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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Jul 02. 2021

<고통과 마주하며 배우는 것>

나는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도움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협업하는 것을 싫어했다.

개인이 열심히 해서 성과를 이루어내는 일들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룹과제 같은 것들을 할 때는 차라리 내가 더 많이 하더라도 협력하는 부분을 줄이곤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부모님 손 벌리기 싫어서 죽자고 공부해 몇 번은 장학금을 타고 몇 번은 대출을 받았다. 생활비는 한국 장학재단에서 주는 생활비 대출을 이용해서 살아냈다. 하루에 한 끼를 500원짜리 주먹밥으로 때울지언정, 누구에게 돈 빌려달란 말은 죽어도 못하는 성미였다.

그렇기에 남들이 나에게 도움을 청해도 나는 모른척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도움에 예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됐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배경이 컸던 것 같다.

엄마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 윗집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반찬을 종종 가져다주셨다. 어떤 날은 냄비 통째로 국을 끓여 가져다주시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수고로움과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도, 사춘기를 지나던 아이의 마음엔 그게 상처가 되었더랬다.

동정받는 것 같고, 나의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온 동네가 우리 집은 엄마 없는 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고.


그때부터 내가 남들보다 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숨기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할 법한 일에도 손을 내밀지 않았고, 웬만한 건 혼자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혼자서 해결하지 않고 남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난날 나의 편협함을 반성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데, 반사회적인 개인주의를 고집해봐야 아무런 득이 없다는 걸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또 인간은 누구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자로 태어나 약자로 생을 마감한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야 깨달았다.


25살 때 1년 만에 몸의 근력을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상태가 심각했었다.

스스로 바지 지퍼를 올릴 수도 없었고, 생수병 뚜껑을 따지도 못했다. 젓가락도 사용하지 못해 포크를 늘 들고 다니기도 했다.

병명을 찾아 1년 여간 여러 대학병원들을 전전한 끝에 ‘만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신경병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진단받았다.

평생을 이렇게 살 수도 있다고, 완치 사례가 거의 없다는 말과 함께.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면 판매원에게 뚜껑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출근하기 위해 전투복을 입을 때 팔 걷어붙이는 것을 남편에게 부탁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당직근무를 바꿔달라고 여기저기 동료들에게 부탁을 했다.


말 그대로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어느 한순간도 살아낼 수 없는 장애인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숙여가며 굽혀가며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을 살면서,

인간은 누구나 도움을 받는 순간이 올 수 있고, 약자로 태어나 약자로 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아픈 시간들을 보내면서,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도움에 인색하지 말아야지,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배려받아야 할 아이의 울음소리가 거부당하는 순간을 견디면서,

한 개인에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엄마로 거듭나는 인고의 시간을 겪으면서,

누구나 아이로 태어나는 순간이 있음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다른 엄마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며 그 시간을 겪는 미혼모들과

그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 경단녀들에게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병과 싸우고 아이를 키우던 지난 5년은 나에게 광야와 같았고 빛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이기적이고 배려를 몰랐던 개인이 더불어 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고통과 마주하며 사람이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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