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슬프다

by JK

전시를 시작하게 됐을 때, 친구들과 지인들이 그림을 보러 많이 와주었습니다.

저는 제 그림이 상당히 밝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림이 뭔가 슬프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보는 것은 관객이고 해석도 관객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의라 “아 자신들의 감정이 내 그림에 투영되나 봐. 신기하다.” 정도로 여겼습니다.


저는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그림은 이리저리 발전했습니다. 저도 성인이 된 이후엔 거의 맞지 않았기 때문에 폭언만 잘 피할 수 있다면, 정서적 정신적 여유도 조금씩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립해서 살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 시간이 조금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학대당하고 방치되며 살았어도 제가 “아동학대”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릴 땐 다들 맞으며 크나보다. 저렇게 때리다가도 밥은 주니까. 종종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만들어 주니까. 동물을 사주니까. 적어도 뼈가 부러지진 않았잖아. 적어도 남자 친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진 않았잖아. 라며 저 스스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깊숙이 눌러버렸습니다. 죽고 싶었던 나날들을. 그들이 나에게 저지른 짓들을.


그러나 그런 고통은 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행복해.” 라며 반창고를 붙여놓은 표면 밑으로 고통은 고름 되어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그 고름은 조금씩 표면 위로 삐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서른이 넘도록 반창고로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고름을 막으며 버텼습니다.


방에 굵직한 에반스 매듭을 만들어 놓고 머리맡에 두고 잤습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자살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어느 방법이 덜 아프고 피해를 덜 주며 효과적일지 고민했습니다. 그저 죽음이 제 그림의 메인 주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매혹적이어서 늘 자살을 생각한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죽으니 빨리 죽으면 더 좋은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이야기에 공감이 되어 파고들었습니다. 911 테러 죽음의 장면에 매료되었습니다. 총기난사 사건, 연쇄살인, 자살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 저를 차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죽음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출구야. 그 너머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밤이 오면 온몸이 덜덜덜 떨리면서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잠을 잘 수 없고, 숨이 턱 끝에 찹니다. 크게 숨 쉬었다 내쉬고 싶지만 몸이 떨려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의 그런 밤들을 보낸 후 저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냅니다. 제 팔을 알콜로 닦고 그 위에 유성펜으로 문을 그립니다. 그 위에 바세린을 바릅니다. 제도용 칼로 그 문을 따라 그립니다.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육체적 고통이 잠깐 다가옵니다. 그 고통에 집중합니다. 다 그렸습니다. 이제 몸 떨림이 수그러듭니다. 숨도 정상적으로 쉴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걸 “자기자극”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양 팔로 제 몸을 꽉 감싸면서 씽씽 달리는 차들 중 어느 차에 받혀야 덜 아프게 바로 죽을 수 있는지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운전자는 무슨 죄야… 나 때문에 신세라도 망치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PMS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생리 전엔 늘 예민해졌기 때문에, 그때만 약 먹고 버티면 괜찮겠거니 했습니다. 정신과 선생님은 제가 감성적이고 여리고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고 처음엔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정신과를 간헐적으로 다니며 너무 죽을 것 같을 때만 찾아갔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몰랐고 왜 이렇게 죽고 싶은지를 몰랐습니다. 정신과 선생님은 조울증 끼가 보인다며 약을 처방해 주셨고, 저는 다시 간헐적으로 병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술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술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를 들이켜면 세상 걱정이 사라집니다. 하루 1~2 시간 정도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저녁에 한 잔 하게 될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간헐적으로 병원을 가도 저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정신과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저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약을 먹어도 그때뿐이고 완치될 수는 없는 건가요?”

선생님은 적어도 1년은 꾸준히 병원을 나와야 한다고 하셨고, 그때부터 저는 D-Day를 설정해 두고 2주마다 한 번씩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약은 처음엔 꾸준히 먹다가 종종 안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은 정해둔 날짜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나는 왜 이러지?”라는 질문을 N 년째 던지던 어느 날, 아파트 공사 관련해서 검색할 일이 있어 검색창을 뒤지던 중 글을 하나 발견합니다.

“아파트 계단에 어떤 여자애가 집에도 못 들어가고 몇 시간째 밖에서 저러고 있다. 하루이틀 본 것도 아니고 거의 매일 나와있다. 아무래도 아동학대인 것 같다. 신고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엔 무덤덤하게 “나 같은 애가 또 있나 보네” 하고 그 글을 클릭해 읽어봤는데, 댓글창은 난리였습니다.

“아동학대 맞네요. 신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애가 딱해 보여서 음료수를 사주고 말을 걸어봤더니 그 이후론 저를 보고 계단 위로 도망가 버려요.”

“그래도 신고하셔야죠. 아동학대인걸 알고도 신고 안 하면 요즘은 그것도 범죄래요.”

“신고하세요.”

“그 애 집 문이라도 두들겨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경찰 부르세요”


순간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뭘 모를 수가! 신고하는 순간 그 여자애의 삶이 더 지옥이 될 수도 있는데 신고를 한다고? 그 여자애의 집 문을 두드렸다간 그 후폭풍에 그 여자애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 문을 두드리라고? 저는 너무 불쾌한 감정이 밀려와서 그냥 그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 죽고 싶은 마음이, 늘 죽음에 매료되었던 이 마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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