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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진로 Sep 06. 2020

지원동기에 연봉을 쓰면 안 되는 이유

신한은행 디지털/ICT직무 지원동기 예시를 보며

자기소개서 작성이 너무 어렵다.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항목은 기업마다 다 다르지, 글자 수는 심하면 3000자까지 쓰라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자기소개서를 공채시즌에 수도 없이 쓰는 취준생들을 보면 나 또한 안타깝다. 여러 가지 항목들이 있지만 자기소개서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항목은 뭐니뭐니해도 '지원동기'이다. 솔직히 그 기업 그렇게 가고 싶지 않은데 지원동기를 쓰라니 난감하다. 대다수의 인사담당자들이 '지원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니 막 쓸 수도 없다. 왜 우리 기업이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과연 뭐라고 쓰는 게 좋을까?


이러한 고민과 갈등 속에서 종종 학생들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정반대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곤 한다.

1. 심하게 솔직하게 쓴다(연봉, 워라밸 등)

2. 진심이 1도 느껴지지 않는 피상적인 말을 쓴다(기업의 전통, 성장동력 등)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둘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다 좋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더 안 좋은 경우를 선택하라면 1번이 아닐까 싶다. 1번의 경우를 선택한 학생들의 기업 지원동기를 읽고 있자면 정말 재미있다. 기억에 남는 글들을 가공해서 써보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솔직히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A라는 기업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 연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00기업은 워라밸과 직원들을 위한 복지가 잘 갖추어진 기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솔직해도 이렇게 솔직할 수가 없다. 솔직한 게 잘못인가? 그렇지 않다. 솔직한 게 왜 죄가 되겠는가. 그런데 기업 지원동기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 라이브하게 솔직한 것은 '매너가 아닐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주로 이렇게 지원동기를 쓴 학생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거짓말하기 싫었다. 너무 포장하는 것 같은 말은 싫다. 솔직한 게 차라리 낫지 않냐' 고 이야기한다. 지원동기를 지어내는 것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솔직히 해당기업이 처음부터 좋아서 지원한 취준생이 몇이나 되겠는가. 공채 시즌이고, 취업은 해야겠고, 채용공고를 찾다 보니 해당 기업이 떠있었을 것이다. 해당 기업의 연봉이나 근무처우 등을 살펴보았고, 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되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은 마치 아래의 비유와도 같은 상황이다. 한번 상상해 보라.

구독자는 소개팅을 나가게 되었다. 사실 엄청나게 소개팅을 하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재촉하지, 스스로도 애인을 만들고 싶기도 하지, 마침 시간도 되고 해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생각보다 괜찮다. 외적요소들도 나쁘지 않고, 직업이나 성격도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애프터 신청을 하게 되었고, 좋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대방이 묻는다.


자기는 소개팅 날 내가 왜 좋았어?


정말 난감하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여러 가지 상황적인 맥락이 잘 맞았고, 솔직히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진솔하게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자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지.
안 그래도 외로워서 애인을 만들고 싶었는데,
자기 직업이 연봉도 5000 이상인 데다 안정적이고,
게다가 외모도 나쁘지 않더라구.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었겠어?
솔직히 애프터 받아줄 거라고 생각 못하고 그냥 한번 찔러봤는데 넘어오더라?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말했을 때,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역시 우리 자기는 참 진솔한 사람이야. 마음에 들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매너가 없다고 생각할까. 때에 따라서 '이렇게 말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의 느낌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간혹 나올 수는 있겠지만(과연?), 대부분은 후자로 생각할 것이다.

