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아빠가 명예훼손으로 나를 고소한다고 협박할 수도 있지 않나?’입니다.
법대출신의 아빠가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나는 걸 가만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는 늘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자식인 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제가 못나고 공부에도 별 관심이 없으며 환쟁이들처럼 그림이나 그리고, 허구한 날 자신의 배우자에게 맞기만 하는 제가 챙피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동학대의 공소시효를 계산한 후, 저의 생물학적 정자기증자와 난자기증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거라는 정보를 확인한 후 글쓰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불리한 일이라도 생길 시 저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엄마와는 서로 수도 없이 싸웠기 때문에, 저는 엄마라는 적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을 잡고 있습니다. 이제 엄마의 숨소리만 들어도 언제 공격이 시작될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빠라는 적은 늘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제게 뭔가를 말하면
‘저 사람이 무슨 뜻으로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아빠가 “J야,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생각합니다. ‘저게 무슨 뜻이지? 나보고 된장찌개를 끓이라는 말인가? 된장찌개를 저녁으로 먹을 거니 같이 나와서 밥을 먹자는 건가? 아빠가 끓일 테니 먹으려면 나와서 먹으라는 건가? 아니면 그냥 혼잣말을 크게 한 건가? 엄마한테 한 말인가? 분명 내 이름을 앞에 부르긴 한 것 같은데.’
저는 “J야,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다.”라는 그 간단한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얼어붙어버립니다.
제가 아주 갓난쟁이였을 적 사진엔 아빠가 저를 안고 있는 사진이 몇 장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여행을 가서 아빠랑 낚시도 하고, 멀쩡했던 날엔 가족끼리 외식도 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저에게 늘 안된다고 말한 엄마와는 달리 동물을 사주기도 하고, 퇴근이나 출장길에 아빠가 사탕이나 선물 같은 걸 가져다준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가족놀이” 였을 뿐입니다.
저는 그 가족놀이가 가족이구나 하면서 자랍니다. 저는 제 가족이 주변에서 보이는 다른 가족들과는 좀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 가족이 다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고 넘깁니다.
딸은 아빠 닮은 사람이랑 결혼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갑니다. ‘절대 아빠를 닮지 않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편이 아닌데?’ 싶습니다. 그러나 ‘딸은 엄마의 적이고 엄마와 아빠는 한 팀이기 때문에, 딸은 아빠 닮은 팀원을 골라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전엔 제가 친딸이 아닐 거라고 확신하며 자랐습니다.
‘어쩌면 병원에서 애가 바뀐 걸 지도 몰라,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기들 자식이 아닌 걸 알아서 저렇게 날 미워하고 갖다 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걸 거야.’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빠는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고 굳이 친자검사를 하거나 친부모가 있으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모든 어른들은 다 똑같고, 설령 진짜 친부모가 따로 있다한들 그들이라고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가족인척하고, 가족이라고 말하면서 저에게 폭언을 쏟아붓고 두들겨 패며 내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빠 손을 잡고 가는 딸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나는 아빠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 붙잡아서 “속으면 안 돼!!”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결혼식장에 아빠와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게 꿈이라는 아이들을 보면 “미친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대받는 환경 속 유일하게 일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다른 어른은 정자기증자였지만 그는 그저 난자기증자를 감쌀 뿐이었습니다. 수정란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