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을 잘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시작, 준비, 새로운 도전
이런 단어들은 설렘과 함께 분안과 걱정을 함께 품고 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시작은 참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어느 정도는 맞는데,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 용기 내서 저질렀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이 들거나, 예상한 것과 달라서 당황하고, 감당이 안 되는 상황에 좌절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 아직 무언가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나의 가능성과 한계가 가늠이 안 되는 사람에게도 '시작'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걱정을 수반한다.
'문사이' 인스타 글 계정을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한 날, 나는 어떤 준비나 기획 없이 냅다 계정부터 만들었다. 어차피 아무도 안 볼 것 같아서, 말 그대로 글을 '그냥' 썼다. 그렇게 2달 동안 35편의 글을 쓰고 팔로워 1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 이 상황이 놀랍기만 하다. 생각해 보면, 만약 그때 '제대로'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브랜딩 전략을 세우고, 콘텐츠 계획을 짜고, 경쟁 계정들을 분석하고. 내 성격상 아마 아직도 기획서만 쓰고 있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본질인 '글'은 한 자도 못 쓴 채로.
지금도 글을 쓸 때마다 노트 상단에 '그냥 쓰자'라고 적는다. 이 다섯 글자가 나를 구한다. 왜냐하면 나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부터 날카로워야 하고, 논리도 탄탄해야 하고, 결론도 임팩트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래서 '그냥 쓰자'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부담이 없어진 채로 진짜 나의 글, 본질에 닿고자 하는 생각이 문장이 되어 적히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하면 된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
'그냥 한다'의 전제는, 시도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두려워할 게 별로 없다.
'망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내 결과물을 무시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들겠지만, 생각보다 타인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 그리 끔찍하지도 않다. 나의 경우에도, 문사이 계정에 글을 쓸 때, 늘 생각한다.
'아무도 안 보면 그냥 나 혼자 쓰는 일기장이 되는 거고, 누군가 봐준다면 너무 감사한 거고!'
내가 2달 동안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깨달은 건, '찍먹'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냥 쓴다. 그리고 반응이 좋으면 땡큐고, 아니면 다른 걸 써본다. 여러 시도를 '그냥 한다'. 가능성을 확인하고, 안 되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게 미덕이었다. 하나의 전문성을 오래도록 갈고닦아서 장인이 되는 것.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5년 전 핫했던 기술이 지금은 구식이 되고, 10년 전 유망했던 직업이 지금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우물만 파다가는 우물 자체가 말라버릴 수도 있다.
하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 이게 바로 '찍먹'의 진짜 위력이다. 나의 경험을 좀 더 말해보다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어서 상담심리대학원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대학원은 심리학사가 필요했고, 학부 때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인터넷 학점은행제로 심리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심리학을 '찍먹'해본 것이다. 막상 찍어 먹어보니, 생각보다 심리학 공부가 나랑 너무 안 맞는 걸 느꼈다. 상담받는 건 좋은데, 누군가를 상담해 주기 위해서 해야 하는 공부가 너무 나랑 맞지 않는 학문이었다. 기대와 달랐다고 실망하고 그치지 않고, '그럼 경영학 수업을 들어볼까' 해서 뜬금없이 '경영학 개론' 수업을 들어봤다. 또 다른 찍먹. 그 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걸 알았다. 너무 재밌고, 나랑 잘 맞는 학문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해서 카이스트 MBA에 합격했고,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게 재밌게 경영 공부를 하고 있다. 만약 심리학이 안 맞는다고 포기하고 다른 시도를 안 했다면? 아니면 처음부터 '나는 경영학을 전공할 거야'라고 정하고 무작정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의 확신과 만족도는 없었을 것이다.
찍먹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해보는 것'이다. 그냥 한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상상해 봐도 실제로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중요한 건 70점짜리 결과물이라도 빨리 내놓고 피드백을 받아서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100점짜리를 혼자 고민하다가 늦게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그대, 무엇이 두려운가? 오히려 무서운 건 '시작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몇 년 후에 '그때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좀 망하더라도 그냥 해보는 게 훨씬 낫다. 그러니, 우리 그냥 해보자. 그냥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별로라고 생각했던 나의 애매한 재능이 사실은 나를 먹여 살릴 제2의 직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운'이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 다른 글에서 쓴 적이 있다. '움직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이 '운'은, 그냥 해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람에게 럭키하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