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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Jun 11. 2020

값싼 동정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몰라한다.

도서 사무실에 앉아 손수 커피를 탔다. 내 거 하나와 수용자 거 하나. 얼음도 몇 개 동동 띄웠다. 요즘은 영치금으로 믹스커피를 살 수 있기에 대단할 것도 없는 커피 한 잔이지만, 답답한 수용자 거실을 벗어나 시원한 사무실에서 마시는 냉커피 한잔이 싫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전 업무가 끝나면 종종 이렇게 수용자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업무에 바빠도 수용자와 대화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피와 가벼운 다과는 이를 부드럽게 이어 줄 매개체였다.


"어때? 도서 일은 할 만해?"

힘든 점은 없나, 다른 수용자와의 관계는 어떠나, 도서실 분위기는 어떤 거 같나 등을 물으며 혹시나 업무의 편중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사소한 오해가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했다. 예전에 나이는 어리지만 일한 짬이 높아서 반장이 된 수용자가 있었는데 직원 몰래 신입 수용자들에게 자기 일도 몰아서 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신입 수용자는 과도한 업무량과 불합리한 처우로 불만을 품게 되고 결국에 욕설을 시작으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경우가 있었다. 남자들이 모여있는 사회에는 의례 것 짬과 나이가 은영중 반영되는데 담장 안이라고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나는 여자 수용동 분위기는 잘 모른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말을 트면 줄줄이 나온다. 지금 같이 일하는 타 수용자가 실수를 너무 자주 해서 일을 두 번 하게 된다 팀원 좀 바꿔 달라. 작업 때 먼지가 너무 날린다 마스크 좀 구할 수 없나. 작업 환경에서부터 졸지에는 내가 들어줄 수 없는 희한한 부탁들도 한다. 가령 다른 교도소로 이감 가고 싶다든지..... 그런데 내가 들어줄 수 없다는 건 수용자들도 잘 안다. 말을 하다 보니 희망사항까지 흘러든 것일까. 알면서도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앞으로 도서 사무실에서 일할 수 도 있는 수용자들과의 대화도 중요했다. 상담 자격증이 있거나 전문 면접관을 해본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일 할 사람 뽑아놓고 같이 일하다 보면 기대 이하의 일처리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경험이 쌓여 애초에 같이 일 할 수 없는 사람 정도는 배제할 수 있었다. 여럿이서 부대끼며 일을 해야 했기에 독특한 사람은 조금 곤란했다. 수용동을 돌면서 "신문이요"를 외쳐야 하는데 너무 소심한 나머지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 다던지, 신문이나 도서를 나르려면 적당한 근력이 필요한데 너무 연로하다던지, 체격이나 체력 말하는 투도 다 괜찮은데 죄명이 상습절도라면 같이 일하기 매우 꺼려질 것이다.


같이 일하는 한 수용자가 곧 출소를 앞두고 있었다. 출소할 수용자를 대신해 앞으로 일할 사람을 구해야 했다. 여느 때처럼 미리 봐 둔 수용자와 상담을 하려 했다. 보안 청소로 출역 중인 A는 말수는 적었지만 할 일은 군소리 없이 했고, 마무리도 철저했기에 도서실에 필요한 수용자라 생각했다. 다른 수용자를 통해 A를 불렀다. 그런데 오라는 A는 안 오고 한 통의 쪽지가 왔다. 정갈하게 접힌 쪽지에는 또박또박 정자로 짧은 글이 적혀있었다.

'제가 비록 좋은 일을 하고 여기 들어 온건 아니지만 제 처지가 이렇다고 해서 부장님께 냉커피를 구걸하며, 시원한 장소에 더 머무르고 싶어 제 이야기를 드러내 놓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이런 건방진!'

짧은 쪽지를 읽고 분노의 감정이 치솟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나 자신의 교만을 알아차리기에는 아직 여물지 않은 교도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담장 안에서 나는 어느덧 교만으로 물들고 있었다. 온몸에 문신 투성인 사람들이 나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고, 저명인사들도 여기서는 OO 씨로 옆집 아저씨 부르듯 부른다. 내가 뭐라도 되는냥 착각하기 시작했었다. 상담도 그들을 위한 것 마냥 내가 인심이나 쓰 듯이 해주는 것으로 변질됐다. 커피 한잔에 은근히 나를 치켜세워주는 말들이 듣기 싫지 않았다. 상담을 받고자 요청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도서실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수용자가 하나둘 생겨났다. 어느덧 익숙해졌던 것이다. 커피 한 잔의 값싼 동정으로 사람을 알아가려 하는 것이.


쪽지를 건넨 그는 그 해 겨울 보안 청소에서 일하다 출소했다. 도서 사무실에서 일해볼 것을 몇 번 더 권유했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청소하는 게 더 간편하고 좋아요. 제 능력으로 도서 일 같은 고차원적인 일을 하면 부장님께 민폐만 끼칠 거 같아 겁나네요"라며 완곡히 거절했다.

쪽지 사건 이후 나도 많은 것이 변했다.

변한 줄 알았다.

인생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고, 그중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것은 오랫동안 곱씹는다. 그리고 시간은 결국 그것들을 희미하게 만든다. 어느덧 그 쪽지도, 쪽지를 건넨 그도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있다. 여전히 담장 밖에서는 말단 공무원이자 연주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담장 안에서는 말단 공무원이자 교만을 피워대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담장 안에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들, 그것들이 실제로 내게 일어나는 동안 내가 변화된다거나 혹은 더 나은 삶을 목표로 살아가는 특별한 동기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은 그 값싼 동정을 부렸을 때의 부끄러운 기억에 몸 둘 바를 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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