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좋아해서 같이 아프고 싶은 건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작은 꽃향기가 더해진다면 더 좋았을 텐데. 주변에 꽃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조금은 삭막한 창밖 풍경이 아쉽지만 물러난 추위는 반가워진다.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난로를 켜 공기를 데우던 것이 엊그제인데, 도톰한 외투가 덥게 느껴지는 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복도 끝에서부터 콜록대던 소리가 강의실 안으로 이어진다. 감기에 걸린 아이의 기침이 강의실의 고요함을 깨트린다. 귀에 걸린 마스크를 한번 확인하며, 조금 더 두꺼운 마스크로 바꿔야 하나, 짧은 고민을 하게 된다.
"저 감기 심하게 걸렸나 봐요."
일교차가 컸던 날씨, 그리고 추위와 따스함이 급격하게 자리를 바꾸다 보니 감기에 걸린 모양이다. 간간이 기침은 하지만, 얼굴 표정은 밝다. 열이 나지는 않는 듯하다.
"우리, 기침할 때는 고개 돌리고 해야지?"
"네에."
바로 앞에 앉은 녀석이 내 얼굴을 향해서 기침을 하니 영 찜찜하다. 다음 주면 여동생이 둘째와 함께 조리원을 퇴소할 텐데, 그전까지 첫째를 돌봐줘야 하는 나로서는 감기에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어제 숙제가 많이 어려웠나 보네? 평소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문제지를 보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다. 그래도 요 한동안 '열심히'와 '노력'의 태도를 장착하려 애를 썼으니, 슬슬 한 번쯤 흐트러질 때가 되기도 했다.
틀린 문제를 함께 풀이하는 시간, 녀석의 기침이 또 튀어나온다. 기침할 때는 고개 돌리고, 입 가리면서 해야지- 다시 한번 주의를 주니, 또랑또랑하게 대답은 또 잘한다. 비가 내렸던 문제들 위로 세모와 별모양이 수놓아진다. 내가 왜 틀렸지? 멋쩍은 듯 배시시 웃는다.
"오늘 숙제 잘 풀면 되지. 이젠 어려운 문제도 잘 풀고, 많이 늘었네."
이전에는 숙제가 너무 하기 싫었던지, 찍은 티가 역력했던 문제들이 많았었다. 혼도 내보고, 조곤조곤 숙제의 필요성도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결국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칭찬이다. 물론 칭찬의 효력보다 '하기 싫음', '장난치고 싶음'의 욕구가 더 커질 때는 다시 비가 내리긴 하지만 말이다.
잠잠하던 아이의 입에서 다시 기침이 튀어나온다. 아픈 건 죄가 아니다. 요 녀석도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기침이 얼마나 귀찮을까. 하지만 두 번의 주의에도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기침에 어찌 반응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혹시... 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지?"
"아닌데요! 왜요?"
"고개 돌리고 기침 해달래도....... 해 주지도 않고.....쌤 아프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짐짓 과장스럽게 우는 척을 하며 이야기하니, 아이가 큭큭대며 웃는다. 맞다! 입 가리고 기침해야지! 그리고 작은 억지 기침을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으며 내뱉는다. 거봐, 잘할 수 있으면서. 그러다 진짜 기침이 튀어나와 손바닥에 침이 흥건하다. 후다닥 화장실에 다녀온 녀석은 이제 물이 덜 차가워서 좋다며, 봄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한다.
"아. 아니면, 너 쌤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같이 아프고 싶어서 쌤 얼굴 보며 기침했던 거야?"
"아니에요!!!!!"
'좋다'는 말이 아닌 것인지, '같이 아프고 싶다'가 아닌 것인지 너무 격한 반응을 보여준다. 한차례 장난기 어린 대화를 주고받다가, 내일은 마스크 끼고 오자-라는 얘기에 입이 삐죽 나와버린다. 예전에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마스크가 답답하다며 제대로 끼지 않았던 아이다. 한동안은 "집에 마스크가 없어요."라는 말을 반복하다 내가 어머님과 통화를 하고 난 뒤에서야 손에 달랑거리며 들고 왔던 전적이 있다. 추위가 가시는 요즘, 마스크의 답답함이 싫어 저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것일 테다.
장난과 수업이 어우러진 시간이 끝이 난다. 아이가 강의실을 나선 뒤, 열려 있는 창문이 고마워진다. 아이들에게서 감기가 옮지 않으려 늘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만, 추운 날 밀폐된 공간 안에서는 마스크 너머로도 슬금슬금 바이러스가 침투하곤 한다. 창문이 열려 있을 한동안은, 그래도 감기 걱정은 덜어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