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학 유학생활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가 끼었던 방학 2주간 찐하게 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저녁마다 아이가 자고 난 후에 자바 프로젝트 과제를 했다. 밤 9시부터 새벽 2-3시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을 들였다. 게임의 큰 틀을 개발하고 테스트를 해보니 여기저기 작은 문제들이 발견되어 땜빵 작업을 했다. 어느 정도 게임이 큰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소스 코드를 보니 자바의 큰 특성인 리유저저빌리티(Reusability), 추상화(Abstraction), 캡슐화(Encapsulation), 상속(Inheritance), 다형성(Polymorphism)등이 하나도 나타나 보이지 않아서 다시 소스들을 재배치하고 수정했다. 원래 잘 돌아가던 코드들이 재배치를 하자마자 에러가 빵빵 터졌다. 다시 소스를 원상 복귀하고 재배치하기를 이틀이 걸렸고 이 작업을 끝내고 나니 이제는 자바가 뭔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자마자 데이터베이스 교수님이 베트남으로 출장을 갔다. 앞으로 3주간 동안 코로나기간에 촬영해 둔 강의를 보면서 자율공부를 하라고 하며 날짜와 그날 끝낼 분량을 자세히 적어서 공지를 띄우셨다. 그대로 다 따라 하기에도 벅찬 스케줄이나 일단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룰 예정이다. 눈앞에 마주한 불부터 꺼야겠다.
휴강한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월화수 공강이 생겼고 목금만 학교에 가면 된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번 주부터는 다음 주 목요일에 발표할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한다. 과제 하나 끝나면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고 세 과목밖에 안 듣는데 정말 긴장의 연속이다. 영어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IT와 관련된 주제면 아무거나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대신 발표시간이 15분에서 1초라도 적으면 fail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적어도 안전빵으로 20분 준비를 권장한다고 하는데 영어로 20분 발표라니 머리가 지끈 아프다. 발표할 수 있는 날짜의 후보가 여러 개 있었으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취지하에 두 번째로 빠른 발표 시간을 택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 날 발표 자리가 순식간에 만석이 돼버렸다. 일주일 하고 3일 밖에 남지 않은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왜 이렇게 미루고만 싶은지... 도저히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방학 중에 준비 좀 했으면 좋으련만 미루기의 끝판왕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자바 프로그램을 한 개 더 개발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요일은 대충 목차를 짜봤다. 나는 IT와 어린이 코딩교육 관련해서 발표를 하고 싶다. 우선 키워드는 디지털 네이티브, 코딩교육, 전 세계 예시, 앞으로 우리의 미래 이런 식으로 쭉쭉 가지치기를 할 예정이다. 수요일은 큰 틀에서 앞에 인트로를 생각해 봤다. 내가 처음 20년 전 내비게이션을 목격하고 충격받았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글로 써놨을 땐 거창해 보이지만 내가 한 것은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끄적 내 생각을 적는 일밖에 없었다. 발표가 일주일 남은 시점인 목요일 오전에도 비는 시간에 친구와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수업 전에 학교로 돌아왔다. 10주 가까이 공강 때마다 도서관에 가고 열심히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방학때 2주 쉬었다고 그 패턴을 싹 잊어버리다니... 어떤 것들을 습관으로 만들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싶었다. 저녁에는 영어 수업에 갔다. 개학 후 첫 수업인데 결석한 사람이 꽤 많았다. 생긴다. 80% 이상의 출석이 의무인 수업인데 안 오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걸 보니 아마도 자체 드롭했나 보다. 오늘은 에이포 두장 분량의 본문에 빈칸을 채우고 발표하는 수업을 가졌다. 정답이 아닌 것을 넣어도 왜 그걸 넣었는지 같이 이야기해 보고 정답이 아니더라도 의미가 맞거나 이유가 타당하면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수업시간이 늦어서 너무 힘들어서 그렇지 선생님 수업은 아주 마음에 든다. 빈칸 채우기 할 때 이것도 말이 되지 않을까? 저것도 말이 되지 않을까? 고민했던 부분들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이 많이 풀렸다. 진짜 언어를 배우는 것 같다. 원어민 선생님의 장점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금요일 늦게 일어난 아이와 함께 학교로 가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실습실에 들어가니 일분의 여유도 없이 시간이 딱 맞았다. 하지만 오늘도 참 별거 없었다. 그리고 같이 과제하는 친구들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땡큐다! 실습시간부터 영어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시작해서 점심 먹고 도서관으로 와서 계속해서 준비를 했다. 아직 1차 대본 틀이 완성되기도 전에 머리가 아프다. 집에 가서 쉬고 싶어서 아이를 일찍 픽업할까 싶어서 어린이집 어플을 확인해 보니 5분 전에 잠들었다고 메시지가 떴다. 아기야 엄마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수 없이 프레젠테이션 PPT를 만들었다. 10장으로 만들고 어차피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장표는 그냥 보조수단이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충 사진으로 때우고 글씨를 많이 넣지는 않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으나 장표에는 힘을 많이 빼기로 결정했다. 장표도 만들고 대본도 좀 수정했더니 원래 픽업하기로 한 시간이 왔다. 아 아직도 할 것이 많지만 일단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다! 주말 같지 않은 주말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