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 캔버스, 싸인펜
행복했던 순간을 그려봅니다.
그날의 표정도 좋고, 몸짓도 좋습니다.
비 오는 날 웅덩이에 고인 물에 스텝을 밟는 나,
물장구치며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큰 장화에 튕기는 신나는 물방울이 그때의 나입니다.
나는 나이가 들었고
빗 속의 아이는
비가 그친 날처럼
장화를 신고
물장난을 친다.
재료 : 점토, 해바라기씨 등 여러 잡곡
미술치료 재료탐색하는 실습시간이었습니다.
조물조물 점토를 주무르며 촉감을 느낍니다.
흙과 돌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보고 싶은 얼굴을 만들어보라 하니
누구는 엄마 아빠를, 누구는 친구나 배우자를 만듭니다.
저는, 사랑받는 여자 아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 나는 늘 커트나 바가지 머리였다.
단정히 양 갈래로 땋은 뒷모습이 좋아 보였다.
손이 많이 가는 긴 머리는 사랑받는다는 표시.
예쁘게 머리를 묶은 여자 아이의 뒷모습에
자꾸 시선이 가곤 했다.
'숙제 다 했니?' 물어보는 엄마.. 를 쳐다보는 아이가
보고 싶었고, 그리웠고, 부러웠다.
보고 싶은 아이를 만들고 마음으로 안아준다.
재료 : 크로키북, 크레파스
거울을 보지 않고 느낌대로 내 얼굴을 그립니다.
쓱쓱쓱 대충 그리자~ 하고 시작하길 권합니다.
모습을 드러낸 얼굴이 의외로 마음에 드실 겁니다.
내 얼굴에도 편안한 웃음이 머무르면 좋겠습니다.
씨익 웃어본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웃고 싶다.
눈을 떠서 거울을 봤을 때
바로 이 얼굴이면 좋겠다.
재료 : 크로키북, 크레용
혼란스러울 때, 양쪽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을 때,
'나는 어디에 있니?' 가만히 질문해 봅니다.
이 날 저는 수면 아래에서 가만히 눈 감고 있었습니다.
손을 뻗어 붙잡고 올라가야겠는데 그럴 힘이 없습니다.
선반 위에 내 꿈이 있는데
아직도 키가 모자라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나무 위에 오르려고 몇 번을 힘써 보는데
매번 힘이 딸려 주르르 내려오는 내가 속상해
저절로 기도가 나와.. 나를 제발 도와주세요.
포기하지 않아
꿈을 잠시 접고 내 키가 클 때까지 기다리면
뜨내기 삶이 되지 않기만을 바래
살아내야 하는 하루하루에
온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래
날 수 있는 그날까지
하늘을 올려보지 않고
온몸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겠어
그렇게 해주겠어
- 2006. 7.24 월 목이 탄다
재료 : 마스크, 연필, 지우개, 수채화 물감
하얀 마스크와 물감과 팔레트를 펼쳤습니다.
긍정적인 나와 부정적인 나를 그려보랍니다.
내가 기분 좋을 때는 어땠지?
내가 기분 나쁠 때는 어땠지?
내 마음 편안할 때는 비 온 뒤에 맑은 하늘.
무지개가 예쁘게 펼쳐진 하늘 같아.
내 마음 불편할 때는 어두운 커튼이야.
날카롭고 퉁명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울고 싶은 내 모습을 감추고 싶어서야.
재료 : 크로키북, 크레용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무표정입니다.
약으로 눌러놓아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럴 땐 나에게 묻습니다. '기분이 어때?'
종이가 질문하면, 크레용이 대답합니다.
울어도 괜찮아
기대도 괜찮아
아무리 말해줘도
기대하고 바랄 기력이 없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약을 먹으면 내 몸 같지가 않아.
감정 밸브를 잠가놓은 것 같아.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나.
소리 없이 흐른다.
재료 : 스케치북, 크레파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곤 했습니다.
뭐가 왜 답답한지 물어봤지만 딱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으면 아닌 거네~'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느낌을 무시하지 않고
느낌에 좀 더 다가가는 방법은 질문과 비유입니다.
답답함을 느끼는 곳이 너의 안이야, 밖이야?
무엇이 연상되니? 어떤 곳인 것 같아?
어릴 때 TV에서 본 서커스의 한 장면,
바짝 마른 사람이 몸을 접어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간다.
진행하는 사람은 추임새를 넣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갇힌 상태로 들어가는 사람과 탄성을 지르는 사람.
그걸 보는 나는 너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답답할 땐, 어릴 때 본 그 작은 상자에 내가 갇힌다.
명칭은 선천적, 기질, 환경, 사주.. 다양하게 부른다.
이름을 뭐라 하든 서커스단의 작은 상자가 떠오르고
옴짝달싹 못하고 터질 것 같은 느낌이 현실감각처럼
온몸에 퍼진다. 나를 둘러싼 어두움, 싫어! 싫어!!
어떻게 하고 싶어?
문을 열고 나갈래.
