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족들과 같이 살면서도 칫솔을 제 방안에 따로 두고 쓰며 생활합니다.
냉장고 칸도 따로, 수건도 따로, 밥도 따로 먹고, 모든 것을 다 따로 사용합니다.
그들과 저는 다른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그들은 가족의 테두리 안에 저를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들과 팔이 닿거나 물 마시는 컵을 같이 사용하는 것도 꺼림칙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인 것처럼 보이게 보내면서 살아갑니다.
적당히 엄마 아빠가 가족놀이를 즐기게끔 분위기를 맞춰주면 됩니다.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게 싫습니다.
밖의 사람들이 저에게 신경 쓰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 걸어가려면 꽤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그들과 팔이 닿는 것도 싫습니다.
혼자 끙끙대며 지나가는 겁니다. 온몸에 잔뜩 긴장을 품고.
잘 모르는 사람과 서로 스치듯 인사를 나누고 그 사람이 웃으면
‘저 사람이 왜 웃지?’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휙 하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 사람은 그저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으며 가는 인사성 좋은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공격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알면서도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뒤를 흘깃거립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견딜 수 없습니다.
항상 새벽이나 밤에 엄마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시작되는 그 소음이 떠오릅니다.
코로나 19 시대 이후로 감사한 것은
“문 앞에 놓고 그냥 가주세요”가 관행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가족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생활소음이 제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어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크게 틉니다.
쾅쾅쾅!!!
누가 문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화들짝 놀라 이어폰을 빼고 문을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제 환청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제 이어폰 음악 속에는 쾅쾅쾅!! 거리는 문소리가 어디에서나 들립니다.
물론 제 환청입니다.
지금은 이어폰은 빼지 않고 슬쩍 주변을 둘러보는 걸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적과의 동침을 하며 가족놀이를 하는 저는 집에서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그들은 '지난날은 그저 지난날이지.' 웃으며 넘어갑니다.
제가 학대받으며 자란 것, 아빠가 방치한 것 조목조목 따지며 물으면
추억 회상하듯
“그래 그땐 그랬지~” 합니다.
저는 속에서 천불이 일고 있는데 자기네들은 예능프로를 보며 서로 깔깔거립니다.
얘기를 더 해볼까도 싶었지만 엄마의 표정을 보아하니 더 얘기했다간
“그래서 어쩌라고? 능력도 안 돼서 얹혀사는 주제에 주제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야. 그럴 거면 나가! 나가 살 수 있으면 나가라고! 니년이 나가 살 주제라도 되는 줄 알아? 여긴 우리 집이야 이 년 집이 아니고! 어디서 그림 팔아서 먹고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생활비라고 눈곱만큼 보태면서, 야 그딴 소리 할 거면 나가!”라는 말이 또 돌아올 게 뻔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최선을 다해 자신이 힘닿는 데까지 며칠이고 폭언을 퍼부을 것입니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에 저는 조용히 입 닫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