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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Sep 24. 2020

인생에도 과목이 있다

어떤 과목에서는 A+을 받을 수 있고, 낙제를 할 수도 있는,

인생을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본다면, 그 속에는 몇 개의 과목들이 있다.

일(커리어)이라는 과목, 건강이라는 과목, 가족, 우정, 사랑.. 여러 개의 과목이 있고 우리는 저마다 각자가 선택한 과목들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고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은 시험을 본다.


'인생 시험'은 상대평가가 아니다. 무조건 절대평가다. 시험 결과는 과목에 따라 타인에게 공개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확한 시험 결과는 본인만 안다. 인생의 과목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 있는 과목과 자신 없는 과목이 있다.

나의 경우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일(커리어)'이다.

일에 있어서 만큼은 크게 어려움이 없다. 목표를 세우고, 세부 실천 계획을 세워서 열심히 해나가다 보면 성취가 뒤따른다. 크게 어려움도, 나를 쥐고 흔들만한 고민거리도 없다.


가장 자신이 없는 과목은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과목이 나에겐 가장 어렵다. 내가 여태껏 살면서 가장 많이 실패하고 좌절을 맛본 과목이다. 그중에서도 세부 과목인 '외로움'.

다른 일을 잘해나가며 살다가도, 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마주할 때면 다른 사람이 된다. 속절없이 무너져버린다. 한 번씩 외로움이 나를 찾아올 때면, 지금 당장에 해야 할 일이 있어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심할 때는 물도 못 마신다. (그런 경우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이런 나의 취약한 부분을 바꿔보고자 노력해보았지만, 수차례 실패한 연애와 몇 번이나 좌절했던 인간관계들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K.O 된 상태에서 조금 더 빠르게 일어나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뿐이었다.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떡볶이와 넷플릭스로 가득 채운 주말 48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이었다. 나는 타고나기를 이렇게 생겨먹은 채로 태어났고, 살아가면서 이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되었다. 나는 잔정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으며 한번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다 퍼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중간에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멈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비즈니스 관계에서 말고, 사적인 관계에서는 없다. 특히 연인관계에서는. 그래서 나와 성향이 맞지 않거나 관계에 임하는 자세가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할 때에는 없던 상처도 만들어서 받아버렸다. 그러고 나서 나를 미워했다. 내가 너무 물러터지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 당한 것이라고. 내가 한 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다고 말이다.


그렇게 밖에서 맞고 들어온 나를 기어이 내 안에서도 두들겨 팬 나였지만, 일터에만 나가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마음에서는 피가 철철 나지만 일은 일이니까 잘해야지 어쩌겠어? 하며, 갑자기 없는 힘이 솓고 책임감과 사명감에 둘러싸여서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 나아갔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당근을 던졌다.

'역시 나는 일 하나는 잘해.'

'그러니까 앞으로 사랑 같은 건 하지도 말고, 일만 하자. 외로움? 그게 밥 먹여주나?'


그렇게 살아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일은 계속 잘했다. 엄청 못하는 날은 없었고, 간간히 엄청 잘하는 날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어서 일터에 나가지 않는 날에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평일에는 그렇게 바라던 주말인데, 막상 쉬려니까 외로움과 공허함이 몰려왔다. 피곤함에 떠밀려서 잠을 하루 종일 자고 난 날에는 뭔가 대단히 잘못된 기분을 느꼈다.


단순히 일 중독의 문제는 아니었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집안일이나 운동, 독서 등 다른 것에 몰두하면 기분이 괜찮아졌다. 그렇게 살기를 7년. 얼마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나는 그냥 이 분야에 약한 것이구나.'


그렇다. 연인과의 사랑, 외로움, 혼자 보내는 시간. 나는 이런 것들에 약한 사람인 것이다. 뭐가 대단히 잘못되어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저 이런 나를 좀 더 이해하고, 너무 힘들지 않게 방법을 강구해서 시도해보고 힘을 키워나가면 되는 문제였다.


인생에는 몇 개의 과목들이 있다.

나의 경우엔, 1) 일, 2) 가족, 3) 건강, 4) 돈, 5) 친구관계, 6) 연인과의 사랑, 7) 자기 계발 이렇게 7가지 정도 있는 것 같다. 이 중에서 나의 주전공은 1) 일이며, 부전공은 7) 자기 계발이고, 현재까지 계속 낙제하고 있는 과목은 6) 연인과의 사랑인 것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성장을 하는 것이 삶을 살아내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이제 6번 과목을 디벨롭할 일만 남았다. 각자 저마다의 잘 되는 과목과, 낙제를 거듭하는 과목들이 있다. 하나가 잘 된다고 해서 우쭐할 필요도 없고, 또 어떤 과목에서 죽 쑤고 있다고 해서 나머지 잘 되는 과목들을 의미 없는 것으로 취급해서도 안된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잘 되는 것은 계속 잘 되게끔 힘쓰는 그런 겸손한 자세로 인생을 대해야지. 그렇게 살면 적어도 자기혐오에는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인생 과목은 무엇인가?

또 주전공은 무엇이며, 낙제를 거듭하고 있는 과목은 무엇인가?

기회가 된다면 나에게 꼭 들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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