열고 나가면 뭐가 있을까?
하늘색과 분홍색 동그라미들
그래, 얼마큼 나왔니?
손으로 짚어가며 얼굴까지는 나온 것 같아.
나와서 보니 열쇠도 자물쇠도 없는 상자.
막아 선 사람도 없어, 그냥 나오면 돼.
재료 : 크로키북, 크레용
기억납니다. 이 그림을 그리던 날.
넓고 둥근 호박 모양을 그려놓고 가만히 봅니다.
'웃는 얼굴을 그려볼까?' 가볍게 움직여봅니다.
하하하 만족스러운 웃상이 완성되었습니다.
둥근 얼굴에 웃는 눈을 그려놓고
다른 사람이다~ 생각하며 바라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아 보인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웃어줄 얼굴이다.
이 얼굴을 마주 보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다.
나도 이렇게 웃는 얼굴이고 싶다.
재료 : 전지, 크레파스
8명이 참여한 집단 미술치료 종결기였습니다.
큰 종이를 원하는 곳에 펼쳐놓고 그려보랍니다.
내면의 나.. 눈을 감아도 보고 응시하기도 하고,
전에는 등 돌린 내면아이가 바로 떠올랐는데 이 날은
빈 종이만 쳐다보며 작업 시간 중 3/4이 지났습니다.
질문은 많이 던졌는데 반응이 거의 없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앉아 있냐 물어보니 누워 있단다.
간단한 답변 하나를 붙잡고 이제 시작한다.
반듯하게 누웠고,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다.
내면이 반응해 주는 작은 단서를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선을 이어갔다. 색칠을 했다.
미동 없이 가만히 누워있는 성별을 알 수 없는 거인.
온통 어두운 색이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하니
한쪽 손 끝에 온기를 넣어 살아있음을 표시해 준다.
위를 향한 손 끝 하나로 충분히 감사하고 감사하다.
Q1.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어떤 점에서 좋은가요?
A1 "자화상은 거울보다 정직하고, 사진보다 생생하다."
자화상 그리기는 그리는 순간의 자기를 비추는 심리적 거울입니다. 먼저, 자아 분화와 통합을 돕습니다. 한 개인은 하나의 자아가 아닙니다. 자기 안에는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데, 자화상은 그 단면을 하나씩 끌어올려 조각난 자기를 의식 위로 드러내고 재통합하게 만듭니다.
둘째, 현재 자기를 구체화시킵니다. 자신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할 때, 자화상은 자신에 대한 느낌을 가시화하는 작업으로써 자기 감각을 회복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셋째,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제한적이지만, 표현 방법은 열려 있습니다. 선으로 할지, 색으로 할지, 상징으로 할지, 재료는 무엇으로 할지 등. 이 '의식적인 선택'이 자기 조절력이 향상될 수 있게 도와줍니다.
Q2. '자화상 그리기'는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나요?
A2 일반적으로는 '자기 이해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임상적으로 보면 '자기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분, 새로운 역할이나 인생의 전환점에 놓인 분'에게 추천합니다.
첫째, 감정이 억압되거나 무감각한 분들. 특히 우울, 경계성 성격, 가면 우울, 공황장애를 겪는 분들은 감정과 단절된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은 느껴지지 않지만 몸은 반응하고 있죠. 자화상은 정서-신체-인지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둘째, 전환기나 상실을 겪는 분들. 자화상은 '기존의 나'가 무너지는 시점에서 새로운 자아를 설계할 수 있는 장(場)이 됩니다. 회복 중이거나, 이별, 퇴사, 갱년기인 분들에게 '지금의 나'를 확인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셋째. 자아 경계가 흐릿하신 분들. 심리적으로 자기 경계가 약한 분들(예 : 지나치게 타인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 과잉적응형, 어린 시절 방임/학대 경험자 등)에게 자화상은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Q3. 이 기법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요?
A3 자화상은 단순한 미술 활동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 나는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비언어적 자기 탐색 도구입니다.
첫째. 정서적 관점 : 숨은 감정의 외재화 => 통찰. 감정이 눈에 보이게 되면, 그것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됩니다. 울고 있는 자화상, 갇힌 자화상 등은 감정의 얼굴화이며, 억눌린 정서를 분출할 수 있게 합니다. 특히 그린 후 말로 해석하는 단계에서 통찰이 일어나고, 스스로 경험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둘째. 인지적 관점 : 자기 개념의 재구성. 자화상은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가를 드러냅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개념을 해체하고, 새롭게 조율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합니다. 자기를 다시 설계하는 힘. '다양한 나'를 만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가진 힘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셋째. 상징적 관점 : 무의식과의 대화. 꿈과 자화상은 구조적으로 비슷합니다. 모두 상징 언어를 통해 무의식을 반영하죠. 예를 들어, 선반 위에 손을 뻗는 자화상은 '이루지 못한 이상', 혹은 '노력해도 닿지 않는 사랑'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이를 해석하면서 현재 위치와 욕구의 간극을 볼 수 있고,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 방법을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