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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속의 사랑

부드러운 애정에 휩싸인 작은 반짝거림이 전해진다.

by 연하일휘 Mar 11. 2025

기계음 섞인 바람에 덧씌워진 자몽향이 천천히 퍼져간다. 손바닥의 반 정도 되는, 작은 석고 방향제에서 퍼지는 향이다. 선명하게 새겨진 사진에는 밝게 웃고 있는 조카가 있다. 방향제를 주문했다며 자랑하는 여동생을 졸라 받아낸 물건이다.


"너..... 너..... 너 딸?"


차에 탄 아버지가 조카 사진을 발견하더니 큰 웃음을 터트린다. 인지장애와 언어장애로 말이 어눌해지셨다만, 몇몇 단어들만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경지에 이른 요즘이다.


"내 아들도 아닌데, 왜 차에 걸어놨냐고?"


"응."


"왜애, 귀엽잖아."


어깨를 찰싹 때리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이걸 좀 보라며 계속 가리킨다. 어머니도 "귀여우니까 됐지 뭐."라는 반응을 보이니 아버지는 그저 혼자서만 몇 번 웃음을 터트린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내 자식도 아니고, 조카 사진을 차에 달고 다니는 이모라니. 조카에게 "이모바라기"라는 호칭을 붙일게 아니라, "조카바라기"라는 호칭을 내게 붙이는 일이 더 시급한 듯하다. 분명 나와 조카의 사이는 이토록 친밀하고 가까웠던 것은 아닌데. 아마 네가 먼저 다가왔기에, 이모가 네게 흠뻑 젖어들었나 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조카를 품에 안을 때면, 3분의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렸었다. 너무나도 작은 그 생명체를 품는다는 그 행위는, 혹여 잘못될까 불안함이 컸던 시간이었다. 그 감정이 아가에게 전해지며 울음을 터트렸던 것일 거라고, 주변 어른들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 덕분일까, 조카는 한동안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잦았다. 그 불안함이 조건반사처럼 새겨진 탓일지도 모른다. 여동생으로부터 "지금 아기 기분 좋아."라는 말이 들려올 때만 조카를 보러 갔다. 방긋 웃는 녀석이 목을 가누고, 뒤집고, 배밀이를 하는 시기부터 나는 조심스레 그 작은 숨을 품에 안아 들었다.


새로운 조건반사가 추가되었다. 기분이 좋을 때마다 이모를 만난 탓이었을까. 조카의 '이모 바라기'모드, 조금 더 직접적으로는 '이모집착남'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모 품에 안길 때면, 엄마나 아빠 품도 거부했다. 화장실도 보내주지 않는 조카에 안아 들고 화장실에 가기도 몇 번. 어깨와 팔, 허리로 이어지던 작은 통증들은 조카가 걸음을 시작하며 점차 줄어들었다.


여전히 이모가 집에 들어설 때면, 조카는 달려 나와 품에 안긴다. 함께 외출할 때면, 제 엄마보다도 이모 품에 있는 시간이 길어 어느덧 '애엄마'라는 호칭을 들은 횟수가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모가 '애엄마'나 '아줌마' 소리를 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 건, 네가 품에 있는 순간뿐이라는 것을 너는 알까. 이모 핸드폰에 네 이름으로 된 사진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을, 네 엄마와 아빠의 카톡 사진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보내달라며 닦달하는 이모의 모습을 너는 알까. 네 집착이 이모에게 전해졌나 봐. 이모바라기 조카와 조카집착 이모가 되어버린 요즘이야.




PixabayPixabay




두툼한 검지 손가락을 뻗어 조심스레 사진을 쓰다듬는다. 아버지가 차에 탈 때마다, 조카의 사진이 시선에 들어오면 하는 행동이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멍하니 누워 텔레비전 화면만을 응시하던 아버지의 눈빛이 달라진다. 부드러운 애정에 휩싸인 작은 반짝거림이 전해진다.


"손주 사진 있는 방향제 걸어 놓으니까, 아빠도 좋지?"


"응."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흐릿하던 눈동자에 작은 생기가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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