위처럼 상황적 맥락까지 설명해 주면 그나마 다행일 듯싶다. 만약에 '자기가 다니는 기업이 연봉 5000 이상이잖아.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지' 라거나 '5시에 칼퇴한다고 했었잖아? 그 부분이 굉장히 끌렸어'라고 조건 위주로 나열한다면 어떨까? 매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 사람은 내가 좋은 게 아니라, 내 조건이 좋은 거였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진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조건'을 좋아하는 것이기에,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의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 사람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예측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지원동기에 '연봉, 워라밸 등' 조건 만을 언급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럼 앞으로 지원동기에 연봉 쓰면 안 되겠구나. 근데 그러면 어떻게 쓰라는 거야....ㅜ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까의 연인 상황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자기는 내가 왜 좋았어?'의 모범답변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래와 같은 답변들이 아닐까?

평소에 나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 날 얘기 나누면서 소통이 잘된다는 느낌을 받았어

자기 일에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자기 계발하는 모습이 멋져보이더라구

내가 평소에 희망했던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자기 생각이 일치했어

00000한 상황에서 당신이 0000이라고 말하며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참 배려심 깊은 사람이구나 생각했어

0000옷을 입고, 0000이라고 말하는데, 너무 아름답더라


개인의 선호도 차이는 있겠지만, 내 본연의 행동특성, 내적 요소, 가치관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좋았다고 얘기해 주는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원 동기도 유사하다. 기업 본연의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그리고 그 부분이 왜 좋았는지를 말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해당 기업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성장했는지, 인재상은 무엇인지, 내부 기업문화는 어떤지, 최근 이슈는 무엇인지, 어떤 사업이나 제품을 개발하고 추진하고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기업분석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왜 기업분석을 해야 하는지 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기업 분석한 내용을 지원동기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취준생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바로 2번이다. '진심이 1도 느껴지지 않는 피상적인 지원동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뉘앙스들이다.

00기업은 0000000분야에 있어 1위의 회사로써, 0000에 대한 기술력과 00000을 바탕으로 지난 00년간 0000한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최근에는 00000과의 MOU 체결로 0000을 하기도 했고, 00000, 00000을 00하는 등 00에 있어 00한 성과를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또한 000000에서 0000000을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블라블라


내가 알아본 기업정보를 줄줄줄 나열하는 형식이다. 또 정보만 나열하기는 민망했는지 간혹 '성장' 이라던지, '도전정신' 등 기업의 인재상을 어거지로 끼워 맞추며 해당 기업이 좋았다고 말한다. 열심히 기업정보를 분석한 것 자체는 칭찬해 주고 싶으나, 이런 지원동기를 쓴 사람은 결국 기업정보를 분석하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조사한 기업 관련 정보를 최대한 많이 작성하는 것이 지원동기가 아니다. 내가 분석한 기업정보 중에서 나와 가장 접점에서 매칭되는 유의미한 정보 값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지원동기이다. '신한은행 - 디지털/ICT'직무를 예로 들어보겠다.

[신한은행, 2020년 디지털/ICT직무 채용정보]

신한은행에 대해 열심히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한 당신은 신한은행의 홈페이지, 전자공시시스템(Dart), 최근 뉴스는 물론 심지어 유로로 기업분석보고서까지 사서 분석해보았다. 나름대로 SWOT 분석까지 해보며, 신한은행에서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기술관련 이슈들로 지원동기를 작성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정보 값들을 추출하였다.

[구글, 신한은행-뉴스 검색정보]


그리고 이 내용들을 담아 아래처럼 작성해보았다.

[사용자 중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루어 내다]

