 비명과도 같은 그 소리조차 힘이 없다.
치료가 끝난 후 진이 빠진 듯, 축 늘어진 할머니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든다. 흘러내린 눈물을 젖은 손수건으로 닦아내지만, 그 차가운 감촉에도 할머니는 깨어나지 않는다. 홀로 눈물을 닦아내던 어머니가 비틀거리며 병실로 들어선다. 집에 가서 좀 쉬어- 어깨를 토닥이며 어머니를 배웅한다. 지친 일상들의 연장선 위에 찍힌 하나의 사건이, 반복되며 하나의 일정처럼 이어진다.
이따금
급행열차가 어지럽게 경적(警笛)을 울리며
지나간다.
"혹시 간호사이신가요?"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혈압이 치솟는다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는 이야기에 119로 전화를 건다. 현재 나의 위치는 병원, 발신자의 위치를 파악하던 구급대원의 한 마디다.
"아뇨, 저는 지금 보호자로 병원에 있는데, 아버지께서 살려달라며 전화가 오셨어요. 아버지는 집에 계세요."
사정설명과 함께 집주소를 말하며, 이 병원으로 이송해 줄 것을 부탁한다. 전화기를 손에 들고, 누워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다 간호사실로 달려간다.
"죄송한데, 지금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오고 있대요. 진짜, 잠깐만. 할머니 좀 살펴 주실 수 있을까요?"
잦은 입원으로 할머니의 섬망증세를 익히 알고 있던 의료진들, 의사와 간호사들은 할머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을 몇 번이나 당부했었다. 링거바늘을 뽑는다거나, 낙상의 위험 등. 돌이키지 못할 사고가 발생할 것을 염려한 탓이다. 담당 간호사는 이야기를 듣고 빨리 다녀오라며 등을 떠밀어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조차 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응급실로 향한다.
응급실에 도착한 아버지의 혈압이 천천히 하강한다. 명확한 원인이 나오질 않는다. 커피나 담배 등의 외부적 요인, 혹은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에 택시 한 대를 잡아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 이후로도 한차례 더 아버지는 응급실로 내원했다. 놀람 때문일까, 혹은 계단을 뛰어내리며 지친 탓일까. 다리로부터 시작된 후들거림이 온몸으로 이어진다. 가쁜 숨이 가슴을 막아, 답답한 통증으로 느껴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흰 커튼으로 침대 주변의 공간을 분리한다. 골반 옆으로 이어진 스티커를 떼어내고, 할머니의 엉덩이 아래로 기저귀를 당겨 빼낸다. 물티슈와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 뒤, 할머니를 옆으로 눕힌 뒤, 허리께의 위치를 맞춰 기저귀를 바닥에 깔아 둔다. 다시 제대로 할머니를 눕히며 익숙한 손길로 기저귀를 다시 채운다.
처음에는 잘못 입히며 옷과 시트를 몇 번 더럽히기도 했었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오히려 할머니가 별다른 저항이 없기에, 조금 더 편해진 것도 있었다. 편해졌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탓이었을까. 전해질 부족으로 먹어야 하는 약의 종류가 늘어났다. 할머니를 깨워 억지로 한두 술을 먹이고, 종류가 늘어난 약을 조심스레 목으로 넘긴다. 그럼에도 쇠한 기력이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 하얀 영양제 팩이 하나씩, 하나씩 비워지며 흘러들어 가지만 할머니의 감긴 눈이 뜨이는 시간은 늘어나지 않는다.
아득한 선로(線路)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만 역(驛)처럼 내가 있다.
가까운 오름을 오른다. 병원에서의 시간만큼 체력이 떨어진 탓일까,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서도 가쁜 숨을 내뱉는다. 해가 지기 시작한 어둑한 시간, 어둠 사이로 하나씩 빛을 발하는 가로등의 불빛들의 수가 늘어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야경 앞에 몸을 멈춰 세운다. 멀리서 보이는 반짝이는 불빛들이 눈물겹다. 감정의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그 정경 앞에서 몸이 굳어버린다.
퇴원과 통원 치료가 결정되었다. 섬망 속에서 영양제에 의지하기보다, 작은 무리를 하더라도 식사를 통한 기력 회복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천천히 눈동자의 생기를 되찾는다. 천천히 무리가 가지 않는 식사를 하며, 병원을 오다니는 시간을 보낸다.
반짝이는 불빛들을 등지고 아래를 향한다. 나를 응시하는 듯한 불빛들을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작은 반짝거림들 앞에 서 있던 내가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재잘거리며, 웃음과 울음을 공유하던 내가 있었다. 일을 그만둔 지금, 나의 자리가 혼란스럽다. 손녀의 자리와 선생님이라는 자리가 공존할 수 없는 시간, 가까운 불빛들 아래로 걸음을 옮긴다. 있어야 할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