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우리 집의 아침은 더욱 단순해졌다.
무쇠냄비에 물을 자작하게 넣고 고구마를 찐다. 가을이 되자 나오기 시작한 한살림의 밤고구마는 목구멍이 막힐 듯 막히지 않을 듯 퍽퍽하고 달큰하다. 고구마를 찌며 그 사이에 빨갛게 익어 오른 사과를 깎는다. 추석 때 아버님이 주신 사과였다. 잘 닦은 사과를 사등분해서 씨와 껍질을 제거했다. 사등분한 사과를 다시 반을 잘라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려는데 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엄마엄마!!! 자르지 마! 나 오늘은 크게 먹을래!!”
우리가 사과 농장을 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사과를 참 좋아한다. 일어나서 하나 먹고 , 밥 먹고 하나 먹고 , 출출할 때 간식으로 하나 먹고 점심 먹고 입심심하면 하나 더 먹고. 애플망고나 샤인 머스켓 같은 것보다 사과를 더 좋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과일값으로 지갑이 너덜거렸을지도 모른다.
고구마가 푹 익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뚜껑 닫고 딱 20분.
사과를 까고 아이들과 이렇게 조잘거리고 잡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타이머가 울린다. 먹을 것들을 아이들 그릇에 담아주고 내가 마실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등 뒤로 아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우와! 엄마! 나 부자야!!!!”
이게 무슨소리인가 싶어 돌아봤다.
“엄마 오늘 내 사과 진짜 커!
큰 사과가 2개나 있어!”
아이의 그릇에는 사과 2조각과 고구마 한 조각이 있었다.
그저 평소보다 사과의 크기가 커졌을 뿐인데 아이는 주식이 상한가를 친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내 그릇을 봤다.
차고 넘치는 고구마와 가득 들어있던 커피.
삶은 이 정도면 된 게 아닐까.
타인이 보기엔
전세 , 외벌이 , 작은 차, 돌려가며 신는 신발 , 늘 비슷한 옷 , 아이들과 같이 바르는 로션 하나 , 명품과는 거리가 먼 가방들, 이미 한참 전에 나온 구버전의 아이패드와 아이폰.
그럴지라도
포근하게 잠들 수 있는 이불과 베개가 있고 , 아이들과 먹을 수 있는 쌀과 사과가 넘쳐나며 쉴 수 있는 집이 있다. 기동성을 높여주는 전기자전거가 있고 고구마를 맛있게 구워 먹을 수 있는 무쇠냄비가 있다. 취미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는 카메라가 3대나 있고 , 외출해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 발길 수 있는 아이패드와 무선 키보드가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릴 수 있는 노이스 캔슬링이 되는 무선 헤드셋이 있고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 신발을 대부분 정리했지만 아무 곳이나 신어도 잘 어울리는 단화 한 켤레와 러닝화 한 켤레 그리고 편히 신을 수 있는 슬리퍼 한 켤레가 있다. 연식이 오래됐지만 덕분에 유지비라곤 가스비만 나오고 우리 가족에 맞춤 사이즈인 아반떼가 한대 있다. 커피머신은 없더라도 매일 맛있는 커피를 내려먹을 수 있는 모카포트가 있다. 더불어 다정한 신랑과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다.
그래 ! 난 부자네.
부자였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 같아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다짐을 해본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오늘 , 나의 삶에 작은 천국이 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