신한은행은 사용자를 먼저 생각하는 은행으로 금융권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혁신적으로 주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디지털 영업부와 AI통합센터 출범을 통해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하기도 하였고, 금융권 최초의 전자문서지갑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소상공인과의 Quick정산 서비스를 시행하여 소상공인의 사업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며 상생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한은행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DT사업을 함께 진행하고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오~~~꽤나 잘 썼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아직 지원동기 작성 초보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언뜻 보면 있어 보이겠지만, 결국 신한은행의 정보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사용자 중심'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혁신'과 같은 좋은 단어들을 갖다가 썼지만, 왜 그러한 '사용자 중심과 DT, 혁신'을 함께하고 싶은지 이유는 모르겠다. 한마디로 빚좋은 개살구이다. 자기소개서 클리닉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유형의 지원동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신한은행의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 중 최근 이슈를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저 정보 값들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향적 특성, 주요 프로젝트, 개발자로서의 적성, 관심 기술, 개발자로서의 향후 포부, 인생 가치관 등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경험치와 내적 속성들을 기반으로 가장 매칭되는 정보 값을 1~2개 고르는 것이다. 신한은행 - ICT/디지털 직무를 지원한 지원자가 아래와 같은 스펙과 경험치, 내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지원자 A의 프로파일]

컴공 전공, 학점 3.34/4.5

안드로이드 기반 앱 개발 프로젝트 2회, 웹 개발 프로젝트 경험 1회 보유

프론트보다는 백 선호

풀스텍 개발자가 되고 싶음. 서비스 기획도 재미있음

팀 내에서 주로 정보 서칭과 분석, 문서작성, 시간관리 등을 담당한다.

금융권 관심 생긴 지 얼마 안됨

다수의 사용자가 실생활에서 밀접하게 쓰이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싶음

서비스 아르바이트 경험 3회 있음


지원자 A의 프로파일을 보면, 웹과 앱 중심의 프로젝트 경험이 다수이다. 또한 풀스텍 개발자로서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해 보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기획에 필요한 자료 서칭이나 분석도 잘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단, 이 친구는 세부 직무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는가? 아무래도 디지털 채널 서비스 개발 및 운영 직무에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싶다.


그렇다면, 최근 이슈 중 어떤 값들을 챙겨가야 할까. 당연히 내가 입사하게 되면 개발하게 될 '쏠'의 서비스와 관련된 기업의 긍정적 이슈를 선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만약 A지원자가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보다 신한은행이 최근 한경에서 '2020 한경 생애 자산관리 대상'을 수상하게 된 내용을 보고 이거다 싶어 선택해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여기까지는 좋다. 그럼 선택한  '2020 한경 생애 자산관리 대상' 뉴스만 그대로 옮겨 적으면 지원동기가 완성되는가? 그렇지 않다. 피상적이지 않은, 진정성 있는 지원동기가 완성되려면 결국 나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해당 이슈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분석이 이루어져 있지 않으면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의 어떤 기술적 관심도가, 나의 어떤 경험치가, 나의 어떤 개발자적 꿈이, 나의 어떤 개발자로서의 적성이 신한은행과 적합한지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동기가 어렵다. 기업분석은 기본이고, 그것을 토대로 자기 분석과 매칭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위에 예시로 쓴 지원자 A의 프로파일도 너무 설렁설렁하게 한 자기 분석 예시이다. 저것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정리가 되어있어야 지원동기 작성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지원동기 작성 전, 기업분석과 자기 분석은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더 낙심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지원동기 작성 전에 되려 겁부터 먹는 건 아닌지. 하지만 위로 아닌 위로를 하자면, 간혹 합격자 자기소개서 중에 내가 말한 잘못된 지원동기 케이스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이다(정확하게 말하자면 1번은 거의 못 봤고 2번은 간혹 본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될놈될까지는 아니지만, 100%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는 합격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처음에 지원동기 포맷을 작성할 때는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서술 맥락을 잘 잡아놓기만 하면, 유사산업의 유사직무(예를 들면 농협은행의 IT직렬 등)에 지원할 때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 물론 산업이 바뀌고 직무가 바뀌면 다시 시작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게으른 그대여, 마감일을 하루 남기고 작성을 시작해놓고 왜 서류가 떨어졌냐며 낙심하지 않길 바란다. 과도하게 지원동기에 열심인 그대여, 어느 수준 이상이 되었다면 이젠 수정을 멈추고 일단 제출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에서 지원동기 좀 이제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

우리 취준생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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