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수봉 Sep 16. 2022

식사수발일기10. 엄마 나는 부자야!

아이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우리 집의 아침은 더욱 단순해졌다.


무쇠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고구마를 찐다. 가을이 되자 나오기 시작한 한살림의 밤고구마는 목구멍이 막힐 듯 막히지 않을 듯 퍽퍽하고 달큰하다. 고구마를 찌며 그 사이에 빨갛게 익어 오른 사과를 깎는다. 추석 때 아버님이 주신 사과였다. 잘 닦은 사과를 사등분해서 씨와 껍질을 제거했다. 사등분한 사과를 다시 반을 잘라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려는데 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엄마!!! 자르지 마! 나 오늘은 크게 먹을래!!”


우리가 사과 농장을 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사과를 참 좋아한다. 일어나서 하나 먹고 , 밥 먹고 하나 먹고 , 출출할 때 간식으로 하나 먹고 점심 먹고 입심심하면 하나 더 먹고. 애플망고나 샤인 머스켓 같은 것보다 사과를 더 좋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과일값으로 지갑이 너덜거렸을지도 모른다.


고구마가 푹 익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뚜껑 닫고 딱 20분.

사과를 까고 아이들과 이렇게 조잘거리고 잡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타이머가 울린다. 먹을 것들을 아이들 그릇에 담아주고 내가 마실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등 뒤로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우와! 엄마! 나 부자야!!!!”


이게 무슨소리인가 싶어 돌아봤다.


엄마 오늘  사과 진짜 !
 사과가 2개나 있어!”


아이의 그릇에는 사과 2조각과 고구마  조각이 있었다.



그저 평소보다 사과의 크기가  커졌을 뿐인데 아이는 주식이 상한가를 친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내 그릇을 봤다.

차고 넘치는 고구마와 가득 들어있던 커피.



삶은 이 정도면 된 게 아닐까.


타인이 보기엔

전세 , 외벌이 , 작은 차, 돌려가며 신는 신발 , 늘 비슷한 옷 , 아이들과 같이 바르는 로션 하나 , 명품과는 거리가 먼 가방들, 이미 한참 전에 나온 구버전의 아이패드와 아이폰.


그럴지라도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이불과 베개가 있고 , 아이들과 먹을 수 있는 쌀과 사과가 넘쳐나며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기동성을 높여주는 전기자전거가 있고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는 무쇠냄비가 있다. 취미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는 카메라가 3대나 있고 , 외출해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 발길 수 있는 아이패드와 무선 키보드가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릴 수 있는 노이스 캔슬링이 되는 무선 헤드셋이 있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 신발을 대부분 정리했지만 아무 곳이나 신어도 잘 어울리는 단화 한 켤레와 러닝화 한 켤레 그리고 편히 신을 수 있는 슬리퍼 한 켤레가 있다. 연식이 오래됐지만 덕분에 유지비라곤 가스비만 나오고 우리 가족에 맞춤 사이즈인 아반떼가 한대 있다. 커피머신은 없더라도 매일 맛있는 커피를 내려먹을 수 있는 모카포트가 있다. 더불어 다정한 신랑과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다.




그래 ! 난 부자네.

부자였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 같아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다짐을 해본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오늘 , 나의 삶에 작은 천국이 임할 수 있기를.



이전 10화 식사수발일기9. 아이들이 남긴 음식은 먹지 않을 테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