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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Jun 27. 2022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내가 처음 아이 가진 걸 직감한 건, 2015년 북한 지뢰 도발 사건 때였다.


당시 전군은 비상대기 중이었다.

바깥에 있던 민간인들이야 먼 나라 이야기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상당히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전방 부대들이 포문을 열고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감에 따라 우리 역시 지원하기 위해 창고를 개방하고 전투물자들을 최전방으로 실어 날랐다.


모든 간부들이 집에서 간단한 짐만 챙겨 와 부대에서 숙식 해결하기를 일주일째,

내 옆자리에서 자고 일어난 선임이 꿈 이야기를 했다.


누가 들어도 복 꿈이었는데, 나에게 얘기를 하다가


- 너 혹시 임신…??


라며 장난 섞인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그 말을 듣고 생리 예정일이 지났음을 깨달았고, 전투준비태세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나라와 북한의 화해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고 집에 가던 날, 임신테스트기를 가지고 귀가를 했다.


결과는 두줄


세상에, 임신이 이렇게 쉽게 될 수 있는 건가.

‘임신은 쉽게 되지 않는다, 피임하다 시기 놓친다’ 등등 주변 선배들의 조언에 피임을 하지 않은 결과, 결혼 한 달 만에 엄마가 되어버렸다.


근처 산부인과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곧장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25살, 24살의 철없는 청년들이었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지 못 한 채, 그저 신기하고 기쁘기만 했다.

주위에 아이를 낳은 지인을 본 적이 없었기도 했고,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 아이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았기에 걱정도 없었다.



졸리면 눕혀주고, 배고프다 하면 우유 주고, 냄새나면 기저귀 갈아주고. 뭐 그럼 되는 거 아냐?



친구가 내 임신 소식을 듣고 괜찮겠냐는 말에 했던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세상 무식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당연히 출산해도 하던 일 계속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도 크게 바뀔 것 없이 살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저 막연한 신비감에 가려진 무방비 상태로 아이를 맞이하게 됐는데 시작부터 아주 처참했다.


아이가 41주 차까지 나올 생각이 없어서 유도제를 맞았고, 진통은 20시간을 넘겼다.

앓고 있는 말초신경계통의 질병 때문에 마취과에서는 무통 마취를 거부했고 통증을 있는 그대로 다 느꼈다.

아이 머리가 골반에 살짝 끼인 상태로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결국 수면마취로 수술하여 아이를 꺼내기까지.


난리 통도 그런 난리통이 없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산소마스크를 낀 상태로 빨리 배 째서 꺼내라고 윽박질렀다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반 기절 상태였던 걸까.




그렇게 낳은 아이는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행위 중 무엇하나 스스로 할 줄을 몰랐다.

먹는 것도 태어나서부터 몇 년을 연습시키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고

자는 것도 스스로 눈을 감지 못해 괴로워 밤마다, 새벽마다 다시 깨서 울어재끼는 걸 같이 울며 감내해야 했다.

스스로 싸지 못해 다리 운동과 배 마사지를 해주어야 할 때도 많았고

이 세상 수많은 바이러스들에 대응할 항체가 생길 때까지 수시로 아파 한 달에 한두 번씩은 꼭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으며, 운나쁘면 입원까지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아이가 자라 한 명의 인간 역할을 스스로 하는 것, 자기 몸을 자기 스스로 챙기고 컨트롤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의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것을 참 일찍 깨닫게 됐다.

그래야만 부모가 되고, 아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다른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아이를 보면 물론 사랑스럽고 행복한 감정이 들 때도 많지만

세어보자면 두렵고 부담스럽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오히려 대다수일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감정이 대다수의 그 기억들을 망각하게 만들어버리니, 다들 둘째도 셋째도 낳을 수 있는 거겠지.




열감기로 끙끙대며 고생했던 지난주,

첫째 아이는 내가 밤마다 하던 일을 대신 해주기를 자청했다.

이부자리를 다듬고, 둘째 손을 잡고 화장실에 다녀왔으며, 심지어 동생과 나에게 책도 읽어 주었다.


괜찮다고, 엄마가 해줄게- 하는 말에 아이는

“엄마 아프잖아. 아프지 마.”라는 말로 나를 따뜻하게 덮었다.


육아는 인생의 확장판 같은 것이었다.

이때껏 겪지 못한 종류의 감정을 대거 확장시키고, 그것을 통해 한 단계 레벨업 하는 보드게임 확장판 같은.

나의 밑바닥을 보게 돼 괴로웠던 나날도 많았지만, 서로를 아무런 기대도 조건도 계산도 없이 온전히 100% 사랑으로 가득 차 바라보는 날도 많았다.

단언컨대, 부모가 되지 않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지금 너희가 온전히 살아 숨 쉬며 내 옆에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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