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대학의 불합격 통보를 받아들고
심란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제대로된 가을 날씨를 만끽해보지도 못한채 어제 오늘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아이는 학교에서 난방을 틀어주지 않아 춥다고 바지를 두개나 껴입고 등교했다.
질병결석이라도 해야하나...춥다고 웅크리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편안하게 공부하는것이 나을텐데...아니야, 괜히 집에서 빈둥거리다 오히려 수능 전 막판 컨디션이 깨질수도 있어....아~ 항상 나를 시험에 들게하는 이놈의 학교....지겹다....
10월 17일 금요일 10시에 아이가 지원한 대학의 첫번째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마침 9시 10분부터 시작되는 2교시에 수업이 없어서,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달래기위해 운동장으로 나가 트랙을 걸었다. 운동장을 돌다 들어오니 하필이면 교감선생님이 내자리로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다.
내년도 인사 이동에 관한 중요한 얘기였다. 교감선생님의 이야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네~건성으로 대꾸하다, 정확한 답변은 나중으로 미룬채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과는 불합격.
예상했지만 너무나 쓰라렸다.
그날 어떻게 나머지 수업을 진행하고 퇴근했는지 기억조차 명확치 않다.
며칠전 아이에게 '이 대학에 떨어진다 해도 멘탈 무너지거나 그러면 안돼. 어차피 상향지원한 학교잖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내가 엄마한테 하고픈 말이야, 엄마의 멘탈이나 붙잡아둬, 난 어차피 붙을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아'
그렇다. 문제는 나의 멘탈이었다.
저녁때쯤, 입시 관련 유명 네이버 카페 게시판에
'00지역 일반고 아이 학교에서 00대학에 붙었다고 하네요, 3년 내내 생기부 때문에 속상하게 하더니만, 그 학생은 도대체 어떻게 생기부를 챙긴건지..궁금하네요' 라는 글이 올라왔다.
갑자기...불현듯...00지역 일반고가 우리 아이 학교일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강하게 밀려드는 불행한 예감.
아이에게 조슴스럽게 물었다.
'응, 맞아, 우리 학교 우리 반이야'
심지어 반까지 같다니.
그렇다면 담임은 같은반에서 2명의 아이를 동시에 같은 대학에 학교장추천을 했단 말인가?
본인은 떨어진 학교에 당당하게 합격해서, 수능도 볼 필요가 없어진 아이가 우리 아이와 같은반이라니!
아이의 멘탈은 괜찮은 걸까?
아마도 괜찮지 않겠지. 말로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절대로 괜찮을리가 없겠지.
담임선생님께 학교장추천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조심스럽게 '이 전형이 인기가 없나봐요, 어떻게 우리아이가 선정될수 있었을까요..' 물었었다. 담임은 '지원하는 학생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지원하지 않았던것 같아요, 면접이 있는 일반전형으로 돌린 아이들이 몇명 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어야 했다. 이 전형으로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압도적으로 우수한 한 아이가 00대학의 학교장추천전형을 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한 아이가 우리 아이는 아니다.
다른 아이들은 영리하게 그 전형을 피했다. 지원한 대학은 무학과로 전국의 일반고/자사고에서 85명의 학생을 학교장추천전형으로 선발한다. 간혹 한 학교에서 2명의 학생이 선발되기도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특별한 케이스. 우수한 한명의 학생이 선발된다면, 성적이 그보다 낮은 같은 학교의 학생이 합격할 확률은 엄청나게 낮아지니까.
너무 속상했다.
아니겠지만, 왠지 학교에 이용당했다는, 합격한 아이의 들러리가 되었다는 생각에 울분마저 일었다.
'그 아이가 지원한다는 얘기를 자기는 몰랐어?'
남편이 염장을 질렀다.
'알잖아, 우리 아들. 남의 일에 관심없는거. 학교를 무슨 직장다니듯이 하루하루 해치우면서 다니는거'
'근데, 자기야..그 우수한 아이의 존재를 알았다 할지라도, 아마 자기는 지원해보고 싶었을거야..어떤 선택을 하든 합격하지 않는 이상 후회는 남을거야.'
오랜만에 남편이 맞는 얘기를 했다.
부족했다.
확률과통계가 3등급이었다.
그 아이는 수학과학 전과목이 다 1등급이었을까? 그 아이가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아이에게 이 대학과 이 전형에 지원하지 말자고 얘기했을까....
어렵다.
대학 입시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불행한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첫번째 대학에서 떨어졌다.
이성은 더욱더 단단해지고 차가워졌다.
깨달음이 왔다. 지원한 대학 중 어느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는.
우리한테 안정 하향은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